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 : (드나드는) 길 * 호리본다 : 싸게 깎아 내린다. 제 값 받지 못한다 문득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우리 밭에는 드나드는 길이 없었다. 맨 안쪽에 있어, 남의 밭을 지나야 했다. 어머니와 누님과 내가 밭담을 넘어 지나가려 하면, “아이고, 맹심ᄒᆞ라이. ᄇᆞᆲ지 마랑.(아이고, 명심하하. 밟지 말고.)” 조밭에 조가 막 자라기 시작할 때면 안 그래도 밟힐까 봐 한 발 한 발 사이사이로 골라 디디곤 했다. 그러는데도 나이 많이 잡순 밭 주인 할머니가 큰 소리로 얘기하면 듣기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해마다 그러니 참 성가셨다
* 초멘 : 초면(初面), 첫 대면말재간 한번 좋다.세상에 글이란 걸 읽고 써 본 적 없는 일자무식한 자는 글을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당연히 글도 그 사람을 대면한 적이 없다. 글을 난생 처음 대하고 있으니 글 또한 난생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이다.하지만 사람의 체면이란 게 그렇지 않은지라 대인관계에서 “나는 글을 전혀 모르는 무식자요” 하고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남 앞에서는 차마 자신의 위신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은즉, “글을 처음 보고 있고, 글 또한
* 준 쉐 : 여윈 소, 말라빠진 소* 포리 : 파리* 궨다 : 들끓는다농부들의 일상 생활 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 말과 소를 빼놓지 못한다. 밭 갈고 등짐 져 주고 그러다 가족이 병나거나 자녀 혼인잔치로 가계가 다급하면 팔아 환금해 어려움을 막았다. 우·마만한 자산이 없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그러니 평소 촐(꼴) 주고 연못이나 바닷가 담수를 찾아 물 먹이며 애지중지했음은 말할 것이 없다. 한데 여름철 마소에게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파리가 들끓는 일이다. 하도 귀찮게 구니 꼬리로 번갈아 쳐 날리지만
* 갭인년 : 갑인년(甲寅年), 십갑자의 하나, 여기서는 옛날의 어느 시기를 뜻함 * 보까 : 볶아말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는 눈짓, 손짓, 발짓 같은 ‘몸의 언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보디 랭규지(body language)로 신체언어란 뜻이다. 오죽 절실했으면 이런 표현 방법을 사용했을지 실감하고도 남는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도 말의 중요성과 그 소중함 그리고 말을 하는 태도나 자세, 금도(禁盜)에 대해 늘 강조해 왔다.‘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은 말을
심술(心術)이란 온당하지 않게 고집을 부린다는 말이다. 남을 골리기 좋아하거나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보다. 상대와 비교하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가운데 나올 수 있는 얄궂은 심리일 수도 있다. 결코 좋은 심성이 아니다.세상에 우리 고대소설에 나오는 놀부처럼 오장육부가 ‘오장7부’로 심술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성일지 모르지만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임은 말할 것이 없다.‘심술만 하여도 십 년 더 살겠다.’고 한다. 심술을 잔뜩 가졌으니 그것만 먹고도 십 년은 더 살겠다는 뜻으로, 심술궂은 사람을 놀림조로
* 재민 : 빠르면* 잰 : 빠른* 깝 : 값 * 싯나 : 있다.‘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꿰어 못 쓴다’고 했다. 매사에는 수순이 있고, 그 일들은 차례 따라 차근차근 이뤄져야 한다. 마음 급한 나머지 서둘러 진행하다 뒤죽박죽 일을 망칠 수 있다. 급히 먹다 체하는 법이다.이를테면 집을 건축하는 데도, 설계에 따라 분야별로 주어진 기간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그게 공기(工期)다. 급히 서두르다 집이 되기 전에 번번이 붕괴되는 사고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낭패가 없다.뱁새가 황새걸음 흉내 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다. 자신의
* 이거신가 : (잘) 익었는가* 설어신가 : (아직도) 설었는가몇 번 반복해 음미할수록 제 맛이 우러나는 재미있는 말이다.어느 들판, 사냥꾼들 몇이 노루 한 마리 사양해 놓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있는 현장을 떠올리면 좋다. 사냥꾼들은 포획한 들짐승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대개 산에서 잡았다. 불을 피울 삭정이도 널렸고 게다가 가까이 철철 넘쳐흐르는 시냇물이 있으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 아닌가. 사냥하느라 때마침 뱃속이 출출하니 여러 손이 모여들어 짐승을 잡아 불에 굽게 된다. 고소한 냄새가 퍼져 저절로 입에 침이 돌게 마련이다.
