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의 첫 반응은 “무섭다”였다. 개헌만 빼고 사실상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됐지만, 민주당으로선 ‘4년 후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유권자들이 부여한 ‘코로나19 극복과 경제회복’이라는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면 장차 호된 회초리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계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모처럼의 압승은 17대 총선 이후의 기억을 소환한다. 딱 16년 전이다. 2004년에도 선거는 4월15일 실시됐다. 그해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엄청난 역풍을 몰고왔다. 선거 결과 열린우리당
색의 부조화드디어 21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뜨거운 투표율에 대한 여야 간 해석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봉인된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자 이번에도 유니폼과 안색(顔色)의 역전극이 펼쳐졌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여당이 경합지역을 하나둘씩 승리지역으로 접수할 때마다 환해지는 여당 인사들의 핑크빛 홍안(紅顔)은 개표 상황실을 가득 메운 파란색 유니폼의 물결 속으로 더욱 세차게 번져나갔다. 반면에 국회에서 뛰쳐나와 광화문 거리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태극기부대와 동고동락하며 지난 4년을 주로 장외투쟁에 투자한
역대 선거 중 ‘깜깜이 선거’가 아닌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아마도 매번 정책과 공약, 자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꼬집은 말이리라.이런 점에서 보면 4·15총선은 어느 때보다 깜깜한 선거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사태가 총선 정국을 덮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누구를 탓할 계제는 아니다. 유권자 입장에서 후보 검증의 기회가 줄어든 게 아쉬울 따름이다.팬데믹은 선거 풍경도 바꿔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시되면서 후보들은 인파가 몰리는 대규모 유세를 자제했다. 주먹 인사가 악수를 대신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혼란과 공포를 겪고 있는 가운데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다가왔다.우리나라 국회는 국민이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로 뽑은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국회가 갖는 힘은 크다. 국회는 입법권을 가지며 정부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국정을 감시하고 조사하고 대통령을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에게는 국회 내 직무상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도 있다.정권을 쥐락펴락할 만큼 권한이 크기에 국회는 늘 정치투쟁이 벌어진다. 유권자들은 대의정치가 갖는 한계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의 호소는 절제됐지만 절절했다. 제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다. 호소는 정치권을 향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조속 처리 요청이었다. 4.3생존수형인과 4.3행불수형인에 대한 재심을 서둘러달라는 당부의 의미도 있었다. 고령의 당사자들에게는 촌급을 다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재임 중 두차례 추념식을 찾은 것에서도 절박함이 느껴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참석자가 크게 줄어 식장은 한산했지만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묵직했다. 문 대통령이 일일이 이름을 언급했듯이,
‘코로나19 청정 제주’가 ‘1일천하’로 끝난 이후 4명의 확진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해외 입국자들이 문제였다. 국경을 무색케하는 팬데믹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말그대로 세계적 대유행이다. 대한민국만 잘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유럽, 미국도 아직 초반전일지 모른다. 강물에 휩쓸리듯 뇌관은 6대륙으로 흩어졌다. 마찬가지다. 제주만 잘 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문을 완전히 걸어 잠글 수는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간 어떻게 지켜왔는데…. ‘강남 모녀’에 대한 도민의 분노는 수긍이 간다. 억대 손해배상 청구는 성난 민심
2017~18년 필자는 미국에 머문 적이 있다. 끝없이 뻗은 길을 달리며 미국 땅이 얼마나 크고 풍부한지 체험했다. 미국의 부유함이 느껴졌다. 몇몇 국립공원 탐방은 너무 좋았다. 자연의 웅장함과 장엄함에 감탄했다. 미국 국립공원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좋은 것만 있진 않다. 가끔씩 언론을 도배하는 총기 사고 소식에서 미국 사회의 이면을 알 수 있었다. 의료 시스템 문제도 그 중의 하나였다. 미국 샌디에고 대학 병원은 호텔처럼 깨끗하고 좋았다. 사람들은 잘 차려 입었고 병원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가까운 지인이 있
한국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세계의 찬사는 투명성에 기인한다. 방대한 진단검사 규모와 속도,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도 근본적으로는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됐기에 가능했다. 투명성은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원동력이었다. 당국은 대중에게 투명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했고, 대중은 그러한 당국에 신뢰를 보냈다. 만약 여기에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를 일이다. 이르긴 하나, 한국이 빚은 ‘전염병 통제의 세계적인 모델’은 결국 민·관의 합작품이다. 반대로 불투명은 갖가지 오해와 억측을 낳는다. 신뢰가 싹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인 코로나19가 예전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그동안 걷잡을 수 없듯이 늘어나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어 지금은 일일 확진자 수가 완치자 수를 밑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콜센터, 병원, 요양시설, 종교시설 등에서 집단 감염이 지속되고 있고, 유럽과 중동이 새로운 진원지가 되면서 역유입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아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정부는 대구와 경북 일부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
꽃의 생김새가 나비와 닮다는 호접란(胡蝶蘭)은, 일부 제주도민에겐 화사함 보다는 참담함을 안겨준 존재로 기억된다. 처참한 성적표를 내고 접은 호접란 수출 사업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림잡아 160억원이 넘는 혈세가 증발했다. 우근민 도정 때였다. 시작은 담대했다. 도내 화훼농가들의 소득을 높여주겠다는 명분은 당시만 해도 그럴 듯 했다. 뾰족한 활로가 없던 상황이었다. 2000년, 16개 농가가 참여하는 수출단지가 제주에 조성됐다. 이어 2003년까지 주요 수출처인 미국의 LA 외곽에 4만2776㎡의 농장을 사들였다. 제주 모종
