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제주도, '영리병원 취소' 최종 패소...뒤집힌 항소심에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도 불투명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국제병원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녹지국제병원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가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이 위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적어도 제주에서는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졌던 '의료민영화' 논란도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대법원 특별1부는 지난 13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과 관련해 제주도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것을 뜻한다. 제주도의 패소 판결이 확정되면서 영리병원을 둘러싼 불씨도 되살아나게 됐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2019년 4월 17일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녹지국제병원에 내린 '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이 합당한지였다.

제주도는 의료법 제64조(개설허가 취소 등)에 명시된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아니한 때' 개설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적용, 녹지국제병원의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국제병원이 2018년 12월 개설 허가를 받고도 만료 기간이 도래한 2019년 3월4일까지 개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제주도는 청문 절차를 거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음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녹지국제병원 측은 제주도가 개설허가 과정에서 위법한 내국인 진료제한 조건을 내걸었고, 그 여파로 개설허가가 늦어지면서 인력까지 이탈했다며 2019년 5월 제주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즉, 개설허가가 늦춰진 데 대한 귀책사유를 제주도로 돌린 것이다.

제주도 역시 녹지국제병원 측이 진료 개시 확인을 위한 공무원의 업무를 오히려 방해하고, 실제 진료를 위한 움직임도 없었던 점을 내세우며 맞섰다.

실제 2020년 10월 열린 1심 재판부는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개설허가의 위법 여부와 관계 없이 우선 관련법에 따라 3개월 이내 업무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인력 이탈 등의 사정이 있더라도 조건부 개설허가 후 개원 준비를 위한 조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열린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허가 절차가 15개월이나 지연된 귀책사유가 제주도에 있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원희룡 전 지사가 스스로 '신의 한수'라고 평가했던 '조건부 허가' 방어 논리도 무너졌다.

2015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녹지국제병원은 도민사회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2018년 숙의형 민주주의 공론화조사를 거쳤다. 공론화조사위가 '개설 불허' 결정을 내렸지만, 원 전 지사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녹지국제병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그 사이 개원 허가 유효기간이 지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영리병원이 애초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없이 설립이 추진됐다며 병원 개원 지연의 책임을 제주도에 돌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녹지국제병원이 진료대상자를 제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그 설립이 추진됐던 것으로 보임에도, 제주도는 병원 측이 의료기관 개설을 위한 물적, 인적 준비를 마치고 한 신청에 대해 15개월이 지나서야 진료대상자를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한정했다"며 "이에 따른 사업계획이나 개원을 위한 준비계획의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재판부가 녹지국제병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주도는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하고, 개설 지연에 따른 배상도 책임져야 한다.

이와 별개로 소송이 진행중인 '내국인 진료 제한'에 대한 법적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녹지국제병원 측이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의료기관 개설허가조건 취소 소송'은 1심에서 계류중이다. 이 소송까지 녹지 측이 승소하면 제주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진료가 동시 가능한 영리병원 개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당장 영리병원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현재 녹지국제병원의 지분을 사들인 서울 소재 업체는 의료법인 '우리들녹지국제병원'을 설립 후 비영리병원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해당 업체는 녹지측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사실상 병원 운영권을 넘겨받기로 했다.

이 경우 녹지국제병원의 지분 관계가 달라져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서는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지분 매수자가 영리병원 운영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다시 제출해 승인절차를 처음부터 진행해야 하고, 이후 병원 개설허가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제주특별법에 명시된 '의료기관 개설 등에 관한 특례'를 적용해도 이미 지분의 75%를 국내법인에 넘긴 녹지국제병원은 외국의료기관으로서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리병원 개설에 따른 판단이 원점으로 돌아감에 따라 '의료민영화'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16일 관련 성명을 내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코로나19 펜데믹과 이어질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의 확충이 필수불가결하지만, 영리병원은 또 다른 영리병원을 낳으며 공공의료를 약화시킬게 뻔하다"며 "제주 녹지국제병원허가 취소 상고를 기각한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대법원의 판단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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