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8) 아는 것에 대해 아는 것, 메타인지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

국민 MC 유재석씨가 진행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박지성 선수가 출연한 적이 있다. 사회자는 퍼거슨 감독이 가장 저평가된 선수로 박지성을 지목했다며,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을 물었다.  박지성은 ‘스스로를 객관화해 평가하고, 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찾아서 열심히 수행했다’고 이야기했다. 변화하는 경기 상황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기 역할에 책임지려 했다는 의미이다. 

좋은 축구 선수는 경기 전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책임진다. (이미지 출처 : ⓒ제주의소리,  Bing image creator)
좋은 축구 선수는 경기 전체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내고, 책임진다. (이미지 출처 : ⓒ제주의소리, Bing image creator)

공격수, 수비수 등의 자기 역할만을 잘 수행해서는 축구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 선수들이 경기 전체의 전략을 이해하고, 역할을 시시각각 능동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처럼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객관화해 역량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내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 H. Flavell)이 만든 용어이다. 항상 새로운 상대, 상황 속에서 협력과 경쟁을 수반하는 팀스포츠 경기는 복잡적응계 상황과 유사하다. 팀스포츠 경기를 잘 수행하는 태도들은 복잡적응계의 혁신과 협력에서도 유용하다.

아는 것에 대해 아는 것, 메타인지

‘메타 (meta)’는 ‘~위에 있는’, ‘초월적인’, ‘~에 대한’이란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이다. ‘메타인지’라고 하면, ‘아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는 능력과 인지 과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실행한 영어 단어 맞추기 실험은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학생들에게 영어 단어 30개를 암기시킨 후, 자신이 맞출 수 있는 영어 단어 갯수를 예상하게 한다. 실제 영어 단어 시험을 진행한 후, 맞출 것으로 예상한 갯수와 실제 시험 점수와 비교한다. 실험 결과, 예상 점수와 실제 점수의 오차가 적은 학생들이 평소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 암기력은 학습 능력의 일부에 불과했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했던 것이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능력과 인지 과정을 이해하는 역량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필자)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능력과 인지 과정을 이해하는 역량을 말한다.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필자)

자신의 인지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학습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모르는 것에 대한 학습 계획을 수립하고, 학습 진행상황을 점검하며, 학습 결과를 평가해 이를 반영한 새로운 학습 계획도 수립한다. ‘학습’ 뿐만 아니라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실행 계획, 점검, 평가, 반영이라는 과정을 잘 수행한다.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자신의 강점을 성장시키고, 약점을 보완하는 효율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자신의 역량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역량도 잘 파악하기 때문에, 협업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그래서 메타인지를 ‘일머리’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이유

코넬대학교의 더닝 교수와 대학원생 크루거는 사람들이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의 역량과 실제 역량 사이의 간극을 연구하였다. 이 연구 결과를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한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을 했고, 그 행동으로 야기되는 문제들도 인지하지 못했다.

자신의 역량을 과대, 과소 평가하는 인지편향을 나타내는 더닝-크루거 효과 (이미지 출처 : 필자)
자신의 역량을 과대, 과소 평가하는 인지편향을 나타내는 더닝-크루거 효과 (이미지 출처 : 필자)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회피형 애착유형이나, 자기애에 빠져있는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우매함의 봉우리’가 일반인보다 더욱 높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불안형 애착유형은 ‘절망의 계곡’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우매함의 봉우리와 절망의 계곡 사이의 진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다윈은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고 말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초보일 때,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투른 무당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사람을 잡을 수 있는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윤정구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집단적 더닝 크루거 효과’에 설명하였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eongkoo.yoon, 23년 9월 1일자) ‘리더가 자신의 능력을 항상 과대평가하면, 자신의 실수나 곤경에 대처하지 못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역정을 낸다. 결국 주위에는 비슷한 능력과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로 포진된다. 이들은 리더의 능력과 식견에 대해 자화자찬을 일삼아, 결국 집단사고로 조직과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고 해체된다’는 경고였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 백견이 불여일행 (百見 不如一行)

