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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기록적 폭설·한파에 '초유 상황' 속출...현실 못따른 매뉴얼 ‘역부족’

“폭설로 오후 5시50분부터 항공기 운항을 중단합니다”

기록적인 한파로 제주공항 활주로가 얼어붙으면서 제주공항은 장장 42시간동안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하는 사상초유의 비상상황을 맞았다.

제주를 오가는 이동수단이 모두 끊기면서 최대 9만여명의 관광객 발이 묶였다. 곳곳에서 승객들 항의가 잇따랐고 관계 기관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최대 3000여명의 관광객은 사흘 동안 제주공항 대합실에서 유례없는 노숙생활을 해야했다. 모포와 물, 빵과 간식에 에어매트까지 공수되며 공항은 닷새 내내 주야없이 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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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강풍에 제주공항 마비

23일 오후부터 제주는 강풍이 몰아치며 눈이 내리는 한파를 맞았다. 윈드시어 경보까지 발효되자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후 5시50분 제주공항 운영 중단 결정을 내렸다.

제주공항 주변의 기온이 영하 5.8도까지 내려가면서 제주시는 기상관측 이후 85년만에 1월중 가장 낮은 기온을 보였다. 하루 적설량도 1984년 이후 32년만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제주공항 활주로는 하얗게 변했다. 공항에는 23일 하루에만 12.0cm의 눈이 쌓였다. 제주시에서 10cm 이상의 눈이 내린 것은 과거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공항공사는 15차례에 걸쳐 제설작업에 나섰지만 윈드시어가 발목을 잡았다. 공항에는 동서활주로를 기준으로 항공기 측면을 강타하는 10m/s 이상의 북서풍이 강하게 불었다.

윈드시어는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이다. 제주공항의 경우 활주로 측면으로 몰아치는 강풍과 윈드시어가 항공기 이착륙에 가장 위험한 변수로 꼽힌다. 

국토부는 강풍에 폭설까지 더해지자 이착륙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좀처럼 바람이 잦아들지 않자 항공기 운항 중단을 두 차례나 연장했고 42시간만인 25일 낮 12시에 통제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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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 수천명 공항서 때아닌 노숙생활

제주가 고립상태에 빠지자 갈 곳 잃은 승객들은 제주공항에 머물며 때아닌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공항공사는 이용객 편의를 위해 24시간 난방을 가동하고 대합실의 불을 밝혔다.

공항 바닥에 잠을 청하기 위해 승객들은 종이상자와 제주관광 안내정보지를 바닥에 깔았다. 모포와 이불이 부족하자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어린이에게 우선적으로 지급했다.

첫날 수백여명에 불과했던 노숙 관광객이 이튿날에는 1000여명으로 늘자 제주도는 모포와 이불, 매트, 생수, 빵, 과자 수만개를 실시간으로 확보해 공항에 잇따라 공수했다.

이 과정에서 '종이박스 1만원 폭리' 논란이 불거졌고, 이는 실제 화물용 원가 1만원짜리 판매사실이 알려지면 진화됐다. 이후 난방비, 쓰레기처리 주체 등을 두고 각종 소문이 무성했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 4개 기관 25명의 의료진이 공항에 대기했고, 7개 자원봉사 단체 76명이 음료와 간식을 제공했다. 대중교통 시간도 연장되고 전세버스까지 투입됐다.

23일부터 공항이 정상화되는 25일까지 사흘동안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고 곳곳에서 항의가 이어졌지만 우려했던 격한 충돌은 없었다. 관광객들의 높은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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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합실 수용인원 초과...저가항공사 혼란 키워

항공기 운항 재개 소식에 26일 공항 3층 대합실에는 최대 2만5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리며 대혼잡을 빚었다. 이는 제주공항 적정수용인원 8600명의 3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현장에서는 각 항공사별 승객들이 뒤섞이며 수 미터 앞을 나서기도 어려웠다. 공항 직원들과 취재진들도 인파에 떠밀려 관광객을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저비용항공사의 발권시스템은 혼잡을 부채질했다. 예약시간에 따라 자동 수속이 이뤄진 대형 항공사와 달리 저비용항공사는 대기 순서대로 비행기에 오르도록 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가 결항될 경우 내부규정에 따라 당초 항공기의 예약 순서대로 탑승한다. 순서는 항공사에서 문자메시지로 발송해 발권창구에서 줄서며 대기번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

반면 저비용항공사는 결항시 대기순번을 나눠주고 이 순서에 따라 탑승을 하면서 승객 수천여명이 발권창구에 줄을 서는 모습이 반복됐다. 오락가락 기준은 승객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대기 순번을 높이기 위해 승객들이 공항을 떠나지 않으면서 불가피하게 노숙을 택하는 관광객도 많았다. 순서를 정하기 위해 세워둔 카트는 승객의 이동을 막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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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응 매뉴얼 개선 시급

이번 사태는 천재지변이 시작이었다. 이후 공항공사와 항공사, 제주도의 대응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각 기관과 업체마다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부족함도 많았다.

제주도에는 ‘공항 체류관광객 대응체계 구축 계획’이 마련돼 있다. 체류객을 지원하기 위한 교통과 식음료 제공 등이 있지만 최대 인원이 500명에 맞춰져 있어 초기 대응이 더디었다.

‘2015년 자연재난 표준행동 매뉴얼’에는 자연재난에 따른 공무원들의 공항 비상근무체제가 명시돼 있지만, 교통지원에 한정될 뿐 구체적 대응방식에 관한 내용은 없다.

한국공항공사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풍수해(대설) 재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에 따라 풍수해(대설) 재난/재해 업무(항공대책반)를 운영했지만 이례적 폭설로 애를 먹었다.

한국공항공사와 제주도, 항공사, 여행사 등 다양한 조직이 얽혀 있어 기관과 업체 간 유기적 대응도 부족했다. 대응 주체도 명확하지 않아 승객과 관광객들의 혼란을 부채질했다.

제주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항 체류객 지원을 위한 매뉴얼을 개선하기로 했다. 저비용항공사의 현장 대기 시스템도 자동 대기시스템으로 변경되도록 적극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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