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변용과 철학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타고,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튜브에는 소위 ‘국뽕’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런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으며,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를 선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우쭐해진다. 코로나 블루로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국뽕’에 취해 유튜브의 AI 알고리듬이 권하는 동영상을 계속해서 보다보면 어느새 한국에서 외국으로 건너간 가물치가 그 나라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까지 국가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 이상향이 아닌 구체적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민중문화운동이 순수한 문화적 유희 속에 빠져들 수만은 없었다. 이데올로기적 권력투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중미술도 군사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군사정권의 전복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민중미술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대규모 집단 문화정치이자 미술 하나만으로 시대현실을 변혁하고자 한 이례적인 미술운동이었다.“저자 김현화는 이렇듯 민중미술을 집단의 문화정치이자 현실변혁의 미술운동으로 규정한다. 민중미술은 1980년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는 학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인공지능이 사람들이 하던 일을 대체한다는 미래의 세상에서는 어떤 공부와 배움이 필요할까? 현기증 나는 변화의 속도 속에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시대,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은 EBS 제작진들이 한국, 싱가폴, 인도, 노르웨이 네 나라의 학생들을 모아 ‘미래학교’를 운영한 결과를 펴낸 것이다. 의 영상 제작을 위한 기획에서 나온 부산물이기 때문에, 물론 다큐멘터리 영상에 기초하고 있는 책이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이는 쑨원孫文이 즐겨 써서 유명해졌는데, 원래는 '예기·예운禮運'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공공公共의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유물이라는 뜻이다. 늦어도 서한西漢 시대에 나왔으니 기원전에 한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이전에 “하늘 아래 온 세상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강과 바다에 접한 모든 세상에 왕의 신하가 아닌 이가 없다(普(溥)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시경·소아·북산北山)고 하지 않았던가? 대대로 한 집안사람이 왕 노릇을 하였으니 천하는 개인
1.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테타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외신은 미얀마의 적나라한 실상을 날마다 타전한다. 쿠데타군은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무차별적 강제 연행과 체포 및 고문을 가하는가 하면, 심지어 이를 취재하는 내외 언론도 탄압하고 있다. 우리는 미얀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과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참담히 겪은 국가폭력이 상기된다. 그래서 작금 미얀마의 소식을 우리와 동떨어진 다른 나라의 내정에
1. ‘능력’이라는 단어의 폭력성LH 직원의 땅 투기가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한 인터넷 게시판에 LH 직원을 자처한 사람이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처럼 LH 직원이 되라고 비꼬았다고 한다. LH 직원이 되지 못한 소위 ‘무능력자’들을 조롱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당당하게 시험을 거쳐 LH 직원이 된 만큼 그 직위를 이용해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랫
4월이 온다. 제주의 봄은 오는가를 묻는 4월이 오고 있다. 이제는 봄이 왔다고 대답하는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그러나 저항의 봄과 학살의 겨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봄을 묻는 질문은 아프다. 4.3을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는 논쟁적이다. 현재의 제노사이드 이론으로는 규정할 수 없다는 대답이 더 많다. 그렇지만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 결론에서도 제노사이드 협약을 지적했을 정도로 4.3을 이야기할 때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는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저자는 제노사이드에 관한 한 우리는 전혀 편하게 말할 입장에 있
“내가 유행가를 듣는 시간은 고향을 사랑하는 시간이고, 내가 거쳐온 풍속사의 향기를 다시 맡는 시간이며, 세상살이에 지친 영혼을 달래고 위무하는 시간이다.”- '유행가들' 가운데‘유행가들’의 저자 김형수가 말하는 유행가의 의미 속에는 향수와 통속성, 위안 등 삶의 서사가 들어있다. 대중문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유행가의 흐름을 타고 삶의 서사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노래의 문학성 덕분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노래를 음악과 동일시한다. 노래 속에는 음악의 핵심 요소인 멜로디와 리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1. 제주어에 관한 마음과 이야기생각해볼 문제는 세 가지이다. 서사구조를 지닌 소설이나 산문이 사전 형식을 띨 수 있는가? 이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두 번째는 이른바 ‘사전 소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표준어와 사투리, 제주적인 것의 문제이다. 필자의 손에 들어오는 거의 모든 책들이 그러하듯이 오늘 소개하려는 ‘제주어 마음사전’도 우연히 얻어 읽고 필연인 줄 알았다.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제주에도 작은 책방들이 무수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제법 큰 책방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는데 오히려 작은 책방들은 비온 뒤 고사
풍경 하나.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FFF) 운동으로 유명하다. 고등학생이었던 툰베리는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란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 운동이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지금은 전세계로 번졌다. FFF에서 최근 흥미로운 영상을 하나 업로드했다.이 영상은 화성 이주에 관한 것이다. 화성에는 전쟁도 없고, 오염도 없고, 심지어 지긋지긋한 팬데믹도 없다. 하지만 화성에는 단 1%만이 이주할 수 있다. 99%의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에 남아 있어야 한
