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케이팝 제주 YT엔터, 구설수 오른 2014년 인천 케이팝 주최사와 동일
개최 전부터 일부 우려 목소리...마케팅 협약 맺은 관광협회, 확인 부족 제주시

화려한 라인업을 내세운 ‘케이팝 엑스포 인 제주’(이하 케이팝 제주)가 개막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13일부터 19일까지 일주일 동안 티아라, 시스타, 인피니트, 장미여관, 노브레인, 남진, 태진아 등 수많은 가수들이 제주시 종합경기장 주경기장과 한라체육관 무대에 오를 계획이었지만 실제 공연은 13일 오후 6시 개막공연 단 한 차례 뿐이었다. 

행사를 준비한 (주)YT엔터테인먼트(이하 YT엔터)는 ‘제주시의 일방적인 부스 철거 조치’로 결국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주시는 체육시설에서는 취사와 음주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주최 측이 지키지 않았다며 책임을 상대방에 돌렸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스케일의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이 무산됐다는 소식에 아쉽다는 의견이 일부 있지만, 이번 파행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지역 관광, 공연 등 관련 업계에서는 행사 개최 전부터 이미 우려를 보였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A씨는 “제주에서 이 정도 규모의 행사가 열리면 이미 항공이나 숙박 쪽에서는 반응이 오기 마련이다. 예약이나 문의가 이어져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너무나 조용했다”고 말했다. 

케이팝 제주 메인무대인 주경기장에는 4000여 좌석이 마련됐다. 13일 오후 7시 개막식에 모인 인원은 500여명 수준이었다. 그 중에는 행사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개막식 무대를 장식한 가수는 티아라, 포미닛, 피에스타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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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열린 케이팝 제주 개막식 공연. 좌석 대다수가 비어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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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 야외에 설치된 음식 부스. 제주시 체육시설에는 취사나 음주행위가 금지돼 있지만, 케이팝 제주 부스는 이 같은 부스가 상당수 설치돼 결국 사용 허가 취소의 빌미가 됐다. ⓒ제주의소리

주최 측은 남성 7인조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가 출연하는 17일(화) 티켓은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선호하는 가수에 따라 팬들의 반응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공연 당일 전체 좌석의 10%밖에 차지 않았다는 점은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개막 하루 만인 14일 오전 서울에서 내려온 무대 장비 업체가 비용 문제를 이유로 한라체육관 무대를 철거하는 등 행사 전반에 있어서 잡음이 이어졌다.

더욱이 행사 주최사인 YT엔터는 이미 2014년 인천에서도 비슷한 공연 개최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YT엔터는 SS엔터테인먼트라는 명칭으로 당시 9월 19일부터 10월 5일까지 ‘케이팝 엑스포 인 아시아’라는 공연을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 경인아라뱃길 북인천복합단지에서 열었다. 인천아시안게임 기간에 맞춘 대규모 행사였다. 시크릿, 걸스데이, 시스타, 2PM 등 유명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락, 힙합, 인디, 7080, 트로트 등 다채로운 공연을 계획했다. 케이팝 제주와 유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19일 시작한 인천 공연 역시 저조한 반응으로 일부 공연만 하고나서  5일만인 9월 24일 모든 일정을 취소해 파행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당시 상황을 취재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행사장인 북인천복합단지는 전기나 수도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열악한 장소였다. 많은 업체들이 행사 부스로 참여했지만 결국 큰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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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SS엔터가 2014년 인천에서 개최한 '케이팝 엑스포 인 아시아' 공연 포스터, 오른쪽은 YT엔터가 올해 제주에서 개최한 '케이팝 엑스포 인 제주' 공연 포스터. SS엔터와 YT엔터는 구성원이 상당수 동일한 업체로 확인됐다. ⓒ제주의소리

체육시설에서는 취사·음주행위가 금지된다는 제주시 규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부스를 모집해, 결과적으로 상인들이 항의하는 이번 사례와 비슷하다. YT엔터 대표 심용태씨는 당시 SS엔터 소속으로 행사 조직위 총감독을 맡았다.  

행사 파행이 최종 결정되고 14일 종합경기장 내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심 대표는 "2014년 인천 행사에서 심 대표가 조직위원회 총감독을 맡았고, 그 당시 소속이 SS엔터가 맞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사실상 같은 회사가 인천에 이어 제주에서도 유명 아이돌 그룹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를 앞두고 보여준 제주도관광협회(회장 김영진)와 제주시의 모습은 아쉽기만 하다. 행사 내용이나 주최사를 제대로 검증하기 보다는 편승하려는 모습이 강했다.

제주도관광협회는 지난 2일 YT엔터와 공동 협력마케팅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케이팝 제주의 후원기관으로서 회원사 및 도내 주요기관을 통한 홍보에 적극 협력한다고 약속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탐나오(협회의 예약 시스템) 예약 지원만 나섰을 뿐”이라며 뒤늦게 선을 그었다.

관광협회와 달리 제주관광공사 등은 YT엔터의 후원 요청을 받았으나 행사 내용이나 주최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요청을 물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도관광협회(회장 김영진)와 YT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 겸 총감독 심용태)는 5월2일 오전 제주웰컴센터 3층 대회의실에서 ‘K-POP EXPO in Jeju’의 성공개최를 위한 공동 협력마케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제주의소리.jpg
▲ 제주도관광협회(회장 김영진)와 YT엔터테인먼트(대표이사 겸 총감독 심용태)는 지난 2일 케이팝 제주 성공개최를 위한 공동 협력마케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는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종합운동장 시설 사용 허가에 앞서, 관련 동향과 정보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였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최 측은 종합운동장 사용 허가 신청시, 이번 행사로 인해 몇 십 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것이라고 제주시에 밝혔다. 비록 허황된 계획을 제공한 주최 측의 잘못이 크다 해도, 제주시 역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허가를 내줬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제주 공연기획자 B씨는 “아직까지 지역 문화관광 당국은 행사를 하면 인원이 얼마나 오는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오는지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며 “내실이나 취지는 자세히 신경 쓰지 않으니 ‘사람만 많이 오면 성공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판단하고 그런 취지의 공연들이 제주에 열리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진정으로 도민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한다면, 보다 다양한 색깔의 예술이 제주에서 펼쳐지도록 행정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일부 지자체들이 케이팝이라는 화려한 이미지에 기대 행사나 시설 같은 전시성 행정을 벌인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지역 문화관광 당국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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