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차별철폐대행진]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선진국이란 표현이 낯설지 않던 대한민국. 하지만 이태원 참사, 노동시간 연장 추진, 야간집회 금지, 건설노동자 양회동 분신 등 어느 때부터 어떤 이유에서 곳곳에서 극심한 갈등과 사고가 나타나고 있다. 세상을 이롭게 바꾸는 건 혐오와 차별이 아닌 연대의 힘이다. [제주의소리]는 12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진행하는 '2023제주차별철폐대행진'을 소개하는 기고를 연속해서 싣는다. / 편집자 주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 무지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 사진=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br>
서울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 무지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성소수자 부모모임. / 사진=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성소수자 당사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은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진의 선봉에 선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행진 구호와 함께 마무리된다.

“성소수자가 행복할 권리! 당신이 행복할 권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소수자 부모입니다! 나는 내 자식이 자랑스럽습니다!”

6월 2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한 공간에서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의 GV(관객과의 대화) 및 상영회가 열렸다. 다큐멘터리는 성소수자 당사자인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 변화되는 가족, 또 다른 개인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을 맞아, 제주 강정마을 ‘강정교차로’ 프로젝트로 ‘프라이드 주간’이 운영됐다. 다큐 ‘너에게 가는 길’의 상영과 GV도 해당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가장 주요한 이벤트로 진행된 것이었다. 그 의미가 큰 기획에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도 기꺼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이다.

GV 현장은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함께 외치고 사회적 소수자를 보듬는 장이 어디도 아닌 제주, 또 다르게 투쟁하고 있는 작은 마을 강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무척이나 의미 있고, 언제고 기억에 남을 새로운 ‘프라이드 먼스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그처럼 기쁘고 간직하고 싶은 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퀴어문화축제를 향한 행정 차별은 실로 조직적이고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무장했다. 춘천시의 춘천퀴어문화축제 공원 사용 불허 통보부터, 서울시가 행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 통보, 홍준표 대구시장의 공무원 500명을 대동한 대구퀴어문화축제 방해 행위까지. 이는 윤석열 정부의 혐오 양산 정치에 영향을 받았음이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정부 및 관공서의 행정적 차별은 퀴어문화축제 개최에 있어 해마다 반복되는 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 ‘피스파인더’의 무지개 현수막(왼쪽)과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내건 환영 현수막(오른쪽).&nbsp;/ 사진=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br>
. ‘피스파인더’의 무지개 현수막(왼쪽)과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내건 환영 현수막(오른쪽). / 사진=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작년 10월,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3년 만에 ‘제주퀴어문화축제’를 개최했다. 네 번째 축제였다. 제4회 축제의 슬로건은 ‘모다들엉, 퀴어의 섬’으로, 긴 공백기만큼 단절을 겪었을 이들에게 다시금 안부를 묻고 싶다는 의미로 내걸렸다. 휴식기, 또 코로나의 영향으로 아주 오랜만이었던 만큼 설레고 초조한 마음으로 준비한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축제 당일, 참여자들은 장내 공원에 저마다 챙겨온 돗자리를 펴고 비눗방울을 불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간만이라며 포옹하거나 편안한 듯 하늘을 보고 눕는 장면들은 우리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축제를 잘 마무리하고도,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서도 조직위는 이 모습을 마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은 것 같다는 소회로 추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꼭 해야겠어요?’ 우리는 답한다. “우리가 축제하지 않을 이유, 축제하지 못할 이유, 없다”고! 퀴어문화축제는 아주 다양한 소수자의 많은 모양을 말한다. 그것이 단 하루더라도 거리에 나와, 만들어진 ‘정상’의 꼴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며 ‘생겨먹은 대로’의 꼴로 행진한다. 나는 나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아 생겨먹은 대로 괜찮다고 온몸으로 외쳐대는 경험은 소수자 당사자와 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두에게 아주 큰 울림을 남긴다. 지워지지 않는, 지워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말하고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혐오를 있는 그대로 폭로한다. 증명과 대답을 요구하는 어느 치들에게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와 같은 인간으로 우리는 여기 있다고.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혐오와 두려움을 이용한 공포 정치는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 다층적인 정체성에 대해 알아차리고 교차하는 지점마다 나누며 모두가 함께하는 삶을, 우리는 상상할 것이다. 서로를 위해 모여 든든해지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 무너지고 흩어질지라도 다시 ‘모다들’ 것이다. 나아가 축제의 장 바깥으로 확장할 것이다. 

하루의 움직임, 그 몇 시간에 담긴 목소리와 울림이 단지 24시간의 시침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우리는 그걸 알아서, 올해도 차별철폐를 말하는 대행진을 꾀하고 힘을 내어 다시 힘을 보태고자 거리에 나왔다.

말하건대 6월, 자긍심의 달이다. 차별 없는 하루가 고대하는 미래가 아닌 지금의 일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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