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롱뇽 관찰일기] (6) 2월 20일~2월 27일

‘제주도롱뇽 관찰일기’는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이자 ‘고봉선의 마을책방을 찾아書’ 필자로 독자들과 익숙한 고봉선 작가가 쓰는 생명 이야기입니다. 필자가 10여 년전 제주 항파두성의 장수물에서 우연히 마주친 도롱뇽 알이 매번 훼손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 매년 꾸준히 이들을 관찰해왔습니다. 제주도롱뇽은 몇 안 되는 한국고유종으로, 도롱뇽이 살고 있다는 건 청정지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멸종된다는 것은 질병 확산과 지구 기후위기를 알려주는 경고등인 셈입니다. 제주도롱뇽이 이곳에서 맘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필자의 호소는 결국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는 우리 모두의 호소이기도 합니다. 도롱뇽 알의 첫 산란에서 마지막 산란까지 관찰일기 연재가 이어집니다. / 편집자 글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아침 마당이 하얗다. 어제 날씨가 포근했음에도 도롱뇽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밤사이 눈이 쌓일 것을 도롱뇽은 이미 알고 있음이었다. 중실도 서실도 살얼음으로 덮였다.

누군가 다녀갔다. 서실 근처 조그만 바위에 내려앉은 눈 위로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서실에 있는 바위 하나도 서 있다. 아마도 잠자는 도롱뇽을 찾아 들춘 것이겠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1시 12분, 눈이 내렸다. 장수물에서 바라보는 북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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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 00분, 장수물로 내려가는 주변엔 희끗희끗 눈이 쌓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1시 02분, 중실은 물이 얼었다. 남실도 마찬가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서실 오후 1시 5분, 누군가 바위(뒤편 왼쪽)를 들춘 듯 세워져 있고, 물속에 알집 하나가 떼어진 채 따로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람들이 다녀간 듯 서실 근처 바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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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꾼이 장수물 입구를 지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오후 4시 50분

오늘도 제법 쌀쌀하다. 간혹 눈발이 날린다. 이들도 산란 예정일이 있는 것일까? 이런 추위에도 눈을 피해 낳은 알이 있다. 중실과 남실 사이 두 군데 하고, 서실에 새로 낳은 알이 보인다. 오늘도 성체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3시 56분, 장수물 입구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이다. 구름도 추위를 피하려는 듯 해를 향해 몰리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3시 50분, 중실과 남실 사이에 새로 낳은 알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3시 51분, 중실과 남실 사이에 새로 낳은 알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3시 53분, 서실에 새로 낳은 알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밤 11시 00분

오후 3시 5분, 장수물 입구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에서 폭포처럼 구름이 쏟아진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성체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날씨도 날씨지만 건조한 탓이 클 게다. 오늘도 어제처럼 이따금 눈발이 날린다. 그러나 내려앉기도 전에 사라진다. 서실에서 겨우 암컷 도롱뇽 한 마리를 보았다.

낮 12시 54분 서실, 새로 낳은 알이 보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장수물을 나와서 막 시동을 켰는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게 있다. 보호색을 띠었다. 무얼까? 새인 것도 같은데, 유리 너머로 찍어봐도 시원찮다. 날아 날까, 천천히 차를 몰며 뉴턴 했다. 그리고 멀리 세운 다음 조심스레 조수석 유리를 내렸다. 다행이다. 날아가지 않았다. 줌으로 당겼다. 처음 보는 새다.

이름이 뭘까? 철새는 아니다. 혹시나 하여 김봉현 편집국장님께 여쭤보았다. 호랑지빠귀라고 알려주셨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녀석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다. 때로는 맑게, 때로는 한이 서린 듯, 때로는 휘파람새처럼도 들렸다. 마치 우리네 삶을 울음으로 표현하는 새 같았다. 

오후 1시 7분, 장수물 입구에서 만난 호랑지빠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오후 5시 05분

여느 때처럼 지운이와 함께 갔지만 오늘도 성체는 보이지 않았다. 새로 낳은 알도 없다. 혹시라도 해서 구시물에 가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4시 20분, 구시물 앞에서 극락사 방향으로 바라본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밤 7시 15분

왜일까? 작년 오늘은 장수발자국에 이미 알을 낳았었고, 뜯어진 알들이 뒹굴고 있었다. 냇가에도 적잖게 많은 알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수발자국에 산란이 아직이다. 냇가에도 별로 없다. 무엇 때문일까?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6시 00분, 장수물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남실 오후 17시 51분, 먼저 태어난 알은 씨앗에서 떡잎이 돋아나듯 알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5일 금요일 오후 3시 10분

서귀포에 다녀오다가 들렀다. 중실과 남실에는 살아 있는 알이 별로 없다. 물이 좀 깊고 포근한 서실의 알들이 대부분 살아 있는 걸 보면 추위 때문인 것 같다.

