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행안위 4.3특별법 검토보고서, 명확성 원칙 등 고려 필요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제주시내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제주의소리​<br>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제주시내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제주의소리​

일부 극우단체의 언동으로 공분을 샀던 '4.3폄훼·왜곡 현수막'에 대한 처벌 근거를 담은 법 개정 작업이 이뤄지는 가운데, 명확성의 원칙과 4.3단체의 주체 등에 대한 설득논리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제주시 갑)이 발의한 이 법안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현행 4.3특별법에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벌칙조항과 연계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실효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현행법에서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보상금을 수령하거나 영리를 목적으로 한 단체구성, 직무집행 방해, 비밀누설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던 탓이다.

실제 올해 제75주년 4.3희생자추념식을 앞두고 4.3왜곡·폄훼한 현수막이 도내 곳곳에 내걸리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극우세력이 일방적으로 4.3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던 선례가 남아있다.

개정되는 4.3특별법에는 벌칙 조항에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 또는 왜곡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에 대한 벌칙이 가능토록 명시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제주4.3사건의 본질을 왜곡해 희생자·유족 등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법취지가 타당하다는 판단이 뒤따랐다.

다만, 아직 넘어야 할 과제들은 남아있다.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은 먼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사실의 왜곡 또는 부인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한 입법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인 또는 왜곡 행위에 대한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수범자의 어떠한 행위가 처벌대상이 되는 부인·왜곡행위인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개정안은 형벌 도입을 통한 명예의 보호 대상으로 '희생자, 유족 및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 명시하고 있지만, 법인격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단체에 대해서는 '법에 의해 인정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통일된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단체'의 경우에 한해 명예의 주체가 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관련법이 개정되더라도 실제 법 적용에 있어 법원이 유족회 등 단체의 명예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이 경우에는 희생자 및 유족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귀결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왜곡 등에 대한 입법적 조치는 앞서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률은 '기존의 명예훼손 법리에 따라서는 희생자들의 명예를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인식 하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를 불문하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조각 사유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허위사실 유포 행위가 예술·학술, 연구·학설 등을 위한 것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앞서 제주4.3유족회 등은 "현재의 4.3특별법에서는 4.3을 왜곡하거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다"며 "지금의 보수정당과 단체에서 하고 있는 이런 행위 때문에라도 속히 처벌 조항이 들어간 제주4.3특별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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