* 벌러진다 : 깨어진다, 쪼개진다TV나 라디오까지 가지 않아도 핸드폰만 열면 그날의 기상 정보가 나온다. 비, 바람, 기온에 미세먼지 좋고·나쁨은 말할 것 없고 물결의 높이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오보가 없지 않으나 빗나가는 경우가 별로 없을 만큼 높은 확률로 신뢰를 얻고 있다. 생활과 직결되는 게 날씨 정보인 만큼 기상청에서도 기상 변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정확도를 높이려 애쓰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좋고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예전엔 기상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힘들었다. 유일하게 ‘오늘의 날씨’를 말해 주는
* 아적이 : 아침에* 빈 허벅 : 우물물을 길어 채우지 않은 허벅(허벅은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에 제주에서 여인들이 등에 져 우물물을 길어 나르던 그릇. 진흙을 구워 만든 것으로 배가 불룩해 물이 많이 들었음. 어린 여자 아이가 지던 앙증맞게 조그마한 것은 특히 ‘대바지’라 했음.* 예펜 : 여자, 여인* 만나민 : 만나면* 읏나 : 없다어느 사회에나 그렇게 인식해 온 관행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어떤 근거가 있어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닌데도, 오래전서부터 그러하다고 믿어 오던 것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아침은 긴 밤을 지나 맞은
* 씨집 장게 : 시집 장가* 안 강 : 안 가, 아니 가서* 망테기 : 항아리보다 길이와 통이 작아 배가 나오지 않은 오지그릇남녀 불문하고, 사람이 자라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남자는 장가 들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 그게 순리이고 정도다. 이왕이면 천상배필을 만나 혼인해 가정을 이루고 아들 딸 낳아 키워 학교에 보내 교육시키고 훈육해야 한다. 일가를 이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게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도리요 기본 방식이다.남들이 다 하는 혼인을 하지 않고 홀로 산다면 사정이 여하튼 정상이라
* 소월덜 : 4월달* 부지땡이 : 부지깽이표현 기교에 과장법이 있다. 사물을 사실보다 크거나 많게 부풀려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를테면 ‘눈물이 홍수’라거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백발 삼천장’ 하는 식이다.‘부지땡이’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불이 잘 붙도록 불더미를 들쑤셔 공기가 잘 통하게 하는 막대를 말한다. 나무 날가지를 잘라다 쓰더라도 불 속에서 쑤시는 구실을 하다 보니 끝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게 마련이다. 흙에 꽂아 물을 잘 준다 해도 새 순이 돋아날 수가 없는 일이다.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한라산에 올랐다 내
* 싀번체 : 세 번째* 똘랑 : 딸이랑, 딸은* 보지 말앙 : 보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도라오라 : 데려오라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사물의 안팎을 살피고, 세상사는 경우와 일이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하면서 살아간다. 경험의 축적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고 다져진 경험은 알게 모르게 삶의 방향을 가리켜 줄 뿐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나 곧은 자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준다. 남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깨달은 것 만한 산지식은 없다. 이를테면 경험칙(經驗則)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 봇바른 듸 : 명자리, 급소, 가장 중요한 부분* 직헌다 : 지킨다먼저 여기 등장하고 있는 ‘할망’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할망은 제주방언으로 ‘삼승할망’을 말한다. 표준어로는 ‘삼신할머니’다. 무속(巫俗)에서 초월적이고 영통력(靈通力)이 있는 존재태다. 민간신앙이 집약돼 무당 중심으로 체계화된 종교현상을 무속이라 하는데,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민족 정신의 토양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실제 생활을 통해 생리화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 가젠 호민 = 가려 하면* 벤다 = 무겁다 (기본형 : 베다)제주 사람들 마음속에 샘솟는 따뜻한 인정이 흐르는 말이다. 게다가 넉넉한 정을 실제보다 훨씬 부풀려 실감이 나게 했다.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 과장할 만도하다.서울이 어디인가.더욱이 맨 남쪽에 외떨어진 섬, 제주도에서 서울이 어디인가. 예로부터 ‘한양 천리’라 했지만 그것은 육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그 한양 천릿길은 제주에서 만 리길도 더 한 것이 아닌가. 배 타고 험한 파도와 싸우며 육지에 닿으면 그때부터 그 멀고 먼 길을 걸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
