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시작부터 고성 오가더니 플로어 토론에서 끝내 ‘언어 충돌’
주최 측 의견 수렴보다 싸움 말리기 바빠, 의미 퇴색된 ‘경청’회 

6일 오후 6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도민경청회가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찬반 의견 표명이 시작되자 고성이 오가더니 플로어 의견 수렴 과정에서 격화, 끝내 중단됐다. ⓒ제주의소리
6일 오후 6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도민경청회가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찬반 의견 표명이 시작되자 고성이 오가더니 플로어 의견 수렴 과정에서 격화, 끝내 중단됐다. ⓒ제주의소리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관련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경청회’가 끝내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물리적 충돌까지 번지지 않았지만, 그에 상응할 만큼의 욕설과 인신공격, 고성이 난무하면서 경청회를 주최한 제주특별자치도 관계자들 역시 싸움을 중재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제주도는 6일 오후 6시부터 서귀포시 강정동 청소년수련관에서 제2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안) 도민경청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29일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에서 열린 경청회 이후 두 번째로 맞은 의견 수렴의 장이었다.

경청회는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설명에 이어 사전 협의대로 각각 20분씩 찬반 측 대표의 의견 표명과 플로어 의견 수렴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경청회는 제2공항 사업 기본계획 용역진의 설명까지는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찬반 대표들의 의견 표명이 시작된 이후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더니 끝내 고성이 오갔다. 

찬성 측 의견 표명이 시작된 이후 발표자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위성곤 의원이 제2공항을 반대한다”며 비판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좌석에서는 “의원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찬성 의견을 말하는 자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자 일부 참석자들은 “가만히 있어라”, “시끄럽다”, “맞는 말 아니냐”라면서 반박했고, 말싸움이 번지면서 끝내 경청회는 중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대 측 의견 표명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진행자의 중재로 고조된 분위기가 사그라지는 듯 싶더니 참석자 일부가 반대 측 의견에 딴지를 걸자 서로를 향한 비난이 시작됐고, 경청회는 또다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게 됐다. 

찬반 대표 의견 표명이 끝난 이후로도 분위기는 진정되지 않았고, 끝내 플로어 의견 수렴 과정에서 폭발했다. 한 고등학생의 발표 이후 시작된 인신공격이 발단이었다.

발언에 나선 고등학생 정근효 군은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토론회를 비판, 제2공항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제주의소리
발언에 나선 고등학생 정근효 군은 욕설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토론회를 비판, 제2공항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제주의소리
제2공항 건설 찬성 입장을 밝힌 한 참가자. ⓒ제주의소리
제2공항 건설 찬성 입장을 밝힌 한 참가자. ⓒ제주의소리

이날 발언에 나선 정근효 군(서귀포고)은 “학교에서 배웠던 토론과 의견을 듣는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며 “여러분 뭐하시는 거냐,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데 이게 의견이냐”라며 감정이 북받친 듯 흐느껴 울었다. 

이어 “학생들이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하는데 어른들이 욕설하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 여긴 청소년 공간이다”라고 정곡을 찔렀다. 

제2공항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정 군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미래라면서, 공부해서 세상을 바꾸라고 하지만 어른들이 미래를 망치고 있기 때문에 공부 안하고 여기 온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일부 참가자들이 “학생 맞냐”, “몇 살이냐”, “애가 왜 여기에 왔느냐”는 등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정 군을 쏘아붙였다. 찬성과 반대 측 의견을 가진 플로어가 서로 발언한 뒤 네 번째 발언에 나선 한 참가자는 격앙된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한 참가자가 반대 측을 향해 “어린 학생들을 (반대 단체가)동원하고 있다”, “이 자리에 과연 청소년들이 있는 게 맞냐”고 말하자 반대 측은 “청소년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맞서면서 격해졌고, 끝내 주최 측은 경청회를 중단했다.

이날 경청회는 서정관 국토교통부 공항건설팀장과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용역진인 정기면 포스코이앤에스 이사를 비롯해 제주도 관계자가 참석했다.

제2공항 찬성 측 대표자로는 강정민 제2공항성산읍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서귀포 주민 양영일 씨, 반대 측 대표자로는 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서귀포시 주민 고명희 씨가 나섰다.

# 찬성 측 “쾌적한 운항환경, 산남-산북 균형발전 기회”

강정민 부위원장은 “제2공항이 안전하고 쾌적한 비행기 운항환경을 조성하고, 제주시와 서귀포시, 산남 산북 균형발전에 최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동서활주로인 제주공항은 겨울철 북풍이 강해지면 이착륙이 위험해 조종사들이 가장 꺼리는 공항으로 불린다”며 “제2공항이 건설되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비행기의 연발·착 문제와 결항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제주도의 모든 시설이 제주시에 집중돼 있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라면서 “제2공항은 서귀포시의 백년대계 균형발전과 산남 산북의 격차를 줄이고, 8년 갈등을 끝내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서귀포시 주민 양영일 씨는 “제2공항이 건설되면 인구가 가장 많은 연동과 노형주민들이 경제적인 피해를 입게 돼 전체적인 여론조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전체 도민 의견도 중요하지만, 직접 이해관계자인 지역 의견을 우선 반영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찬성 측 의견을 대표로 밝힌 강정민 제2공항성산읍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제주도.
찬성 측 의견을 대표로 밝힌 강정민 제2공항성산읍추진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제주도.
반대 측 의견을 대표로 밝힌 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사진=제주도.
반대 측 의견을 대표로 밝힌 박찬식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사진=제주도.

# 반대 측 “엉터리 부실 전략환경평가, 언제 도민 동의-지지 얻었나”

박찬식 공동대표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내 조류충돌 관련 위험성 축소 발표, 인구 감소 및 노령화에 따른 항공수요 지속 감소, 제2공항 내 군사기지 건설 의혹 등을 주장했다.

박 공동대표는 “제2공항 일대가 철새도래지 벨트로 구성된 곳인데 국토부에서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 39개 종만 포함했다”며 “제2공항 조류충돌 가능성은 제주공항보다 몇십 배 높은데 국토부가 조류충돌에 대한 대책이 없으니 위험성이 적다고 거짓으로 부실평가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항공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제2공항이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한다”며 “더불어 동의 없이 강행하지 않겠다고 한 국토부가 언제 도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나. 제2공항은 절대로 못 들어온다”고 밝혔다.

서귀포시 주민 고명희 씨는 “2015년 제2공항 추진계획이 발표된 이후 8년 동안 도민 여론조사가 발표됐음에도 단 한 번도 결과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제2공항 건설은 주민투표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도민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파행이 빚어진 도민경청회는 제주도 공식 유튜브인 ‘빛나는 제주TV’로도 생중계됐다. 제주도는 성산읍, 서귀포시 경청회에 이어 서부, 제주시 등 두 차례의 경청회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경청회는 찬성과 반대 측의 충돌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일찍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이날 경청회는 찬성과 반대 측의 충돌이 진정되지 않으면서 일찍 마무리됐다. ⓒ제주의소리
찬성 측 발언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한 참가자. ⓒ제주의소리
찬성 측 발언자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한 참가자. ⓒ제주의소리
제주 제2공항 도민경청회 전경. 용역진 기본계획 설명이 이뤄질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차분했다. 사진=제주도.
제주 제2공항 도민경청회 전경. 용역진 기본계획 설명이 이뤄질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차분했다. 사진=제주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