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故 한상용 사건 재심 개시 1주일 만에 검찰 항고 논란

없는 자료를 확인하자는 검찰의 항고에 따라 특별재심·직권재심 대상이 아닌 제주4.3 피해자 고(故) 한상용 유족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제주지방검찰청은 지난 26일 고 한상용의 아들 한씨가 청구한 재심 사건에 대한 즉시 항고장을 제출했다. 지난 19일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의 재심개시 결정 일주일만이며, 광주고법의 판단을 받게 됐다. 

# 희생자 미신고 4.3 피해자 고 한상용

고 한상용씨는 4.3 당시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경찰에 끌려가 2년간 옥살이한 4.3 피해자다. 

1950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군정법령 제19호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으며, 만기 출소한 뒤 3남매를 뒀고, 2017년 숨졌다. 

한상용씨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한 4.3 희생자가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라서 제주4.3특별법상 특별·직권재심 대상이 아니다.

한씨의 유족들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희생자 신청 관련 내용을 몰랐다며, 올해 1월에야 4.3 희생자로 결정해달라고 신고했다.   

아들 한씨는 재심을 청구하면서 “아버지(고 한상용)는 평소 말이 없다 술을 마시면 종종 옛날 얘기를 했다. 다른 사람이 고문 당하는 모습을 보고 살기 위해 ‘네’, ‘네’라고만 대답했는데, 교도소에 갔다고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희생자가 아닌 한씨 유족의 진술 청취 말고는 다른 심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고했다. 

 # 희생자 결정은 기약 없는 기다림

검찰의 주장대로면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4.3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기약이 없다. 

지난해 7월 제주에서 열린 4.3중앙위원회 제30차 회의를 통해 희생자 88명과 유족 4027명 등이 추가로 인정됐다.

이에 따라 4.3 희생자는 사망 1만498명, 행방불명 3650명, 후유장애 213명, 수형인 299명 등 총 1만4660명이다. 유족은 8만8533명이다.

아직도 4.3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숨겨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있다. 

75년이 지난 현재에도 4.3희생자·유족 추가 신청이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며, 희생자로 결정해달라고 신청했다고 곧바로 회의가 열리지도 않는다. 

4.3중앙위원회가 발족한지 23년이나 지났지만, 회의가 단 30번만 열렸다는 사실이 방증이다. 

70년을 훌쩍 넘기면서 4.3 당시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수형인명부나 판결문 등이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며, 하물며 4.3 피해 당사자 대부분은 생사를 달리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유족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각 지역 원로 등 보증인의 진술을 통해 신빙성을 확인하고 있다. 4.3희생자 결정 과정에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진술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다. 

유족의 진술을 중심으로 희생자 선정이 이뤄지는데, 검찰은 고 한상용 유족 진술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없는 것을 확인하려는 검찰

검찰은 4.3중앙위원회 심사에 준하는 정도의 객관적인 조사를 거쳐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행정기관에 사실조회를 통해 한씨에 대한 불법구금 및 가혹행위 사실을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대부분의 4.3 희생자들처럼 한씨에 대한 자료는 아직 없다. 

이 때문에 4.3재심 전담재판부가 “사실조회가 아니라 행정기관에 전화 한통만 해도 (고 한상용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은)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작심해 검찰을 비판하면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반대로 검찰은 행정기관으로부터 사실조회를 보내 자료가 없다는 회신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항고했다. 자료가 없다는 회신이 오면 있는 자료만으로 판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조속한 명예회복을 위해 ‘희생자’를 대상으로 재심 절차 등이 간소화된 4.3특별법 취지에 맞추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아닌 4.3 피해자의 재심 사건에서 세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재심을 청구한 고 한상용의 유족과 변호인, 법원이 같은 생각을 갖는 상황에서 검찰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모양새다. 

 # 되새기는 4.3특별법 명예회복 입법 취지

당초 명예 회복과 관련된 4.3특별법 전면 개정안은 4.3 희생자 전원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조속한 명예회복을 돕는 취지로 준비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입법부(국회)가 재심 등 절차 없이 과거사 피해자들의 명예를 곧바로 회복시켜주는 법률을 발의하면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 사법부(법원)의 권한을 침해하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개정안이 수정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피해 당사자 대부분이, 1세대 유족까지 생사를 달리한 사람이 상당수다.

고령인 피해자와 유족들이 생존해 있을 때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명예회복 관련 4.3특별법 전면 개정안의 대전제는 ‘조속한 명예회복’이다. 

결과적으로 4.3특별법 입법 취지를 강조한 검찰의 항고로 인해 고 한상용 유족들은 ‘조속한 명예회복’과는 거리가 멀게 기약 없는 기다림을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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