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개교 70주년]⑥ 분립 40년만의 통합 진통…초·중등 교사 양성체제 갖춘 ‘통합 제주대’ 탄생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과 6.25 한국전쟁의 참혹한 환경에서도 인재양성에 진심을 다한 도민 열망으로 탄생한 국립제주대학교가 2022년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고희(古稀)의 나이를 맞은 제주대의 역사는 교육사이든 지역사이든 사회적으로 조명하고 평가해야 할 유의미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소리]는 진리와 정의, 창조라는 창학이념 아래 숱한 지식인과 인재들을 배출하며 제주 현대사의 한 축을 맡아 지역과 호흡해온 국립 제주대학교 70년 영욕의 역사를 집중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1990년대 제주 지역 공공보건의료의 태동을 알린 제주대병원의 탄생과 함께 제주 지역사회를 위한 지역거점국립대학의 새 지평을 연 제주대학교. 

2000년대 들어서는 제주대와 제주교대의 발전적 통합으로 초·중등 교사를 양성할 수 있는 인재 양성 체제를 구축하면서 한 걸음 더 내딛게 된다.

그러나 2008년 성사된 제주대와 제주교대는 통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성장통을 앓듯 두 대학의 통합을 둘러싸고 큰 갈등이 빚어지면서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두 대학의 구성원들 간 통합을 이끌어내면서 60년 제주고등 교육사 대전환의 시기를 열게 됐다. 

제주대학교 사라캠퍼스 교육대학 본관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제주대학교 사라캠퍼스 교육대학 본관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임시초등교원강습소로 시작된 제주교육대학교의 역사

제주교육대학은 1946년 7월, 제주도 임시초등교원강습소로 출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1년 과정의 ‘제주도 초등교원양성소’로 승격, 개편됐으며 1951년에는 3년제로 승격하게 된다. 2년 뒤인 1953년에는 제주도립사범학교로 승격되기도 했다. 

학교 당국은 도립 제주사범학교를 국립으로 이관하기 위해 문교부에 서류를 제출했고, 문교부는 1956년 7월 14일 국립으로의 이관을 인가했다.

고등 교육의 열망으로 탄생한 국립 제주대학과 함께 1960년대 제주에서는 초등교육 자질 향상을 위한 초등교원양성을 초급대학 수준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군사 정부는 1시·도 1개교 원칙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경우 교대 지원자가 적을뿐더러 초등학교 수가 적어 교원 수요도 적다’는 이유로 교육대학 설립을 제외했다.

정부의 방침에 제주 교육계는 초등교원 수급과 재교육에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 교육대학 설립을 각계에 건의했고 결국 정부는 잠정조치로 국립 제주대학에 2년제 병설교육과를 발족시키기에 이른다. 

제주교대는 초급대학 수준으로 출범했으나 독립된 교육대학이 아니라 국립대학 병설로 생겨난 탓에 초등교원 양성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는 데 교육과 행정적 문제가 생겨났다.

이에 제주대는 1968년, 도지사와 제주대학장, 교육감, 국회의원 등이 참여한 교육대학분리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분립 취지에 대해 동의하는 교육계 인사와 지역사회 유지, 현직 교장단으로부터 서명운동을 받았다. 

2368명의 서명을 받은 추진위는 건의서를 문교부에 제출했고, 문교부는 1968년 10월 10일 분립을 승인했다. 이로써 제주교대는 숙원이었던 독립을 이뤄 개교식을 열게 됐다.

1984년 3월에는 2년제 대학에서 4년제 대학으로 개편됐으며, 1993년에는 관련 법령에 의거, 교명이 제주교육대학이 제주교육대학교로 변경됐다. 

제주대 사라캠퍼스(제주교육대학교)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제주대 사라캠퍼스(제주교육대학교) 전경. 사진=제주대학교.
당시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투표에 반발한 학생들은 제주교대가 쓰인 관을 태우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제주의소리
당시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투표에 반발한 학생들은 제주교대가 쓰인 관을 태우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제주의소리

 본격적인 통폐합 논의…깊어진 갈등의 골

제주대 통합 논의는 1998년 교수간담회에서 시작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취임 전 과제로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추진을 거론한 바 있다. 

그해 6월 13일 제주교대는 통합 추진 관련 제주대 측이 정부에 건의한 내용에 대한 대책 논의를 시작했으며, 총학생회도 임시총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1999년 5월 제주교대는 대학통폐합안 관련 교수간담회를 열고 총장과 전체 학생과의 간담회를 열었으며, 총학생회는 대학통폐합안 반대를 위한 수업거부 투쟁에 나섰다.

강한 반발에 부딪혀 일단락되는가 싶던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논의는 2005년 고충석 제주대 총장의 취임과 함께 불씨가 살아났다. 당시 취임식에서 고 총장은 일방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없다면서도 통합 시너지가 큰 만큼 논의의 물꼬를 터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교육부총리 역시 제주권역 국립대학 구조개혁추진위원회 간담회 자리에서 “제주교대 규모로는 초등교원 양성을 위한 정상적 교육과정 운영이 어렵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면서 “지역 차원의 긍정적 협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2006년 6월 27일 고 총장은 ‘제주대와 제주교대 통합 논의 시작하자’라는 제목의 신문 기고를 통해 “통합 문제는 제주 고등교육계 주요 현안”이라며 “문제를 공론화하고 가부 간의 매듭을 지어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이 대학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정기 당시 제주교대 총장은 그해 7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아직 통폐합 문제를 논의할 시점이 아니”라고 못 박고는 통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통합 논의의 물꼬가 트인 상황에서 제주대는 제주교대 교수와 학생들에게 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합동 상설기구 구성을 제안하는 서한문을 보냈고, 교육인적자원부 역시 정부 차원에서 밀어붙여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전국교육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같은 해 9월 4일 제주교대에서 통폐합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제주교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도민들에게 통폐합의 부당함을 알렸다. 

