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차별철폐대행진] 김영순 고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선진국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던 대한민국. 하지만 이태원 참사, 노동시간 연장 추진, 야간집회 금지, 건설노동자 양회동 분신 등 어느 때부터 어떤 이유에서 곳곳에서 극심한 갈등과 사고가 나타나고 있다. 세상을 이롭게 바꾸는 건 혐오와 차별이 아닌 연대의 힘이다. [제주의소리]는 12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진행하는 '2023제주차별철폐대행진'을 소개하는 기고를 연속해서 싣는다. / 편집자 주

1971년 10월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추석 제사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1971년 10월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추석 제사 모습.(사진은 기사 내용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제사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첫딸을 낳고 시집을 방문했던 때의 일로 시작된다. 

당시 시집에는 남편의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는 딸아이를 안고 온 나를 보자마자 “우리 며느리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라고 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우리 손자가 작은 각시 얻어서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너무 불쌍해서 그래”라고 하셨다. 당신 제사를 지낼 아들인 자손이 꼭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의례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사는 조상을 모신다는 의미를 넘어서 막중한 책임감과 과제로 여겨져 왔다. 특히나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사에 대한 의미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제주의 역사와 사회문화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제주에서 혼사를 앞두고 ‘집안에 제사를 몇 번 지내느냐’ 묻는 질문은, 신부집에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중요한 정보였다. 앞으로 시댁의 제사를 지내느라 고생할 딸을 걱정하는 친정부모님의 우려가 묻어있는 질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부인이 될 사람에게 제사 횟수를 줄여서 이야기했다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제사문화가 많이 간소화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서 필자가 60여 년의 삶 속에서 경험한 제주지역의 제례문화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제사문화야말로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문화를 반영하고 불평등한 성역할을 강제하는 대표적인 현장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사는 여성들의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2018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연가를 사용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들은 32.8%가, 남성은 18.3%가 그렇다고 답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제사 준비는 육아와 함께 상당한 피로감을 주고 있는 집안 행사 중 하나이다. 

여성들의 시간과 노동력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제사와 관련한 모든 현장에서  성불평등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단독 주택에서 제사를 하는 경우, ‘제사 먹으러 가는’ 친족 남자들은 현관으로, 노동을 하러온 여자들은 부엌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제사가 끝나 음식을 나눠 먹을 때 남자 어른들은 거실에서, 여자들은 부엌 쪽에서 남자들의 식사가 끝난 후에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마저도 식사 도중에 과일이며, 차를 대접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많은 제주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제사 문화의 단면이다. 

제주의 제사문화는 일상의 성불평등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제사의례는 여성이 할 수 없는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제사의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남성’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아들이 없는 친정에서 자란 50대 이상의 여성들은 친정의 제사를 지낼 ‘양자’를 들이는 장면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양자로 들어온 친족은 제사를 지내는 대신 그 집안의 재산을 가져갔다. 재산이 없는 집안에서는 딸이 결혼하면 더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도 한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는 남아선호와 양자제도가 제주에서 계속하여 존재했던 이유는, 강력한 유교문화의 전통 속에서 남성 중심의 제사로서 이어져왔기 때문이었다.

지난 5년 동안 제주여민회 진행한 ‘제주여성 4.3의 기억’ 구술채록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제사와 양자제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어르신은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몇 년 동안 온갖 대소사를 치뤘지만, 혼인신고도 되지 않은 채 남편이 사망해버려서 빨갱이 가족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재혼을 선택했다. 세월이 흘러 4.3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이 이뤄지고 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가족으로 인정이 불가능했다. 이때, 할머니의 한탄이 나온다. 

“식게·멩질 다 했주만은….” 

결혼 후 4.3으로 남편이 행방불명되거나 사망했음에도 혼자의 몸으로 그 집안을 위해 할 일을 다 함으로써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으니 마땅히 가족의 권리도 인정받고자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어떤 어르신은 어린 남동생 하나만을 남기고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자, 어린 동생을 데리고 결혼을 했다. 시집의 ‘식게’, ‘맹질’을 다 지낸 후에 부엌 한켠에서 어린 남동생과 친정부모님 제사를 눈물로 지내다가 동생이 장성해 결혼을 하게 되자, 이제는 떳떳하게 부모님 제사를 동생이 할 수 있게 됐다며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의 역사 속에서 제사가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왔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한편, 최근에는 고인의 기일에 맞춰 각각 지내던 제사를 ‘합제’해 하루에 지낸다든지, 기일 하루 전, 자정에 맞춰 끝내는 ‘전일제’가 아니라 당일 8시에 제사를 지내는 ‘당일제’로 바꾼다든지, 부부가 전부 사망했을 경우, 한 분의 기일에 맞춰 부모님의 제사를 함께 모시는 ‘합제’를 진행하거나, 집안의 가장 웃어른의 기일로 집안 제사 전부를 단 하루로 맞추어 제사를 지내는 집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사회의 제례문화는 많은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제사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젊은 층과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통을 도외시하고 조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만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가족의 의례를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성별로 역할이 구별되지 않는 새로운 제례문화의 정착은 제주사회가 일상에서 성평등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아선호에서 파생된 양자제도를 낳은 제사문화의 변화,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김영순 고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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