1.어떤 건축물은 그 특유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언제, 어떻게 지었는지, 그리고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으며, 어떤 일들이 생겨났는지……. 흔히 이러한 것들을 심드렁히 지나쳐버리면 일개 건축 구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동안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그 건축물과 함께 한 삶의 내력을 만날 수 있다. 심윤경의 장편 '영원한 유산'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여기에 부합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할머니와 어린 시절 함께 찍은 한 컷의 사진 귀퉁이에 있는 작은 건물 하나를 발견하였
1. 한국인은 중국을 너무 모른다.소설가 조정래는 2013년 ‘정글만리’라는 3권짜리 중국 비즈니스 관련 소설을 출간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한국인은 중국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으며, 수차례 현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축적했다는 말을 듣고 움칫했다. 소설은 채 5개월이 되기도 전에 누적판매 백만 부를 넘어섰다. 그리고 근 10년이 흘렀다. 그간 사드로 인해 된통 당하고 그 여파에서 아직 벗어난 것 같지 않은데, 과연 우리는 중국을 좀 더 알게 되었나?'1997
1. 공부의 쓸모이제 머지않아 대학입시 절차가 모두 끝날 것이고,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은 다시 학습기계의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며, 입시에 성공한 많은 학생들은 학습기계의 삶을 살아온 시간에 대해 억울해 하며 공부와 담을 쌓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 진짜 공부를 하겠노라고 다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짜 공부가 이루어지려면 자신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의 공부가 가짜였다고 느끼는 이유는 공부의 목적이 그저 ‘합격’이라는 알맹이 없는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합격에 성공한 학생들이 우울증에 빠져 자신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이 질문에 대해 역사 속의 수많은 저서들이 답을 해왔고, 동시대 또한 그 일을 지속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크게 3가지 양상을 띄고 있다. 첫째는 역사적 관점에서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것을 통하여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예술사의 관점이다. 특정 예술 영역의 연대기나 양식의 변화를 토대로 하는 예술사는 따라서 맥락 속에서 예술을 파악하는 데 유리한 관점이다. 둘째는 미학적 관점이다. 서구에서 들어온 미학(美學)의 원어 ‘에스테티카(Aesthetica)’는 미학 보다는 감성학으로 번역되는 것이
나는 전자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해 한 권의 전자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경험이 없다. 이렇게 쓰고 보니, 디지털 시대에 뒤처진 한 사람의 독자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이라는 형식을 잘 활용하지 않을 뿐이지, 이미 나는 디지털 텍스트를 과도하게 읽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메시지 프로그램을 확인하거나 화장실에서는 정해진 일상 의례처럼 뉴스를 읽는다. 이처럼 종이책보다는 이미 웹 텍스트를 수십 배, 수백 배 읽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차이는 아마 평범한 독자
1.한국현대문학사, 아니 한국현대사의 증언자 한 분이 지난 주 세상을 떠났다. ‘분지(糞地) 필화사건’(1965)의 당사자인 작가 남정현(1933~2020)이 눈을 감았다. 아마도 21세기의 대중에게 남정현과 그의 문제작 단편 ‘분지(糞地)’(1965)는 낯설지 모른다. 이 필화사건 때문인지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품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화사건 자체가 말해주듯 남정현의 문제의식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동시대의 소설이 담당해야 할 문학적 실천과 그 소명을 상기시키고
1.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청년들에게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모든 대학의 입학 사정이 끝날 때까지 많은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유보한 채 오로지 정답을 맞히기 위해 암기에 매달렸던 학생들은 자기소개서에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게 자신의 모습을 가공해서 서술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답이 아니면 오답이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정답의 프레임에 우겨 넣으면서 성장한 학생들은 모든 것을 유보한 채 달려온 경쟁의 끝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학 진학에 성공한 학생
대중의 관점에서 보면, 미술관은 곧 전시장이다. 대다수 대중은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본다. 요즘은 미술관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높아져서, 전시 이외에도 교육 프로그램이나 도서관, 기록관, 휴게 공간 등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만나기도 하지만, 노출 빈도로 볼 때 역시나 핵심은 전시장이다.하지만 이는 미술관에 대한 표피적인 이해에 그친다. 미술관에는 전시나 교육 이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숨겨져 있다. 한국처럼 근대의 경험이 100년 남짓한 신생국가로서는 넘사벽 같은 일이지만,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어마어머한 노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연쇄 살인사건이. 곧이어 살인자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다음 뉴스에서 그는 이내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판명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하다. 언젠가부터 언론 보도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와 TV 드라마, 소설에서까지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 인물에 열광하기까지 한다.사이코패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에게 불리는 공통된 이름이다. 각종 매체에서 그려진 것처럼 우리는 사
1.세상은 숱한 말들로 채워져 있다. 타인에게 건네는 말과 혼자 내뱉는 말이 제 각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세상을 맴돈다. 각종 미디어가 발달해서인지, 말들은 잠시라도 쉴 틈이 없다. 자신의 말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온갖 시청각적 분식(扮飾)이 우리의 감각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말의 알맹이는 온데간데 없고 그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미사여구와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되, ‘좋은 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이 자리는 이에 대해 갑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