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재판부 "소규모 환경평가 절차 누락...하자 중대·명백" 판시

월정리 해녀회(명예회장 김영숙, 회장 김경자)와 월정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대표 황정현)은 1일 오전 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해녀들이 소송 승소에 기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br>
월정리 해녀회(명예회장 김영숙, 회장 김경자)와 월정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대표 황정현)은 1일 오전 도의회 도민의방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해녀들이 소송 승소에 기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숱한 주민갈등을 겪고 6년만에 정상화되는가 싶었던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이 제주도의 안일한 행정절차로 인해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무려 27년 전 이행했던 절차로 환경적인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제주도정의 논리가 무너진 결과다.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지난달 31일 동부하수처리장 소재지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주민들이 제기한 '공공하수도설치(변경)고시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문에는 "시설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누락한 하자가 존재하고, 이러한 하자는 중대·명백하므로, 이 사건 고시는 무효"라고 명시됐다.

이는 구좌읍 월정리 지역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에 포함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기에, 이를 누락함으로써 주민들에 대해 환경상의 이익 침해가 우려된다는 점이 인정된 결과다.

그간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소규모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았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이미 1997년 북제주군 시절에 관련 절차를 이행했다는 주장을 펴 왔다. 

국무총리 훈령인 '행정계획 및 사업의 환경성 검토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와 사실상 같은 역할을 했던 '사전환경성 검토 협의'를 이행했다는 주장이었다. 사전환경성검토는 2012년 환경영향평가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제도로 변화했다.

실제 1997년 당시 북제주군 지역 광역하수종말 처리시설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에 따라 최초 하루 8000㎥였던 처리용량을 1단계 하루 1만2000㎥, 2단계 하루 2만4000㎥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을 넣고, 전체 부지 면적에 대한 계획 협의를 완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의 행정절차는 최초 하수처리시설 건설 공사에 관한 내용으로 보일 뿐, 향후 처리용량 증설 시 수행될 공사에 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당시 설치인가 고시는 처리용량을 하루 1만2000㎥으로 명시했을 뿐 2만4000㎥ 증설하는 부분까지 인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작성된 환경성 검토서에서 하수처리시설의 처리용량을 2만4000㎥으로 증설하는 2단계 계획이 기재돼 있기는 하지만, 이는 '사업의 개요'를 기술하는 부분에 장래 계획으로 기재돼 있는 것에 불과할 뿐, 2단계 계획에 대해서는 환경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하수처리시설 부지 전체 면적은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지 내에 유휴지에 반응조·유량조정조 등을 설치해 전체 시설 규모를 2배 가량 증가시키는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단순히 경미한 증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결과를 뒷받침했다.

또 다른 쟁점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현행법에 따른 문화재청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는 다뤄지지조차 못했다. 재판부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절차 누락만으로도 고시의 위법함을 인정하는 이상, 나머지 주장에 대해서는 더 나아가 살피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사업은 2017년 건설사를 지정해 첫 삽을 떴지만, 해녀를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6년 가까이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입구를 막아서는 밤샘농성을 불사했고, 시공사와 주민 간 소송전으로 번졌다.

제주도는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자 주민들의 반발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 판결로 드러난 문제 역시 제주도가 강경 대응해 온 주장의 일부였다.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주도의 정무적인 개입도 무색해졌다. 갈등이 평행선을 긋던 제주도는 월정리마을회와의 협의를 통해 △방류수 24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수질관리 △해양 방류관 연장 △월정리 연안 생태계 조사 △삼양 및 화북지역 하수 이송 금지 등의 조건을 내걸고서야 지난해 6월 공사를 재개한 바 있다.

제주도는 재판결과와 별개로 늦어진 공사는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오영훈 지사는 1일 도청 출입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1심 패소한 사안에 대해 항소를 거칠 것이고, 패소 원인과 상황에 대한 분석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해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상황을 철저히 점검해 면밀히 재판부에 소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이냐는 질문에는 "절차가 누락됐다는 판결인데, 그것이 원인 무효로까지 가야하는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뒤따라야 한다"며 "1심 패소 판결로 공사 중단을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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