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롱뇽 관찰일기] (3) 1월 26일~2월 4일
‘제주도롱뇽 관찰일기’는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이자 ‘고봉선의 마을책방을 찾아書’ 필자로 독자들과 익숙한 고봉선 작가가 쓰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필자가 10여 년전 제주 항파두성의 장수물에서 우연히 마주친 도롱뇽 알이 매번 훼손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매년 꾸준히 이들을 관찰해왔습니다. 제주도롱뇽은 몇 안 되는 한국고유종으로,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건 청정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멸종된다는 것은 질병 확산과 지구 기후위기를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제주도롱뇽이 이곳에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필자의 호소는 결국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는 우리 모두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도롱뇽 알의 첫 산란에서 마지막 산란까지 관찰일기 연재가 이어집니다. / 편집자 글 |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밤 10시 30분
운동 삼아 아들과 함께 장수물로 갔다. 어젯밤과 달리 장수발자국 안에는 도롱뇽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냇가로 내려갔다. 낮에 보았던 첫 산란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도롱뇽이 몰려 있다. 이들은 한창 산란 중이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밤 10시 30분
연가시
이 조그만 우물 안에 참으로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들은 도롱뇽이 알을 낳고 부화하면 그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장수발자국 안에 있는 연가시는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섬뜩하다. 한마디로 기생충이다. 문득 연가시란 영화가 생각났다.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 넷플릭스로 접속하고 핸드폰을 40인치 모니터에 연결했다. 그러나 한 시간여 로드 중이라고만 하면서 접속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껐다가 켰다. 드디어 접속에 성공했다.
하룻밤새 뼈와 살가죽만 남은 시체가 새벽녘 한강에서 떠올랐다. 이어서 전국 방방곡곡 하천에서 변사체들이 발견된다. 원인은 숙주인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물 속에 뛰어들도록 유도하고 익사시키는 치사율 100% 변종 연가시였다.
변종 연가시에 감염되면 사망 수 개월 전부터 과할 정도로 식욕이 왕성해진다. 그래도 체중은 전혀 늘지 않는다. 아마도 연가시가 영양분을 뺏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사망 2~3일 전부터는 극심한 구갈 증세를 호소한다. 연가시는 뇌를 조종해 사람을 스스로 물가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드는 살인기생충이었다.
보아하니 연가시 이 녀석은 참으로 교활하고도 영악한 녀석이다. 연가시의 알은 곤충 중에서도 육식 곤충의 몸에서 부화하고 기생한다. 물을 통해 곤충의 몸 속에 침투했다가 산란기가 시작되면 숙주의 뇌를 조종해 물 속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이다.
연가시가 어떻게 숙주의 뇌를 조종하여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원인은 밝혀 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가로 유인하는 신경조절물질을 분비하여 자살을 유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2009년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연가시는 그 독특한 생존 방식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사람의 삶과 밀접한 물을 통해 감염 된다는 점, 환경 오염으로 인해 변종 기생충이나 바이러스가 등장함에 따라, 변종 연가시가 나타난다면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 또한 우려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숙주의 몸속에 기생하는 동안 내장기관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그렇게 곤충의 몸속에서 성장하다가 빠져나와 민물로 돌아온다. 성충이 되면 기생충에서 수생 곤충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연가시는 물 밖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방 죽는다. 그러므로 살기 위해 기생하던 곤충의 신경을 자극해서 물가로 유인한다. 그리고 자신이 기생하던 곤충이 물에 뛰어들도록 한 다음 빠져나와 물속에 알을 낳는다. 이들의 전략에 그 무시무시한 사마귀마저도 가여운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연가시가 빠져나오면 물로 뛰어든 곤충은 죽게 된다.
연가시는 숙주 곤충 몸길이의 2~4배나 된다. 따라서 기다란 연가시가 빠져나올 땐 곤충의 내장이 뒤틀리고 파열된다. 숙주인 곤충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숙주인 곤충이 죽는 이유는 또 있다. 숙주인 곤충은 자신의 몸속에서 연가시가 사는 동안 양분을 빼앗기면서 연가시에감염된다. 그리고 점점 비실거리다가 연가시가 밖으로 나오면 힘을 못 쓰고 죽는다.