오후 1시 24분, 남조로 교래리 근처에서 신호 대기 중 바라본 서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남실 오후 2시 35분, 머잖아 알들은 움직일 것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6일 토요일 오후 10시 20분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5시 04분, 장수물을 나와서 항파두리로 갔다. 토성 남쪽에서 바라본 동쪽 하늘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도롱뇽 관찰 연재를 막 시작했을 때 한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2005년에 제주로 이주한 후 딸 아이를 하나 낳고 산다는 독자는 초등학생 딸과 자연관찰을 즐긴다고 했다. 또 그만큼 환경도 걱정하고 계셨다. 

미술을 전공하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한다는 독자는 해마다 도롱뇽알을 봐 왔다. 그렇게 다니다가 올해 처음으로 성체 도롱뇽을 만났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없고, 검색으로는 더 헷갈렸다. 그러다가 내 기사에까지 닿았다는 것이다. 

도롱뇽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제주에서 만났다면 제주도롱뇽일 확률이 높을 거라고 답장했다. 그래도 모른다. 김병수 박사에게 메일로 받은 사진을 보내고 여쭤보았다. 도롱뇽은 외형적으로 구분하기 힘들고 유전자 분석이나 분포 지역을 반영하는 것이 정확한데, 일단 제주에서 발견된 것은 제주도롱뇽으로 보면 될 거라고 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독자에게 보내드렸다. 그렇게 메일을 주고받다가 톡으로 이어지며 정이 들었다. 

오늘 오후, 장수물에 가려고 핸드폰을 챙겨보니 독자에게서 톡이 와 있다. 딸과 함께 장수물에 다녀간다는 내용과 함께 안타까운 심경이 담겨 있었다. 

물가 가장자리에 낳은 알을 보았다. 말라죽을 것 같아서 딸이 물속으로 옮겨놓았다. 그랬더니 한시름 놓인다고 했다. 또 하얗게 죽은 알들을 보며 내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남은 알들이라도 무사히 부화했으면 하는 바람도 보냈다. 아뿔싸, 조금만 일찍 확인했다면 뵐 수도 있었는데 아쉬웠다.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

독자가 장수물에 있는데 한 가족이 오더란다. 아빠와 아이 둘이었는데, 그들은 알과 도롱뇽을 채집하기 위해 당당하게 도구까지 들고 왔더란다. 

“아빠, 도롱뇽 잡아. 나는 알을 담을게.”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독자는 화들짝 놀랐다. 

“어, 애들아, 여기 이거 잡으면 안 돼.”

그러자 아이는 

“왜요?” 

하고 묻더란다. 독자는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도롱뇽 보호 표지판'이 있는 데로 가서 읽고 오라고 했다. 아이 아빠한테도 여기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더니 멋쩍어하며 물러났다. 

지난 2월 초 제주특별자치도가 장수물에 세운 제주도롱뇽 보호 안내판. 우리나라 고유종인 제주도롱뇽(알 포함)은 보호대상으로 함부로 포획하거나 죽여선 안된다. 

이 가족은 곤충 채집하듯이 도롱뇽 채집을 나섰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뜻밖의 감시자(?)가 있어서 채집을 할 수 없게 되자 아이의 아빠는 나뭇가지로 물을 휘저었다. 성체 도롱뇽을 찾음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야, 도롱뇽 안 보인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 그럼 우리 밤에 올까요?”

하더란다. 이 가족은 이미 도롱뇽에 대한 상식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독자는 돌을 일구는 아이 아빠에게 자는 아이들 깨우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이들이 채집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의 아빠는 ‘아, 아, 어, 예, 예, 예’ 하면서 자리를 옮기더란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켜볼 수 있을 데까지 지켜봤다고 했다.  

몇몇 독자가 염려하는 것처럼 나의 관찰 연재로 인한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긍정할 수도 없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긍정의 효과를 바라고 연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독자가 얘기한 그 가족이 나의 관찰 연재를 보고 왔다면 채집통까지 들고 당당하게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그 가족이 장수물에 올 땐 이미 사람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관찰 연재를 읽은 사람이 당당하게 채집통을 들고 온다? 쉽지 않은 일이다. 채집통을 숨기든지 돌아가던지 눈치를 보는 게 보편적이다. 

