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간첩조작사건] 7일 피해자 故김두홍 씨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이승에 묻어둔 한스러운 세월, 국가유공자가 간첩이 된 억울한 사연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의 아내 고정일 어르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7일 어르신을 상대로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의 아내 고정일 어르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7일 어르신을 상대로 국가보안법 위반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억울한 세월의 사연을 이승에 풀어놓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의 과거사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이하 진화위)는 7일 오전 10시 고인의 아내인 고정일(92) 어르신이 사는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자택에서 간첩조작사건[관련기사 = 일본 여행 중 친척 만났다고 ‘간첩?’…평생 억울함 풀지 못한 사연] 관련 조사에 나섰다.

고인의 큰아들인 김병현(64) 씨는 이승에 남겨진 아버지의 한(恨)을 풀어드리기 위해 지난해 12월 5일 진화위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했고 올해 6월 21일 제57차 위원회를 통해 조사개시 결정을 받았다.

친척의 초청으로 일본 관광을 다녀온 것임에도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려 처벌을 받았고, 제주경찰서에서 수사 당시 불법 연행과 고문,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이다.

고인의 이승에서 삶은 지옥과 같았다. 누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며 보릿대에 숨어들고 조상님이 무슨 소용이냐며 제사상을 뒤집어엎었다. 또 술을 마시고 집 마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간첩이 된 공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수류탄 파편이 정수리 부근에 박힐 정도로 목숨을 다 바쳐 조국을 지켜낸 ‘국가유공자’였지만, 아이러니하게 ‘간첩’이 됐다. 친척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왔다는 공안당국이 좋아하는 먹잇감에 포착된 것이 이유다. 

고인은 나라를 지켜낸 영웅임과 동시에 나라를 위협하는 간첩이 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군사독재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냈다. 그렇게 고인은 한 차례 희생에 이어 또 하나의 제물이 됐다.

고인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지만, 국가는 이로도 모자라 다시 권력 유지를 위한 제물로 이용한 것이다. 말 그대로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한 결과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는 한국전쟁에 뛰어들어 조국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이런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뒤 간첩을 만들었다. ⓒ제주의소리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는 한국전쟁에 뛰어들어 조국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이런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뒤 간첩을 만들었다. ⓒ제주의소리

전날인 6일 진화위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진 김양진 어르신 조사와 마찬가지로 이날 조사 역시 김종민 제주4.3사건중앙위원회 위원이 함께했다. 

김 위원은 故 김두홍 씨를 포함한 수많은 피해자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왔다. 연구책임을 맡았던 ‘2022년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작성 당시 김 위원은 조사 방침을 바꾸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심이 가장 중요한데, 재심 근거가 되는 진화위 ‘진실규명’ 통지를 받기 위한 신청 기간이 얼마 남지 않자 조사와 동시에 신청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이 보고서는 강남규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 이사장, 황석규 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원장, 한상희 서귀포여자중학교 교감이 공동연구자로, 고승남 제주환경운동연합 감사가 연구 보조로 참여해 제작됐다.

연구원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피해자들보다 아직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판결문을 입수하고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덕분에 2명의 피해자가 진화위 조사개시 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진화위는 “수사기록에서 고인이 경찰에 검거된 1982년 7월 27일부터 9일 이상 사전 구속영장 없이 위법하게 구금된 것으로 보이고 공판조서를 통해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조사개시를 결정했다. 

이날 조사는 고인의 아내인 고정일 어르신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진화위 관계자는 큰아들 김씨, 김 위원이 함께한 자리에서 판결문 등 예전 기록을 토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판결문 속 증인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씨는 생존 증인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은 뒤 관련 내용을 참고인 진술 성격의 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다. 

아버지의 억울함과 지금까지 겪어온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던 큰아들 김병현 씨는 대화 도중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아버지의 억울함과 지금까지 겪어온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던 큰아들 김병현 씨는 대화 도중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고인은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모두 대신한 고마움으로 초청받은 일본에 관광차 다녀온 이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친척을 만났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간첩이 됐다. 

일본 오사카에 초청받아 여행을 다녀온 고인은 이를 시샘한 사촌 형제의 아내가 경찰인 친오빠에게 허위 밀고하면서 붙잡혀갔다. 이후 자식 이름을 잊어버릴 정도의 모진 고문을 받고 허위자백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큰아들 김씨는 “시샘도 했겠지만, 당시 공안사건을 물어오면 특진할 수 있었기에 소식을 들은 경찰이 사실 여부를 가리지 않고 간첩을 만든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에 총신병으로 참전해 훈장도 받으셨다. 또 그때 수류탄 파편이 머리에 박힌 채로 평생을 살다 가셨다”며 “머리가 눌릴 때면 늘 아프다고 하셨고 제거하려 했지만, 머리 부분이라 돌아가실 수 있다는 우려에 수술도 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아버지가 끌려갈 당시 김씨는 20대 초반의 나이로 당시 상황을 꽤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는 돌아온 뒤부터 술을 많이 드셨다. 혼잣말도 가끔 하시고 보릿대 뒤에 숨어들거나 마루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것 아니었겠나”라고 하소연했다. 

또 “돌아오셔서도 별 이야기를 안 하셨다. (고문받을 때) 자식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정도만 말씀하셨고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는 말하지 않으셨다”며 “누가 말하지 말라고 협박한 건 아닌지 몰라도 술만 계속 드시고 말씀은 없으셨다”고 했다.

김씨는 또 간첩조작사건 이후 공기업에 취직하려 해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꾸 낙방하는 등 연좌제 피해까지 겪었다고 했다. 누가 손가락질할까 이야기도 제대로 못 했었다는 김씨는 속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7남매를 어떻게든 먹여 살아야 했던 힘든 시절, 간첩이라는 누명을 써 평생 고통을 받으며 산 고인과 마찬가지로 가족들 역시 간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아버지는 작물 종자들을 일본에서 받아와 곽지리에 전파하는 등 마을을 위한 일도 하셨다. 덕망 높은 마을 어른으로 곽지리를 빛낸 인물이 될 정도로 존경받아온 분”이라며 “그나마 이렇게 인정받으셨기에 마을 사람들이 멀리하거나 손가락질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고정일 어르신의 조사를 도운 김종민 제주4.3사건중앙위원회 위원. ⓒ제주의소리
이날 고정일 어르신의 조사를 도운 김종민 제주4.3사건중앙위원회 위원. ⓒ제주의소리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두홍 씨의 ‘진실규명신청서 접수증명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의 ‘진실규명신청서 접수증명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