연가시는 잡식성 곤충에도 기생하지만 습한 환경을 매질로 하는 까닭에 물가 주변에 사는 곤충에 많이 기생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사마귀 꽁무니에서 녀석을 봤던 것도 같다. 그게 연가시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다시 생각하니 부르르 몸이 떨린다. 연가시 이 녀석도 도롱뇽의 먹이가 될 수 있을까? 어느새 난 산란을 위해 모습을 드러낸 성체 도롱뇽이 이들을 다 잡아먹어 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단국대학교 의학대학 기생충학 박사 서민 교수에 의하면 연가시가 사람에게 감염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한다. 기존의 기생충인 회충 같은 것들도 처음부터 인간의 몸에 기생했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사람의 몸속에 들어왔다가 살기 좋다는 것을 알고 적응해서 살게 된 것이다. 연가시도 회충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적응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연가시에 감염 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영화의 극한 상황에서 변종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처절했다. 물론 실제로 연가시가 사람에게 기생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연구가 거의 되지 않은 생물이고 보면 안심할 수도 없다. 실제로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사람이 찻길에 뛰어 든다든지 이상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연가시도 사람의 뇌를 조종하게 된다면, 영화에서처럼 물에 얼굴을 처박거나, 물을 마시다가 죽는 일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또 위협적인 것은 연가시는 숙주 크기의 3배까지 자란다는 사실이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2m까지 자란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몸 속에서 이처럼 길게 자란다면 장을 다 헤집어 놓을 수도 있다.
- 다음 영화 “연가시” 주요 정보 참조
연가시라면 난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오가던 길이 떠오른다. 그땐 난 이 녀석의 학명도 몰랐다. 그냥 실처럼 생겼기 때문에 실지렁이라고 불렀다. 더군다나 이처럼 끔직한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밀가루를 포대로 사다 놓고 여러 가지 음식을 해 먹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밀대로 민 다음 칼로 썰면 칼국수가 되고, 손으로 납작납작하게 펴서 뜯으면 수제비가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반죽을 조금 묽게 한 다음 숟가락으로 둠뻑둠뻑 떠 넣으면 조배기가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은 많았다. 부침개는 기본이지만 범벅도 해 먹었고, 고춧잎에 밀가루 옷을 입혀 짚장(?)을 만들기도 했다.
짚장이란 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릴 적 우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무쇠솥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이때 어머니께선 고춧잎에 간을 한 다음 밀가루 옷을 가볍게 입히고 양은그릇에 넣어 갓 지은 밥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밥이 뜸 들 때까지 기다리면 알맞게 익어 있었다. 이 반찬을 어머니께선 짚장이라고 하셨다. 그때 그 맛이 그리울 땐 나도 한 번 만들어보려고 도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무튼, 이리저리 밀가루를 이용한 요리가 많았기 때문에 집엔 항상 밀가루 포대가 있었다. 밀가루 포대는 위로도 아래로도 실로 꿰매져 있다. 푸는 곳이라고 화살표가 표시된 쪽을 풀고 잡아당기기만 하면 실은 절로 풀린다. 그러나 잘못하면 영 뜯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땐 하는 수 없이 포대를 찢어내기도 했었다. 이때 푼 실을 모아뒀다가 이불을 꿰맨다거나 연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질기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땐 3.8Km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다녔는데 비포장도로였다. 비오는 날 학교를 오가노라면 질퍽질퍽하니 물이 고인 곳에서 이 녀석 연가시가 종종 보였다. 그때 나는 이 녀석을 실거리나무에 걸쳐 놓았다. 마르면 실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가닥 실이 귀한 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단순한 장난이었을까?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도 연가시 이 녀석만 보면 그때의 시공간을 떠올리면서 잠시나마 그 시절에 다녀오게 된다.