* 아덜 : 아들의 제주방언* 봉수아비 : 봉수대를 지키면서 적의 침입을 포착해 봉화를 올리는 사람봉수아비란 봉수대를 지키는 사람, 곧 봉화를 올려 위급한 상황을 관에 알리는 역할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구실에 한정하지 않고, 통신 같은 의사 전달을 위한 일도 했다.‘봉수대(烽燧臺)’의 ‘烽’은 밤에 봉화(횃불)를 올려 연락하는 것이고, ‘燧’는 낮에 연기를 피워 올려 어떤 상황을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해 적의 동태를 파악해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는데, 봉수대를 지
* 잠비 : 잠이 오는 비* 개역비 : 비숫가루를 먹게 하는 비봄비와 여름비,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에 내리는 비인데 봄비야 봄에 내리니 봄비라 하는 것이겠지만, 여름비에는 제주도만의 특이한 풍속과 농촌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농촌은 봄비에 깨어난다. 밭갈이하고 씨를 뿌리게 하늘이 비를 내려준다. 양파, 마늘, 감자, 고구마도 심어야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에 내리는 비이니 봄비는 푸른 계절에 내리니 녹우(綠雨)요, 감우(甘雨, 단비)다.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니 농촌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바빠 죽을
* 밴 땐 : (아이를) 배었을 때, 임신했을 적* 난 땐 : (아이를) 낳았을 때, 출산하고 나면그냥 해 본 푸념 따위가 아니다. 아이를 가졌다 하면 먼저 뿌듯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임산부도 그 남편도, 시부모 할 것 없이 다들 기뻐하게 마련이다.더군다나 손이 귀한 집안일 경우는 온 가족이 좋아라고 마음 들뜰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고무된 집안 분위기는 뱃속의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뿐, 막상 태어나고 나면 아이를 키우는 일에 부대껴야 한다.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야 어찌어찌 치다꺼리한다지만, 아이
* 족아도 : 작아도* 아지망 : 아주머니, 결혼한 여인, ‘아지방(아주버니)’의 반대말먼저 졸작 수필 ‘참 작은 귤’의 일부를 소개한다.‘서른 해 이웃인, 길 건너 집 아주머니가 귤을 갖다 먹으라 한다. 아내가 차를 갖고 과수원에 가 두 컨테이너에 담뿍 싣고 왔다. (중략)아주머니는 올해 예순 다섯 나이에 7천 평(2만3140㎡) 감귤 농장을 해내고 있는 분이다. 대농이다. 여간한 깜냥인가. 옆에 일을 덜어주는 군 손도 없다. 십오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됐지만 그 농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웬만한 강단이 아니다.현
* 골아타사 : 갈아타야, 교체해야* 와랑자랑 : 축 처졌다가 되살아나 활력이 넘치는 모습‘와랑자랑’이란 말에 시선이 꽂히지 않는가. 축 처져서 시들시들 하던 것이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기운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나 짓을 나타내는 의태어(짓시늉말)이다.제주 방언에는 사물의 어떤 상태나 일이 이뤄지는 모양 등을 시늉하는 말들이 발달돼 있다. 사물의 소리를 시늉하는 말(의성어)도 그에 못지 않다.예를 들면,① 밧 한 집이나 곡석을 와랑시랑 거둬들이는 거 보라게(밭 많은 집이니까 곡식을 엄청나게 거둬들이는 거 보아
* 물도 싸민 : 들었던 물이 빠지면, 간조(干潮) 때가 되면* 여을 :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 (다섯 물은 음력 14일과 29일을 말하는데, 그날은 썰물이 많이 져서 바다 밑에 숨어 있던 바위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냄.)* 낭도 싸민 : 나무(木)도 (톱으로) 켜면* 고를이 : 가루가, 톱밥이“바당에 물 봉봉 허였단, 물 싸난 못 보던 바우더리 다덜 나와시네.” (바다에 그득 들었던 물 빠지니까 큰 바위들이 다들 나왔다.)예전에 어른들 입에 늘 오르내리던 말이다. 특히 여름날 바닷가에 가면 만조 때 물에 가려 있던 바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