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고 한상용 재심 ‘이송결정에 대한 재항고’ 기각

대법원이 제주4.3 피해자 고(故) 한상용 재심 사건에 대한 관할법원은 제주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로써 4.3 피해자들이 제주가 아닌 광주, 부산, 마산, 대구 등 전국 각지 법원에서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할 처지에 놓여 불편이 예상된다. 

대법원 제1부는 고 한상용 유족 측의 ‘이송결정에 대한 재항고’ 사건을 지난 14일 기각했다. 재항고 기각 결정에 따라 고 한상용의 가족들은 제주가 아닌 광주지방법원에서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난해 10월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 올해 1월19일 제주지방법원의 재심개시결정까지 이뤄진 사건이 검찰의 즉시항고로 인해 결국 광주로 이송된다. 

#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4.3 수형인 첫 재심 사례 고 한상용

4.3 당시 성산읍 수산리에 살던 고 한상용은 신원불상의 남로당 당원을 도왔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뒤집어써 1950년 2월28일 광주지법에서 징역 2년형을 받은 4.3 피해자다.

만기출소해 고향 제주로 돌아온 한상용은 고문 후유증으로 생계 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그의 아내가 물질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3명의 자녀를 둔 고 한상용은 2017년 7월 생사를 달리했다. 

지난해 10월 한상용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풀어달라며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심문기일에 출석한 고 한상용의 아들은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4.3 때 고문으로 죽은 사람을 목격했고, 살아남기 위해 경찰들이 묻는 말에 그저 ‘네’, ‘네’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자신은 덜 맞았지만, 허위 자백이 유죄의 증거가 돼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고 억울해 하셨다”고 증언했다. 

고 한상용 자녀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제주지법은 올해 1월19일 재심개시를 결정했지만, 1주일이 지난 2023년 1월26일 검찰이 즉시항고했다. 

고 한상용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의 진술을 100% 신뢰할 수 없고, 아직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고 한상용 사건은 선고가 이뤄진 광주가 재심 관할법원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고 한상용의 자녀들은 4.3희생자 신청 절차를 잘 몰랐다는 입장이며, 올해 4.3희생자 추가 신청했다.  
 
# 전국 각지로 가야하는 제주4.3 재심 사각지대

검찰의 ‘재심 개시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사건을 검토한 광주고등법원은 올해 4월11일 파기이송을 결정했다. 

광주고법은 4.3특별법에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피해자에 대한 관할법원 규정이 없어 다른 재심사건과 마찬가지로 기존 선고가 이뤄진 법원에서 재심 사건이 다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제주지법의 재심개시 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로 이송했다. 

이에 고 한상용 측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도 광주고법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4.3피해자 재심 첫 사례인 고 한상용 재심 사건은 제주도민사회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선례로 남아 추후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4.3피해자 상당수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재심 절차를 거쳐야 할 처지에 놓였다. 

형사소송법 등에도 불구하고 4.3특별법에 따라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은 제주지법이 관할하고 있다. 군사재판의 경우 모두 제주에서 이뤄져 관할법원에 대한 문제가 없다. 

법무부와 검찰은 4.3특별법에 따른 직권재심 대상을 기존 군사재판 피해자에서 일반재판 4.3희생자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고 한상용처럼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4.3피해자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셈이다. 

# 4.3재심 전담재판부 구성 취지 무색, 4.3특별법 개정 필요성

제주지법은 4.3재심 전담재판부로 형사제4-1부, 형사제4-2부를 운용하고 있다. 효율적인 심리를 통해 4.3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빨리 풀어주기 위해 구성됐다.  

현재 4.3 일반재판 피해자는 180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군사재판 피해자들의 이름 등이 기재된 수형인명부와 같은 자료가 없어 정확한 피해자 추산이 어렵다. 또 희생자로 결정된 일반재판 4.3 피해자는 9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반재판 4.3 피해자 상당수는 제주가 아닌 광주, 부산, 대구, 마산 등 지역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이들 중 제주에서 재판을 받았거나 희생자로 결정된 피해자만 제주에서 재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특별재심과 직권재심이 도입된 4.3특별법 전면개정 입법 취지에 따라 4.3희생자에 대한 재심은 전국 어느 법원에서 판단을 받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4.3희생자는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가 ‘희생자’로 결정한 4.3 피해자를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고 한상용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4.3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이 4.3관련 재심사건 중 어려운 사건으로 꼽히는 이유다.  

전담재판부는 어려운 사건이 접수되더라도 높은 전문성으로 효율적인 심리를 이어갈 수 있다. 사법부에 특허법원, 행정법원 등이 존재하는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제주4.3 재심 사건이 제주지법 4.3재심 전담재판부가 아닌 다른 지역 법원이 담당하게 됐다. 

올해 제주를 찾은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도 4.3재심 관할법원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고 한상용 재심처럼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4.3피해자에 대한 관할을 제주로 지정하는 것은 현행법률상 어렵다는 취지다. 

대법원마저 고 한상용 재심사건의 관할법원을 광주지법으로 판단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피해자에 대한 재심 관할을 제주지법으로 지정하는 4.3특별법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