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법률 유보 원칙 어긋나"...고현수 "심히 유감" 이의

17일 열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 사진=제주도의회 
17일 열린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 사진=제주도의회 

찬반 단체 간 갈등 속에서 지난 3월 한 차례 심사 보류됐던 '제주특별자치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이 수정된 내용으로 다시 다뤄졌지만, 11대 제주도의회 마지막 회기에서도 최종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혐오표현방지 조례는 결국 이번 도의회가 끝나면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이상봉)는 17일 속개한 제405회 임시회에 상정한 '제주도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조례안'을 의결 보류했다. 조례의 세부 내용이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배된다는 제주도정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다.

'법률 유보' 원칙이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에 있어서는 반드시 상위법률로 규정돼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고현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이 조례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주거나 개인 또는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해 사회적 해악을 야기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혐오표현을 막기 위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혐오 표현으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해 평등권을 실현하고 인간 존엄과 가치를 구현한다는 목적이다. 고 의원이 혐오표현 피해에 노출돼 온 장애인 당사자라는 점에서도 주목된 조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당 조례는 찬반 의견이 격하게 부딪히며 지난 3월 보류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조례상에 포함된 '혐오표현'에 대한 해석의 범위가 너무 넓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이 일면서다. 특히 국회 차원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차별금지법'과 연계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가 분출됐다.

이에 고 의원은 자문을 거쳐 기존의 '혐오 표현'을 '차별 표현'으로 수정하고, 혐오표현 사용자에 대한 패널티 조항을 배제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새롭게 제시했다.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혐오 표현'과는 달리 '차별 표현'의 범위는 상위법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이미 규정돼 있다는 설명이다. 또 '법률 유보'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혐오표현 행위자에 대해서는 규제를 가하는 것이 아닌 '구제'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제주도는 이 역시 법률 유보 원칙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승배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행정의 입장에서는 찬성이냐, 반대냐 입장을 낼 사안이 아니지만, '차별표현'의 해석 자체가 추상적이다보니 법률 유보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차별표현으로 인한 도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공감하지만, 차별표현 사용자의 인권 역시 균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차별표현 사용자에 대해 패널티를 주겠다는 내용이 어디에 담겼나"라고 반발했지만, 김 국장은 "구체적인 표현은 없지만, '구제해야 한다', '교육해야 한다'는 식의 유사한 조항이 있지 않나"라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다른 의원 역시 해당 조례의 법률위반 소지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경용 의원(국민의힘)은 "피해자 지원 시책과 관련된 것 중에 차별 표현을 중재하도록 해야하고, 피해 원상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한다는 조항이 핵심이 되는 것 같다"며 "이 내용이 조례에 담겨있기 때문에 관련 활동이 사법부로 가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행자위는 자체적인 논의 끝에 해당 조례의 심사를 보류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표현으로는 심사 보류지만, 사실상의 부결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고 의원은 "수정된 조례마저 법률 유보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해석하는 행정기관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