제주경찰청, 지리산전투사령부 근무 이력 토대로 독립유공자 대신 국가유공자 신청

제주경찰청에 설치된 고 문형순 서장 흉상. 제주시 연동 청사에서 노형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제주 경찰은 문 서장의 흉상도 함께 옮겼다. ⓒ제주의소리
제주경찰청에 설치된 고 문형순 서장 흉상. 제주시 연동 청사에서 노형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제주 경찰은 문 서장의 흉상도 함께 옮겼다. ⓒ제주의소리

제주4.3 광풍 속에서 상부의 총살 명령을 거부해 무고한 도민들의 목숨을 지킨 ‘경찰 영웅’ 문형순(文亨淳, 1897~1966) 전 모슬포경찰서장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3일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국가보훈부가 故 문형순 서장을 6.25 참전유공자로 결정·등록했다. 

도민사회 곳곳에서 ‘한국의 쉰들러’ 고 문형순 서장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요구했지만, 6차례나 입증자료 미비 등으로 독립유공자 선정이 불발돼 왔다. 독립운동에 힘쓴 ‘문형순’과 고 문형순 서장이 동일인물인지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 등이다. 

제주경찰청은 故 문형순 서장이 6.25 한국전쟁 때 경찰관으로 재직했으며, ‘지리산전투사령부’에 근무한 이력 등을 제시해 2022년 7월 독립유공자가 아닌 참전유공자 서훈을 요청했다. 

관련 자료를 검토한 국가보훈부는 참전유공자로 결정, 결과를 제주경찰청에 통보했다.

김영록 경무계장은 “문형순 서장이 참전유공자로 결정됨에 따라 제주호국원과 협의해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는 등 경찰 영웅으로서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안주 출생인 문형순 전 서장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광복이 이뤄지자 월남해 서울을 거쳐 제주에 왔다. 독립운동가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0년대 만주 일대에서 일제에 저항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인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1947년 5월 제주청 기동경비대장(경위)으로 입직해 모슬포경찰서장 임시서리, 성산포경찰서장, 경남청 함안경찰서장 등을 역임한 뒤 1953년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직했다. 

제주에 4.3의 광풍이 몰아친 시기에 군과 서북청년단은 ‘산에 올라간 사람에게 식량 등을 준 사람은 자수하면 살려준다’며 수많은 사람들을 유인, 총살하거나 위법한 재판 절차를 통해 없는 죄를 만들어 교도소에서 수형생활하게 했다.

고 문형순 서장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고 문형순 서장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 때 중산간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장대로 분류돼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기도 했다.

문 전 서장은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 시절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100여 명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자수시킨 뒤 훈방해 목숨을 살렸다.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 재임 중에는 군 당국의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한다고 맞서 295명의 무고한 도민들을 구했다.

4.3 이후 경남청 함안경찰서장을 맡다 다시 제주로 내려온 문형순 서장은 퇴직 이후 쌀 배급소를 운영하는 등 가난을 달고 살았다.  

1966년 6월20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제주도립병원에서 후손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고, 서훈 없이 현재 제주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4.3 때 그의 방면 조치로 살아남은 4.3희생자와 제주 경찰, 평안도민회 2세들이 현재까지도 문형순 서장 묘 벌초 등을 맡고 있다. 

2018년 경찰청은 문형순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고, 제주경찰청은 같은 해 11월 청사에 추모 흉상도 설치했다.

문형순 서장이 후손 없이 생을 마감하자 지금은 고인이 된 전정택 전 제주평안도민회장이나 4.3 당시 문형순 서장의 방면 조치로 살아남은 도민들이 그의 업적을 모아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지만, 6차례 연속 거부됐다.  

이후 제주경찰청은 직접 문형순 서장 업적을 기리는 작업에 들어갔고, 독립유공자 대신 국가(참전)유공자 결정을 이끌어냈다.  

한편 경찰청은 참전유공자 등록에 맞춰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인의 묘역은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평안남도 제주도민회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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