통폐합 문제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쟁점으로 부각 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고 총장은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며 “필요하다면 통합에 따른 타당성 조사와 용역을 실시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제주대와 제주교대 통폐합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다졌다. 당시 김신일 교육부장관은 2007년 5월 제주도교육청을 방문해 “정부 입장은 변함없으며, 가능한 빨리 통합하도록 대학 측에 촉구하고 있다”고 고 총장의 계획을 뒷받침했다.

그러자 제주교대 김 총장도 “독자성만 보장된다면 협상단을 구성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제주대와 통합 협상안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나 제주교대 교수회의에서는 양해각서 체결 여부를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섰으며, 학생과 동문들은 전문성과 자존심을 경제 논리로 무너뜨릴 수 없고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역 언론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통합을 찬성하는 논조의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교육부는 2008년 3월 1일까지 통합이 이뤄진 대학에만 구조개혁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엄포했다.

2007년 6월, 제주대와 제주교대 총장은 통합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고충석 제주대 총장(오른쪽 두번째)과 김정기 제주교대 총장(왼쪽 두번째)이 협약서에 서명후 악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7년 6월, 제주대와 제주교대 총장은 통합추진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고충석 제주대 총장(오른쪽 두번째)과 김정기 제주교대 총장(왼쪽 두번째)이 협약서에 서명후 악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통폐합 투표가 학생을 제외한 채 결정되자 학생들은 '謹弔 제주교대 상여'를 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통폐합 투표가 학생을 제외한 채 결정되자 학생들은 '謹弔 제주교대 상여'를 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에 제주교대는 제주대와의 양해각서 체결을 결정했고, 학생들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통합 문제를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논의해 진행할 것이라는 총장의 발언은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무효를 주장, 강력하게 투쟁했다. 

당시 양해각서에는 △제주교대-제주대 통합추진위 구성 △구체적 통합안 마련 △적정 시기 구성원 동의절차를 거친 뒤 통합 여부 최종 결정 등 내용이 담겼다. 

뒤이어 제주교대는 2007년 7월, 통합추진위원회와 통합추진실무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통폐합 방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그해 9월 11일에는 두 대학이 통합추진위를 꾸려 본격 협상에 들어가기도 했다. 

10월 27일 두 대학이 마련한 통합합의안에는 △최고 수준의 교육인프라 구축 및 환경 개선 △두 대학교수 연구환경 개선 △교대 자율적 관리체제 유지 및 부총장제 도입 △교육대학 체제의 합리적 개편 △교원양성 체제 전문성 신장 등이 담겼다.

합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교육부는 10월까지 구성원 투표를 마칠 것을 주문했고, 제주교대는 11월 1일 교수회의를 개최해 통폐합 찬반 투표 일정 및 방식 등을 정할 계획이었으나 학생들의 강한 저지로 무산됐다. 

이어 제주교대 투개표 관리위원회는 11월 2일 공고를 통해 찬반투표를 11월 6일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총학생회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뒤 11월 10일 회의실에서 교직원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는 35명 중 31명이 투표, 찬성 25표, 반대 6표로 통합이 결정됐다.

그러자 총학생회가 이끄는 ‘제주교대 통합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13일 오후 학교 광장에서 삭발식을 거행하고 ‘謹弔 제주교대’라고 쓰인 관을 들고 통합 반대집회와 화형식을 거행하는 등 거세게 항의했다. 

학생들은 통합 투표가 비민주적이며 밀실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 총장실과 대학본관을 점거해 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총장이 농성 중이던 학생을 폭행, 직접 교육부에 사직서를 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대-제주교대 통합지원신청서는 교육부에 그대로 제출됐으며, 교육부는 11월 30일 통합을 승인했다. 이에 제주교대는 통합추진단과 통합추진실무단을 꾸려 후속 조치에 나섰다. 

각종 논의가 더 이어진 끝에 62년에 달하는 역사 속에서 초등교원을 양성해온 제주교대는 1968년 10월 10일 제주대로부터 분립 승인된 지 40년 만인 2008년 3월 1일, 국립학교설치령 중 개정령에 따라 제주대와 통합하게 됐다. 

2008년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출범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
2008년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출범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
2008년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출범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
2008년 제주대-제주교대 통합 출범 현판식. 사진=제주대학교.

 전국 최초 초중등교사 동시 양성 체제 갖춘 제주대

정부의 승인이 떨어진 뒤 2008년 3월, 본격적으로 출범한 통합 제주대는 교육대학이 합류하게 되면서 초등부터 대학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중심축으로써 대학규모의 경제성과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더불어 전국 최초로 초등과 중등교사를 동시에 양성하는 체제를 갖춘 유일한 종합대학 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질적 교육에 목말랐던 지역사회에 단물이 됐다. 

교수들은 통합과정에서 논의가 부족했음을 사과했고, 학생들은 대토론회를 거쳐 68일간의 수업거부를 마치고 학사일정에 복귀했다. 하지만 통합과정에서 총장과 학생, 교수와 학생들간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대와 제주교대 통합은 지역사회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거점 국립대학으로서의 위상강화와 학생 장학·연수·복지 개선, 교수 연구·봉사 기회 확대 등이 통합 주요 성과로 꼽힌다. 

결과적으로 제주대와 제주교대가 통합하게 되면서 지역거점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60년 제주고등 교육사 대전환의 시기를 열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7편에서 계속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