메타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기’와 ‘토론’, ‘실행’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자신이 아는 것을 말과 글로 자주 표현하기를 권유한다. 인간은 익숙한 것들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것을 말로 잘 설명할 수 있다면,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을 말로 잘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르는 데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메타인지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토론, 실행 등 참여적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제주의소리
메타인지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토론, 실행 등 참여적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 ⓒ제주의소리

미국의 국립행동과학연구소(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에서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Learning Pyramid)도 메타인지 향상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학습방법에 따라 24시간 후 학습 내용을 기억하는 정도를 표현한 도표이다.  듣기·읽기·시연 등 수동적인 학습 방법은 낮은 기억률을, 토론·연습·가르치기 등 능동적 학습방법은 높은 기억률을 보여준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고, 백견이 불여일행 (百見 不如一行)이다.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보는 것보다는 경험하는 것이 나은 법이다.

한국의 항공사에 항공 사고가 많은 이유

조직과 사회의 메타인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토론과 공론장이 필요하다. 백가쟁명식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펼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몇몇 사람들에 의한 조급한 결정들은 실패나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는 한국 항공사에서 항공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네델란드 조직 심리학자 호프스테더가 제시한 권력거리지수(Power Distance Index)라는 개념이 있다. 권력거리지수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이나 권력자에게 반론을 제기할 때,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 수준을 의미한다. 권력거리지수가 높은 조직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항공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항공사를 조사한 결과, 권력거리지수가 높은 특성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군의 위계질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한국의 항공사였다. 1997년 악천후 속에서 괌 공항에 착륙하던 도중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해당 사고의원인 중 하나는 부기장이 기장의 실수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완곡한 표현을 하느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항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항공사는 권력거리지수가 높다.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항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항공사는 권력거리지수가 높다.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집단적 메타인지 관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다수가 침묵하는 경우이다. 다양한 견해를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과 공론장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성이나 역량과 관계 없이 서열 높은 사람의 의견이 우선되는 사회에서는 메타인지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한 사회의 번영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면, 공론장을 가꾸고, 훼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메타인지는 사람이 성장하는 줄기에 해당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나무의 성장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필자)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나무의 성장 (이미지 출처 : Bing image creator, 필자)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앞 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을 토양이라고 한다면, 애착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은 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한 물, 자양분, 햇살이다. 

나무는 줄기를 통해 뿌리로부터 얻은 자양분을 잎, 꽃 등 다른 구성 요소들에게 전달한다. 줄기는 전체를 연결하고, 필요한 것과 해야 하는 일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무의 줄기와 같은 메타인지 역량이 필요하다. 물질적 자원, 애착, 사회적 자본, 메타인지는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 물질적 안정은 안정적 애착으로, 안정적 애착은 사회적 자본으로, 사회적 자본은 메타인지 역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람이 성장하는 환경은 창조적이고 협력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원리와 일맥상통하기 마련이다. 세상을 변화시켜 번영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분배 뿐만 아니라 안정적 애착, 신뢰와 호혜성이라는 사회적 자본, 전체 속에서 자기 객관화할 수 있는 메타인지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서론 : 복잡적응계에서 혁신을 만드는 과정

김종현의 '다른 내일' (1) 정답은 없다. 그러나 정답을 찾는 방법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2) 영웅은 없다. 다양하고 똑똑한 우리가 있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3) 무질서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질서

2. 창조적인 사람, 혁신적인 사회

김종현의 ‘다른 내일’ (4) 통합적인 돌봄은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 
김종현의 ‘다른 내일’ (5)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애착’
김종현의 '다른 내일' (6) 애착과 사회적 자본의 선순환 구조
김종현의 '다른 내일' (7) 애착은 뿌리, 물질적 지원은 흙, 사회적 자본은 자양분
김종현의 '다른 내일' (8)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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