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4.3 공산폭동' 현수막 선관위 '통상적 정당활동' 판단...허술한 법 개정 시급

​제주시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제주의소리​<br>
​제주시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제주의소리​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을 앞두고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일부 극우단체의 주장이 도민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허술한 법 체계 상 별다른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어 법 개정의 시급성이 대두된다.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자유논객연합 등 극우 성향의 정당·단체는 지난 21일부터 제주도내 곳곳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도내 주요 교차로와 차량 통행이 많은 번화가, 심지어 제주4.3평화공원 진입로 등 80곳에 내걸린 이 현수막은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봉행되는 다음날인 4월 4일까지 게시된다.

문제는 해당 내용이 4.3의 역사적 진실을 왜곡한 법 위반 소지가 있음에도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에는 희생자 및 유족의 권익 보호를 위해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4.3에 대해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라 정의하고 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개입이 있었을 뿐, 극우단체가 주장하는 '북한의 지령설' 내지 '공산폭동'이라는 표현은 보고서에서 일체 찾아볼 수 없다. 즉, 4.3특별법이 명시한 '진상조사 결과에 관한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되는 명백한 법 위반 사항인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해당 광고물은 정당법 제37조에 적용을 받고 있어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구조다.

이 조항은 '자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인쇄물·시설물·광고 등을 이용하여 홍보하는 행위는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당이 게시하는 현수막은 형태나 갯수의 제한도 받지 않고, 철거 역시 해당 정당의 권한으로 보장된다.

제주도는 "선관위 질의 결과,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는 해석을 받았다"고 공을 넘겼다. 선관위 관계자는 "4.3특별법과 별개로 정당의 현수막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만 판단을 하고 있다"며 "이에 저촉되지 않으면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수막의 내용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당 정당의 평가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현수막의 내용이 선거법이나 정당법에 위배되는, 예를 들어 허위사실 공표 등에 해당됐다면 위원회에서 조사나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이었겠지만, 다른 법률 위반 가능성에 대해서는 직접 판단할 부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다 극단적인 예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도는 정치 희화화 이미지를 게시해도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선거에 있어 후보자 비방 등과 연결돼 있지 않은 이상에는 조치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명예훼손 소지가 있을 수 있어도, 이에 대한 판단은 선관위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선관위의 판단이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 자리에서 "정당 정책을 선전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정당이 할 수 있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법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당활동도 아니고 통상적인 활동도 아닌, 거짓 선전이고 도민·국민 분열을 위한 목적에 불과하다"며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볼 수 없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선관위의 해석을 떠나,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저촉되는지 판단 여부도 불확실하다. 옥외광고물관리법 상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잔인하게 표현하는 것 △음란하거나 퇴폐적인 내용 등으로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것 △인종차별적 또는 성차별적 내용으로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는 것 △그 밖에 다른 법령에서 광고를 금지한 것 등의 게시를 제한하고 있다. 논란의 현수막의 금지조항에 해당되는지 여부도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법 개정 작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뒤따른다.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의한 정당 현수막은 제주만이 아닌 전국적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들의 민원이 제기됐고, 행정안전부도 시도간담회 등을 통해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올 하반기 중 법률 및 시행령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4.3특별법에 처벌 조항을 명시하는 작업도 주요 과제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 갑)은 지난 9일 4.3진상조사 결과와 희생자, 유족, 관련 단체를 모욕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 또는 왜곡하거나'라는 내용과 함께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 조항이 명시됐다.

제주4.3유족회 등은 "현재의 4.3특별법에서는 4.3을 왜곡하거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마땅한 처벌 조항이 없다"며 "지금의 보수정당과 단체에서 하고 있는 이런 행위 때문에라도 속히 처벌 조항이 들어간 제주4.3특별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4.3유족회와 관련 기관·단체는 향후 제주4.3특별법 개정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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