어쩌면 이 가족은 이곳에 도롱뇽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해마다 채집하러 왔을 수도 있다. 올해도 산란기에 맞춰 여느 해와 다름없이 당당하게 왔을 것이다. 그렇게 왔는데 분위기가 다르다. 표지판에 세워져 있는가 하면, 돌을 일구지 말라고 하면서, 채집조차 말리는 사람이 있다. 

나의 관찰 연재가 아니어도 이곳에 도롱뇽이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그러나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모르고 있다. 그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도롱뇽알이 뜯겨 있어도 물에 넣어주는 게 아니라 나뭇잎과 함께 쓸어버렸다. 그동안 보지는 못했지만 계속 채집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도롱뇽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관리하는 사람도 나뭇잎과 함께 쓸어담진 않을 것이다. 그 가족도 당당하게 채집통을 들고 오진 않을 것이다. 보호판을 세우는 날 청소하러 왔다가 만난 사람들도 이제 산란기 동안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이번 관찰 연재를 계기로 사람들이 도롱뇽 보호의 중요성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 독자가 오늘 한 가족이 도롱뇽을 채집하려는 걸 막아준 것처럼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이다. 

도롱뇽 채집,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어릴 땐 그랬다. 어린 시절 올챙이는 꽤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냇가에 가면 고무신으로 올챙이를 떠서 놀다가 뜨거운 바위에 진열하듯이 늘어놓으면 말라죽기도 했다. 특히 밭에 갔는데 일하기는 싫고, 그러면 냇가로 나와서 혼자 그렇게 많이 놀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잔인하다. 그런데 잔인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진짜 부끄럽고 미안하다. 어떻게 그러한 짓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과 달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가도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집에서도 심심하면 냇가에 가서 많이 놀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조금의 물이라도 고여 있는 바위가 있다. 그런 바위는 대부분 나무 밑인데 낙엽이 많고 올챙이도 많았다. 내가 자주 가던 바위엔 일반적인 개구리와 조금 다른 개구리가 살았다. 

학명은 모른다. 기억나는 건 고치두테비라고 했다는 사실 뿐이다. 개구리를 통틀어서 우린 두테비라고 불렀다. 고치두테비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구리보다 작고, 청개구리보다는 크다. 어릴 적 기억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색깔도 흙에 가까우며 배에는 고춧가루가 묻은 것처럼 빨간 점들이 찍혀 있다. 그래서인지 고치두테비를 잡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난 언제나 매운맛을 느꼈었다. 약용 개구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난 심심하면 혼자 그 바위에 가서 올챙이며 개구리를 잡으며 놀았다. 간혹 식용 개구리를 만나면 잡아서 구워먹기도 했지만, 그땐 올챙이도 개구리도 오로지 놀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젠 놀이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이 되었다. 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보호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면 작년에도 어느 독자의 댓글처럼 보호판을 세우려고 민원 넣으며 공무원들이 성가시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채집통을 들고 당당하게 나타난 그 가족처럼 나도 도롱뇽이 자거나 말거나 대낮에 돌을 일구며 도롱뇽을 찾는답시고 휘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관찰 연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이곳을 알고 있고, 또 그 사람들이 지금껏 채집했다면 우린 그러지 못하도록 알려줘야 한다. 김병수 박사의 SNS를 들여다 보면, 어느 날 그는 제주도롱뇽을 모니터링하면서 두 딸과 함께 국수건지기를 챙기고 장수발자국에 갔다. 왜? 채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김병수 박사의 SNS에 올려 있는 내용을 퍼왔다.

2018년 3월 4일
오늘 장수물! 
올해도 김통정장군 발자국에 제주도롱뇽 알이 보이네요. 무사히 부화 되기를 바라지만 혐오스럽다고 매년 치워버리는 것 같아요. 대개는 며칠 후에 가 보면 알이 안 보입니다. 올해는 어떨는지….
일단 바닥에도 알이 보이길래 말라버리기 전에 딸이 수심이 깊은 곳으로 옮겨줬는데 성체까지 잘 자라줬으면 합니다.
도롱뇽이나 개구리 같은 양서류들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생산자에서부터 최상의 포식자까지 이어지는 에너지 흐름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합니다. 변온동물이라 체온 유지를 위해 대사열은 이용할 필요가 없지요. 도롱뇽 알들이 잘 부화하고 성체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려요^^

2018년 3월 4일, 김병수 박사의 딸이 뜯긴 도롱뇽 알을 수심이 깊은 곳으로 넣어 주기 위해 국수건지기에 담았다. 사진=김병수. ⓒ제주의소리
2018년 3월 4일, 김병수 박사의 딸이 뜯긴 도롱뇽 알을 수심이 깊은 곳으로 넣어주고 있다. 사진=김병수. ⓒ제주의소리 

김병수 박사는 왜 이런 글을 SNS에 올리고 있을까? 학자여서가 아니다.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도롱뇽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던 사람들도 산란장소가 공개되면서 보호해야 하는 대상임을 알 수 있잖을까? 그러면 훼손을 막는 감시자도 늘어나지 않을까. 두루두루 머리가 지끈거리는 밤이다.