그림의 떡‘찻잔 안의 태풍’으로 그칠 것으로 기대했던 신종 코로나 19가 이제 전 세계로 일파만파 확산일로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서구를 비롯한 세계 전체는 강력한 태풍 앞에 운명을 맡긴 채 가련하게 떨고 있는 촛불의 처지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태 초기 정부의 발 빠른 사전대책으로 며칠 동안 불과 30명 이내로 묶었음에도 감염자가 7000명을 훌쩍 넘는데다 사망자가 50명을 상회한다.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뚜렷한 원인도 없이 일상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이른바 ‘지역사회 감염’이 대
제 몸을 해부용으로 내놓은 ‘드라마 속 유의태’-현실에서는 유의태와 허준이 동시대 인물이 아니라는 둥 논란이 분분하다-는 당대(?) 영웅임이 틀림없다. 백성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다가 본인도 감염돼 숨진 중국의사 리원양도 영웅으로 불릴만 하다. 리원양은 신종 코로나의 존재를 외부에 처음 알린 인물이다. 이 일로 당국에 의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영웅은 난세에 나는가 보다. 아니 그보다는 세상이 어지럽고 앞날이 깜깜할수록 위기 극복 능력을 갖춘 사람이 두각을 나타낸
‘이달에 굶주리고 앓아 죽은 사람이 팔도에서 1만3420여명이다.’ 조선 현종 12년(1671) 6월 기록이다. 경신대기근(1670~1671)이라 불리는 이때는 소빙하기를 맞아 여름에도 우박이 내리고 가뭄과 홍수가 잇따라 발생해 심각한 기근에 시달렸다. 여기에다 전염병이 끊이지 않아 조선인구 10%가량이 사망했다.이때만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온통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나간 백성들 통곡소리로 가득 차다. 우리 제주도민들은 섬이란 환경에 갇혀 더욱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인류는 오랜 세월 전염병에 시달리며 살아왔다.원인도 모른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 19는 이미 육지부에선 지역사회 전파 수순에 접어들었다. 확진자와 접촉자, 그 동선만 피하면 되는 단계를 벗어났다는 얘기다. 마치 좀비라도 만난 듯 이제는 괜히 서로를 멀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들이 오히려 섬뜩함을 자아내는 영화 인베이젼을 떠올려보라. 보균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은 공포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보균자와의 접촉을 완벽히 차단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지나
정치인은 원래 말이 많다. 말로써 승부해야 하는 몇 안되는 직업 중 하나가 정치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살아남으려면 좋든 싫든 말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요즘 가장 애용하는 SNS도 사실은 말을 더 빨리, 더 널리 실어나르기 위한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극단적으로, 정치인의 말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때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화(禍)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후자는 말그대로 세치 혀를 잘못 놀려 빚어진 설화(舌禍)다. 그 길이(三寸)에 비해 가혹할 정도로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한 장 사진이 주는 충격은 컸다. 비자림로 일부 구간(대천동 교차로∼금백조로 입구 2.94㎞) 삼나무 숲이 훼손된 현장 사진은 전국에 있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2018년 8월 비자림로 공사는 중단됐지만 이미 수많은 삼나무가 쓰러진 후였다.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비자림로 공사 반대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 한 장으로 충분했다. 한 장 사진은 때론 여러 논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시민단체의 우려와 반대에도 7개월 후인 2019년 3월
신종 감염병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는 이때, 제주사회에 또 한가지 씁쓸한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월 단위로는 정확히 8년만에 인구 순유출이 발생했다. 미처 몰랐을 것이다. 거세게 불어닥친 이주열풍이 이렇게 빨리 식을 줄을. 한달 평균 1000명 넘게 인구가 증가한 게 불과 2년여 전이었다. 웬만한 규모의 마을이 연간 12개나 새로 생겨난 셈이다. 완만하긴 해도 줄곧 늘 것만 같았던 순 유입이 이제는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종 코로나로 중국인의 발길이 끊긴 것과는 결이 다른 문제다. 사드 보
올해 6월말이면 제주지역 상당수 도시공원이 사라질 위기를 맞는다. 도시공원은 도시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지정된 도시기반시설이다. 그리고 도시공원의 숲은 여름에 기온을 낮춰주고, 미세먼지를 제거하며, 깨끗한 산소를 제공해주는 공공재이다. 개발이 본격화되던 1970년대 대부분의 도시들은 공공성이 높은 토지를 공원용지로 지정했다. 하지만 도시공원 부지 가운데 사유지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토지소유자들은 재산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1999년 헌법재판소는 사유지에 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무섭게 퍼지고 있다. 아직 사망자는 사스나 메르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확산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선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며 그 타격이 사스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예상 보다 감염력이 높고 전파력이 센 것이 문제다. 당국의 선제조치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경험했듯이 감염병 공포는 우리네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관광으로 먹고산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제주는 치명적이다. 더구나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일단 환자가
나눔은 그 대상자만 좋은 게 아니다. 나누는 주체도 동시에 행복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혹자는 나눔을,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하는 고차원적인 행동으로 규정했는지 모른다.대개 나눔의 대상은 어려운 이들이다. 이들에겐 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따라서 나눔에도 여러 종류가 있기 마련이다. 각각의 나눔을 크기로 잰다는 게 우습지만, 그 가치로 본다면 ‘교육 나눔’을 최고로 치고 싶다. 어려움에서 벗어날 자력의 길을 터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물고기 대신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듯이. 이런 점에서 지난달 [제주의소리]가 캄보디아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