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획-제주형교육혁신 다혼디] ④교사 배움모임 '전문적 학습공동체' 주효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귀덕초등학교.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귀덕초등학교.

제주형 자율학교인 다혼디배움학교의 갖가지 성과는 '교직원은 철밥통'이라는 오명과 맞선 교사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교육과정 연구와 과정 중심의 평가를 실천했고, 이 같은 활동이 다른 학교에 파급됨에 따른 결과다.

개혁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는 교육계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기존 교원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교육부-교육청-단위학교로 이어지는 수직적 명령 체계와 느슨한 조직 간 결합이 빚어낸 오명이었다.

학급의 문제는 담임이 알아서 처리해야했고, 생활지도도 교사 개인의 책임으로 지워졌다. 교사들은 모험을 피하고 학습된 '적당주의'에 젖어들었다. "교사는 왜 잘 움직이지 않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교사 주도 교육에서 학생 중심 교육으로의 탈바꿈을 꾀한 다혼디배움학교의 기본 바탕에는 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학교는 교사에게 신뢰와 자율권을 부여했고, 다시 교사는 학생에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과 책임감을 쥐어줬다. 단순히 관행을 바꾸면 될 문제가 아닌, 학교 자체적인 프로세스를 전환해야 하는 시도가 뒤따라야했다.

다혼디배움학교의 교사들은 기존의 분위기를 깨뜨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른바 '전문적 학습공동체'가 태어난 배경이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교사들이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연구·실행하는 프로그램을 뜻한다. 서로가 가르침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경험과 판단을 존중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해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5.18광주민주항쟁 사적지를 찾아간 애월중학교 학생들. 사진=애월중학교
5.18광주민주항쟁 사적지를 찾아간 애월중학교 학생들. 사진=애월중학교

외부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교육의 전문가는 교사 본인들이다. 이 자리에 모인 교사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더 나은 방안을 찾아가게 된다. 모범사례도 배워가지만, 시행착오 역시 큰 배움의 밑거름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조직→학습조직 중심 개편 △행저업무 정상화 △학년-교과단위 연구회 운영 △자기성찰 수업 개발 △개인주의-교실주의 문화 극복 △개방-공유-협력의 교직문화 △수강 중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문화 △모형 연구방식 개선 등이 주요 체제로 자리매김했다.

교사의 '가르침' 중심에서 학생의 '배움' 중심으로 전환됐고, 교과 지식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삶과 연결된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주입식·전달식 학습 방식은 토론·탐구·체험·자기주도 학습으로 변했다. 개별 교사가 수업전문성을 높여나가던 것을 교사 학습공동체의 공동 목표로 삼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이었지만, 배움 안에서 공동체의 성장을 이끌고 교육 중심의 학교를 만들어가자는 데 중심을 뒀어요. 속도가 아닌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이 주효했습니다." 귀덕초등학교(교장 이정애) 교사들의 사례다.

주입식 수업에서 체험-자기주도 학습으로의 전환 사례로는 애월중학교(교장 김상진)가 수행한 광주 5.18연계 평화인권 교육이 대표적이다. 교과 수업과 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하면 학교 교육과정의 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광주5.18민주화운동의 사적지를 직접 찾아보고 생각을 키워갔다. 역사 교과로 '5.18 민주행장 전개과정'을 배우고, 미술 교과로 독서 감상화를 그렸다. 영어 교과로 레미제라블 영화와 연계해 민중의 노래 영어가사 등을 번역하고, 음악 교과로 '님을위한 행진곡'을 배웠다. 기행문 작성은 자연스럽게 국어 교과와 연계됐다.

부인식 애월중 교사는 "혼자서 강의하고 일방적으로 설명을 주입시키려는 기존의 수업 방식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켜 보려는 작은 시도였을 뿐"이라면서도 "하지만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고 행복했다. 혼자서만 떠들고 강의할 때는 꾸벅꾸벅 졸기만 했던 아이들이 단 한명도 졸지 않고 수업을 받은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처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공통된 목표를 공유하자 개별 학교에서 보다 구체적인 운영 방안이 개발되기도 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오름중학교.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는 오름중학교.

세화중학교(교장 송시태)의 경우 2016년과 2017년 배움중심 수업 교수학습 방법을 선택해 모든 교과교사가 연 1회 수업을 공개하고, 연 2회 외부수업 컨설팅을 받게끔 했다. 1학기부터 활동지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육지 혁신학교 수업을 참관토록 했다. 2018년과 2019년에는 방식을 개선해 외부 컨설팅을 줄이고, 부담 없이 수업이 진행되도록 수업공개 인원을 2명씩으로 제한했다.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개선한 결과다.

이 같은 방식이 정착되다보니 교사들은 활동지 공동연구와 수업공개, 협의회 등의 참가가 늘었고, 수업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기회를 추가적으로 갖기 시작했다. 경험을 통해 훌륭한 교육 자산이 쌓인 결과다.

안덕중학교(교장 홍성해)는 매월 첫째주 목요일 전체 교직원협의회를 운영하고, 둘째주와 넷째주 목요일 7교시에는 교과의 경계 없는 수업공개와 협의, 학년별 수업연구, 직무 관련 연수를 운영했다. 학년별 주체중심 통합 프로젝트를 계획해 교육과정-수업-평가 일체화를 꾀했다.

2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수업연구가 운영되자 교사들은 개인적인 일보다는 공동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교육활동에 관한 이야기로 활발한 대화가 이어졌다. 혼자 끙끙대고 앓던 고민을 전문적 학습공동체의 고민으로 넘기면 동료들이 그 해답을 찾아줬기 때문이다.

4년째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오름중학교 김선형 교사는 "국가교육과정이 있고 시도교육청의 교과 편성지침이 있는데, 그 기준을 두고, 새로운 시도를 접목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인지 분석할 시간도 부족한데 교무업무, 행정업무도 해야 해 고민하고 연구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어려운 만큼 수업을 정리하고 수업 혁신을 도입한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 힘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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