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희생자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일반재판 피해자 고(故) 한상용의 유족들이 제주가 아닌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기로 했다. 

14일 [제주의소리] 취재 결과, 최근 고 한상용의 유족들이 광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법원과 검찰 결정에 울분을 토하며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광주에서라도 재심 절차를 밟겠다는 의사를 법률대리인에게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담재판부가 있는 제주지법이 아닌 광주지법에서 4.3 피해자가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현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고 한상용 유족 측의 법률대리인은 “유족 측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광주를 오가면서라도 재심 절차를 밟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4.3 피해자의 재심 청구 첫 사례인 고 한상용 사건은 추후 이어질 비슷한 사건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도민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4.3 당시 성산읍 수산리에 살던 고 한상용은 신원불상의 남로당원을 도왔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을 뒤집어써 1950년 2월28일 광주지법에서 징역 2년형을 받은 4.3 피해자다.

만기출소해 고향 제주로 돌아온 한상용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7년 생사를 달리했다. 고 한상용은 평생을 억울함을 토로하며 살았다. 

평소에는 말없이 지내다가 술을 마셔 취기가 오르면 가족을 포함해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4.3 때 고문으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해 겁에 질렸던 자신의 모습, 살고 싶어서 군경이 묻는 말에 ‘네’, ‘네’라고만 대답하던 기억 등을 힘들게 떠올렸다. 

고 한상용의 자녀들은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4.3희생자 관련 내용조차 모르고 살다가 재심 과정에서 인지, 올해 초에야 4.3희생자 신청(추가)을 했다. 

4.3희생자는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가 결정하며, 통상적으로 희생자 결정까지 2년 정도 소요된다. 

4.3 재심은 크게 직권재심과 유족 청구재심으로 나뉜다. 직권재심은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나 제주지방검찰청 등 기관이 직권으로 청구한 재심 사건이고, 유족 청구재심은 유족들이 직접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청구한 재심 사건이다. 

직권재심과 유족 청구재심 대상자가 4.3 희생자라면 특별재심 특례를 받는다. 

제주4.3특별법 제14조(특별재심)에 3항에 따라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에 불구하고 제주지법이 4.3 희생자에 대한 재심을 관할한다. 

합동수행단의 경우 군사재판 피해자 2530명 전원과 희생자로 결정된 일반재판 피해자를 대상으로 직권재심을 청구하는데, 군사재판(1~2차 군법회의) 모두 제주에서 불법적으로 진행됐기에 희생자 결정 여부와 관계 없이 제주지법이 관할한다.

4.3 관련 재심사건의 유일한 사각지대가 고 한상용처럼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피해자다.

일반재판 4.3 피해자는 18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수백명은 제주가 아닌 광주와 부산, 대구 등 지역에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형인명부와 같은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관련 기관이 유족 증언 등을 통해 추산하고 있다.  

올해 1월 제주지법은 4.3특별법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고 한상용 사건을 제주지법이 관할할 수 있다며,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하지만 검찰이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4.3 피해자에 대한 관할 법원 관련 조항이 없는만큼 제주에서 재심을 진행할 수 없다며 즉시항고했다.  

고법은 검찰 항고를 받아들여 재심개시 결정을 취소해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이송 결정했다. 이에 고 한상용 측은 재항고를 통해 대법원에 판단을 요구했지만, 대법원마저 고법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고 한상용 재심 사건이 선례가 되면서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일반재판 피해자 중 다른 지역에서 재판을 받은 4.3 피해자는 해당 지역에서 재심을 밟아야 한다. 희생자로 결정된 이후 특별재심 특례로 제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을 수도 있지만, 언제 희생자로 결정될 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제주지법에 청구된 고 한상용 재심 사건은 항고와 재항고 절차를 거치면서 광주지법에서 처음부터 절차가 시작될 예정이다. 

사건을 배당받은 광주지법 재판부가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고 한상용에 대한 재심 사건을 개시할지, 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까지 이어질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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