오래 전이다. 나이 30을 앞둔 나의 막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었을 때다. 그때 녀석은 올챙이 잡는 놀이에 아주 흠뻑 빠져 있었다. 학교 끝나면 냇가에 들러 올챙이를 잡기 위해 버스도, 학원 차도 타지 않고 하귀에서 걸어 왔다. 오다가 냇가에 들러서 올챙이를 잡는 것이다. 

그때 녀석은 한 아이와 유독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의 아빠는 나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어느 날인가, 퇴근하고 와서 보니 올챙이를 두 개의 소줏병에 놓고서는 친구와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다. 잡은 올챙이 중 큰 올챙이는 자기가 가지고, 작은 올챙이를 나눠 준 것이다. 올챙이는 자기가 잡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친구도 큰 올챙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그래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큰 올챙이는 금방 개구리가 되어 떠날 테니 작은 올챙이가 좋다고, 그렇게 달래며 큰 올챙이를 친구에게 나눠줬다. 집이 동귀였던 친구의 아빠가 아들을 데리러 왔다. 친구가 간 뒤, 막내는 서럽게 울었다. 그런 아들에게 일요일엔 엄마랑 같이 올챙이 잡으러 가자고 달랬다.
드디어 일요일이 돌아왔다. 막내와 난 소쿠리에 유리단지까지 들고 갔다. 기껏해야 손바닥으로 한두 마리씩 잡던 녀석은 획 휙 건져 올려지는 올챙이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원 없이 올챙이를 잡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햄스터 집에서 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청개구리가 되었고, 배를 뒤집으며 죽어갔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먹을 걸 물속에 넣어줬지만 소용없었다. 막냇동생에게 물어봤더니 익사하는 거라고 했다. 청개구리가 익사?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개구리가 된 이상 물속에서 헤엄만 치며 살 수는 없다. 쉬어야 하고, 숨도 쉬어야 했다. 별수 없이 모두 다라이에 풀어 놓고 마당에서 키웠다. 개구리가 되면서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떠났다. 그때 한동안 엄마 때문에 올챙이가 모두 도망갔다고 막내는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그 후 일이다. 그땐 남편도 나도 식물에 미쳐 있었다. 그렇게 날마다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정리하던 어느 날이다. 남편이 정리하는 사진에 이상한 게 있었다. 남편은 그게 뭔지 알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나도 어릴 때 보기만 했을 뿐, 맨주기뽓(올챙이 알집)이라고 불렀다는 사실 외엔 아는 게 없었다. 이미 중학생이 된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소리로 아는 체했다.

“어, 도롱뇽 알이네.”

“정말? 네가 어떻게 아는데?”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과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녀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즉슨, 위의 일들이 벌어지던 그날이란다. 건져온 올챙이를 다라이에 넣었을 때 저런 게 있었는데 한참 후엔 그 자리에 새끼도롱뇽이 있더란다. 그때 비로소 난 도롱뇽알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도롱뇽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7일 일요일 밤 11시

오후 2시 53분, 장수물 입구에서 파노라마로 바라본 동⸱북⸱서 삼 방향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어제에 이어 오늘도 화창하다. 영준, 서윤, 승연이랑 함께 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수발자국엔 도롱뇽알이 없다. 작년에 영준이는 도롱뇽알을 보면서 징그럽다고 했었다. 생김새가 징그럽다는 게 아니라 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고 갔는데 없으니 영준인 어리둥절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작년과 비교하면 올해는 산란 정도가 꽤 늦다. 강수량은 도롱뇽 번식 개체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작년 2월과 올해 2월 기상청 날씨를 검색해 보았다.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 왜?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아직은 산란 절정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기다려 보자!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2시 46분, 작년부터 도롱뇽 알을 보아온 아이들이 도롱뇽 알을 살피기 위해 장수물로 내려가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후 2시 47분, 장수물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장수발자국으로 가서 살핀다. 그러나 장수발자국엔 아직 도롱뇽이 산란하지 않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 고봉선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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