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차별철폐대행진]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신강협 상임활동가  

선진국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던 대한민국. 하지만 이태원 참사, 노동시간 연장 추진, 야간집회 금지, 건설노동자 양회동 분신 등 어느 때부터 어떤 이유에서 곳곳에서 극심한 갈등과 사고가 나타나고 있다. 세상을 이롭게 바꾸는 건 혐오와 차별이 아닌 연대의 힘이다. [제주의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각계의 목소리를 연속해서 싣는다. / 편집자 주


2023년 4월 3일, 제75주기 제주4.3 국가 추념일을 앞두고, 제주에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4.3을 공산폭동으로 규정하는 현수막이 제주도 전역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이를 철거하는 데에 제주시와 서귀포시 시장은 법적 처벌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추념일 당일 자칭 ‘서북청년단’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추념식장 앞에 나타나 제주도내 시민단체 회원들과 충돌하였고, 제주도내에서 주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주장을 일삼아 왔던 이들이 4.3에 대한 혐오 주장을 담은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4.3 당시 제주도민들에 가해진 학살은 정당한 이념투쟁의 하나였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이념은 옳았고, 4.3에서 희생된 양민들은 부수적인 피해일 따름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그 자신들의 행위에 있어서 아무런 가치있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제주도민은 빨갱이’라는 차별적 인식이 가득했다. 그러한 차별의식에 있어서 제주도민들은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나쁜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빨갱이를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마음은 애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제주4.3을 더 극악한 상황으로 몰아갔으며, 제주도민들을 학살하기에 이른다. 훌륭한 반공투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제주도민을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빨갱이’라는 딱지는 제주도민들에게 주홍글씨처럼 남아, 살아남은 제주도민들의 나머지 삶조차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자신은 옳고 정당하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모두가 다 ‘종북’이고, ‘건폭’이며 ‘반국가 세력’인지도 모르겠다. 맨 왼쪽부터 서북청년단 정함철, 국토부장관 원희룡, 대통령 윤석열.<br>
자신은 옳고 정당하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모두가 다 ‘종북’이고, ‘건폭’이며 ‘반국가 세력’인지도 모르겠다. 맨 왼쪽부터 서북청년단 정함철, 국토부장관 원희룡, 대통령 윤석열.

2023년, 제주도와 조금, 아주 조금 연관이 있다고 ‘빨갱이의 자식’이라며 친구에게 가학적 폭력을 가했던 어린 학생의 무의식은 한국사회에 여전히 제주도민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존재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한국사회는 이념투쟁에 몰두하며 상대를 차별하고 배제하려 애쓰고 있다.

제주도민들에게 ‘빨갱이’라는 차별적 인식과 혐오적 행동을 남발하지만, ‘빨갱이’가 무엇인지, 왜 제주도민이 빨갱이인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과거에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제주도민은 빨갱이인가? 종북, 종북 떠들어대고 있는데, 과연 누가 종북인가? 종북이라고 떠들어대면 그가 종북인가? 극우세력이 그렇게 혐오하는 인민재판이 연상되는 여론재판을 지금 이 나라에서 벌이는 있는 정치혐오자들이 바로 그 자신들이지 않을까?

역사적 정의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무가치해진 이념투쟁은 차별과 혐오, 그리고 학살과 괴롭힘만을 남길 뿐이었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 의식에 기대어 제주도민들에 대한 간첩 혐의 씌우기는 현재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회장은 남성이고 여성은 부녀회장 정도, 장애인은 그저 우리가 도와줘야만 하는 대상, 어린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 아닌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 어찌 되었든 외부인인 육지것들, 돈 좀 벌어보겠다는데 방해만 하는 노동자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 등등 제주도내에서 한 사람들의 존재를 격하시키고 낮추어 분류하며 차별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제주시민사회단체는 제주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구성하였고, 2022년에는 한 제주도의원과 함께 ‘혐오표현 방지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시도했다. 앞으로도 혐오와 차별 관련 대응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 정의가 사라진 역사는 학살조차도 정당화할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사회적 정의가 사라진 사회는 이리저리 제멋대로 규정된 사회적 존재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입맛대로 자기 생각에 따라 사람들을 규정하고 공격한다.

자신은 옳고 정당하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모두가 다 ‘종북’이고, ‘건폭’이며 ‘반국가 세력’인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다 정당하게 공평한 사회라는 정의가 사라지고, 차별의식이 강화되며 혐오 행동이 정당화하고 있는 현재 사회는 분명 위기이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인권은 실현 불가능이다. 역으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의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모두가 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여기에 차별과 혐오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끝] /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신강협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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