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제주4.3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된다. 1948년 미군정 하의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참극은 3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세계사에서 전쟁 지역이 아닌 좁은 공간에서 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은 없었다. 2003년 10월15일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4.3문제는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제주의소리>가 △진상규명 △명예회복 △미국 책임 규명 △배·보상 △정신계승 등 4.3문제의 완전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4.3 70주년 D-1년> 연중기획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 제주4.3평화기념관 5관에서 제주4.3사건에 대한 故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제주도민들에게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4.3 70주년 D-1년] (5)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금지 소송 대법원 계류...'4.3흔들기' 끝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제주4.3평화기념관 제5관. 벽에 걸린 TV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이제야말로 해방 직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 불행한 사건의 역사적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3년 10월31일 라마다호텔제주에서 열린 4.3희생자 유족 400여명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발언이었다.

순간 TV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70~80대 어르신이 된 유족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뼉을 마주쳤다. 잠시 적막이 흐른 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겠습니다.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남은 제주4.3사건의 역사 속에 故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도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4.3 발발 55주년이 되는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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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2관에 전시된 故 이승만 대통령 관련 채록. 서북청년회 출신 박형요 경찰의 증언이 기록돼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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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2관에 전시된 故 이승만 대통령과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의 전시물.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시간은 다시 흘러 7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대립과 분열은 여전히 4.3을 흔들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제주4.3평화기념관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4.3평화기념관은 총사업비 380억원을 투입해 제주시 봉개동 중턱에 지하 1층, 지상 4층 연면적 1만1456㎡ 규모로 2008년 3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는 상설전시실, 지상 1층은 대강당과 4.3유물 및 전시자료의 보존관리를 위한 수장고, 2층은 기획전시실, 3층은 개가자료실, 4층은 회의실 등이 들어섰다.

관람은 1관(역사의 동굴)을 시작으로 2관(흔들리는 섬), 3관(바람타는 섬), 4관(불타는 섬), 특별전시(다랑쉬굴), 5관(흐르는 섬), 6관(새로운 시작) 등의 순서로 하게 된다.

2008년 건립 이후 지금까지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기념관을 찾았지만, 보수단체 인사들은 7년이 지난 시점에 느닷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 등 6명은 2015년 3월20일 제주도지사와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4.3평화기념관 전시물을 전시금지해 달라며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이씨 등은 재판에서 제주4·3사건의 본질이 공산주의 정당인 남로당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고 한반도에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평화기념관 전시물이 남로당의 공산주의 정치노선이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불법 폭력투쟁을 숨기고, 군경에 의한 진압의 당위성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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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이 제3관에 전시된 <제주5.10선거를 거부하다> 내용을 주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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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기념식에 참석한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남한 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故 이승만 대통령의 정읍발언에 대해서도 한반도 분단의 시발점이었던 것처럼 설명해 분단과 6·25전쟁에 대한 책임을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제주4·3사건의 주체를 남로당이 아닌 제주도민의 투쟁으로 묘사하거나 제주4·3사건과 관련이 없는 여러 민중항쟁의 역사를 전시해 4·3사건을 왜곡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반면 제주4.3평화기념관은 2000년 공포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8조(위령사업)의 제주4.3사료관 건립 근거에 따라 개관한 시설이다.

다시는 4.3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세에 교훈을 주는 역사적 교육공간을 설립하자는 취지였다. 비극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도 담고 있다.

전시물은 2003년 10월5일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보고서를 작성한 기획단은 2년간 28개 기관에서 1만594건의 문헌자료를 수집했다.

농부와 군인, 경찰, 우익단체, 좌익단체, 공무원 등을 포함해 503명의 증언을 채록했다. 보고서 작성 후 기관과 단체, 개인으로부터 376건의 수정의견도 접수 받았다.

기념관은 이 같은 자료를 근거에 뒀다. 개관에 앞서 4.3평화공원조성자문위원회가 구성돼 전문적인 자문을 진행했다. 검증과 자료 확보에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법원도 기념관 전시물이 진상조사보고서 내용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원고들이 지적한 전시물이 적극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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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4관에 전시된 6.25전쟁 당시 제주의 모습. 제주도민들은 조국을 지키려한 사람이 어떻게 빨갱이가 될수 있냐고 항변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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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2관에 전시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내용. 1949년 1월21일 국무회의록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전시물이 직접적으로 해당 사실관계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는 표현을 대체로 사용하지 않고 신문기사와 국회회의록, 서신 등 사료와 증언을 근거로 전시한 점도 강조했다.

특히 기념관 설립 근거에 비춰 이념적인 갈등상황으로 책임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양민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와 평화재단이 전시 내용을 왜곡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겨 故 이승만 대통령 등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6년 12월16일 열린 항소심 선고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같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불복한 원고들이 곧바로 상고하면서 현재는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한국 현대사 분야의 ‘1호 박사’인 서중석(69)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제주4.3평화기념관을 해방 이후 역사적 사건을 소개한 국내 기념관 중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우리 현대사는 특히 틀리기 쉽고 오해도 부를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제주4.3평화기념관은 해방시기에 대해 철저하게 실증적으로 정확하게 고증을 해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료는 물론 설명도 잘 돼 있어 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교육자료가 될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제주4.3평화기념관 방문객은 개관 첫해 10만100명에서 2014년 14만700명으로 증가한 뒤 2015년 16만1000명, 2016년은 20만1000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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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 전경.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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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평화기념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남긴 글귀가 기념관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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