마스크를 쓰며 생활한지도 2년이 넘었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악덕업자들이 활개치는 한 감염병은 그치지 않고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의 개연성은 충분하다. 환경파괴가 이어지는 한 이 같은 재난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지구촌을 거쳐간 감염병 대부분은 환경파괴에서 비롯되었다. 코로나19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야외에서 물 위에 죽은 사마귀나 메뚜기 등 육식 곤충이 떠 있다면 연가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 “연가시”를 보면서 새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도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밤 10시 30분
산란장(産卵場) 명명
10여 년 동안 장수물에서 도롱뇽 산란을 살펴본 결과 알 낳는 곳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난 편리라는 이유로 산란장의 이름을 짓기로 했다. 물론 장수발자국 안에 산란이 시작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관찰하게 될 테지만 말이다. 내가 장수물 도롱뇽 산란기 관찰일기를 쓰는 이유는 도롱뇽이 산란하고 부화하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장수발자국 안에 낳는 알이 훼손되느냐 보존되느냐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아직 장수발자국 안에는 산란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근처 냇가에서의 산란 이야기가 중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장수발자국 안에 산란이 시작되면 자연스레 관찰은 그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제부터 도롱뇽이 알을 낳는 가장 남쪽은 남실, 중간은 중실, 지룡바위 서쪽은 서실이라고 정한다. 지금까지 봐 온 결과로는 남실에 가장 많은 알을 낳고, 다음은 서실이다. 아마도 물이 충분히 고이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다.
중실에 있는 알은 거의 하얗다. 남실에 있는 알도 바위에 붙은 알집을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다. 알이 전체적으로 하얗게 변했다는 건 죽었다는 뜻이다. 왜일까? 나도 모르겠다. 상위 포식자가 와서 뜯어먹은 것도 아니다. 알집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 알만 죽었다. 물을 만졌더니 손끝이 얼얼하다. 이 정도의 차가움이라면, 물이 너무 차가워서 죽은 건지도 모른다. 물론 나만의 추측이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30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31일 월요일 밤 10시 30분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일 화요일 밤 10시 30분
설이다. ‘마을 책방을 찾아서’ 마지막 기사를 펑크내고 맨붕 상태였다. 게다가 설 준비에서부터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 것 같다. 무척이나 피곤했다.
남편은 어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난 형님을 모시고 시댁인 서귀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집으로 돌아올 때도 각자 자신의 차를 몰고 와야 했다. 평화로를 달리면서 휘청휘청 잠이 몰려왔다. 운전 중 오른손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무사히 평화로를 벗어났다. 집으로 오기 전, 장수물에 들렀다. 새해가 되었지만 더 낳은 알은 없다. 물도 부쩍 줄었다. 이러다가 남은 알마저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아마도 비가 와야 다음 산란이 이어질 것 같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일 수요일 밤 10시 30분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3일 목요일 밤 10시 30분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4일 금요일 밤 10시 30분
미소는 치과에 다녀온 뒤 줌으로 접속하자고 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연우, 은설, 충영이와 함께 장수물로 갔다. 이 아이들은 작년부터 도롱뇽이 알을 낳을 때면 늘 봐왔다. 그래서인지 도롱뇽을 보러 가자면 기분이 업된다. 그러나 장수발자국 안엔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거의 열흘 동안 건조한 날씨다. 비가 온 뒤에야 알은 낳을 모양이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요새는 성체 도롱뇽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알이 죽은 건 일찍 산란하면서 추위를 이기지 못한 게 아닐까. 그러게 왜 그리 성급하게 나와서 알을 낳았을까. 안쓰럽기만 하다. 열흘 가까이 비가 오지 않고 있다. 장수물의 물도 그만큼 줄었다.
오늘이 입춘이다. 봄의 기운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어서 빨리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그 비를 기운 삼아 도롱뇽들은 다시 산란을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알 낳을 때가 되면 도롱뇽은 어쩔 수 없이 낳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날씨에 따라 산란 조절이 가능한 것일까.
주) 김병수 박사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제주도롱뇽은 제주에서 처음 확인되었지만, 전라도 경상도 서남해안 일대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제주 특산종이라기 보다는 한국 특산종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고 한다.
# 고봉선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