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그토록 흠모했던 수선화. 3월 봄볕을 벗삼은 수선화가 제주 대정읍 추사 적거지 인근의 대정향교에도 만개해 있습니다. 추사가 바람코지 대정(大靜) 마을에서 세한(歲寒)의 8년 유배인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지천으로 널린 수선화를 보는 뜻밖의 낙이 컸습니다. 그러나 척박한 삶이 현실인 제주 민초들에겐 소나 말에게 먹일 ‘몰마농’이었거나, 농사에 방해되는 검질쯤이었겠지요. 환경이 시선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백옥 같은 잔대 위에 황금 찻잔을 올려 놓은 듯 자태와 기상이 남다른 금잔옥대(金盞玉帶) 수선화. 추사도 그
왜 올레를 자주 걷느냐고 묻는다. 나는 걷는 게 아니라 올레를 순례한다고 전한다. 그대도 마음에 무거운 게 있거든 한걸음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순례하라고 권한다. 나에게 있어 올레는 순례 명상의 아란야이다. 일주일래(一週一來), 한주에 한 코스를 순례하며 자연과 함께 소통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 이번 다섯 번째 순례는 제주올레 3-B 코스이다.제주올레 3-B 코스는 2015년 5월 23일 개장되었다. 온평리 ‘동개맛, 터웃개’에서 신산리·삼달리·신풍리·신천리·하천리·표선리 당케 백사장까지 14.6km, 37리이다. 3-A코스 20.
제주올레의 공식 파트너 기업 (유)퐁낭에서 꾸리는 제주올레 완주여행팀이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2월 4일. 11코스를 걸을 때 함께 했는데, 그들은 벌써 제주시 권역을 다 돌았단다.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동참을 못하다가 2월 21일에 21코스를 걷는다기에 확 마음이 끌렸다. 만사 제쳐놓고 참가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점인 1코스와 함께 마지막 코스인 21코스는 늘 내게 각별한 애정을 느끼게 만드는 곳이었으므로. 게다가 땅끝 오름을 의미하는 지미봉 꼭대기에서 제주 남동쪽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아침 마당이 하얗다. 어제 날씨가 포근했음에도 도롱뇽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밤사이 눈이 쌓일 것을 도롱뇽은 이미 알고 있음이었다. 중실도 서실도 살얼음으로 덮였다.누군가 다녀갔다. 서실 근처 조그만 바위에 내려앉은 눈 위로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서실에 있는 바위 하나도 서 있다. 아마도 잠자는 도롱뇽을 찾아 들춘 것이겠지.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21일 월요일 오후 4시 50분오늘도 제법 쌀쌀하다. 간혹 눈발이 날린다. 이들도 산란 예정일
봄이 오면 가장 빨리 꽃을 피우는 식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초본류에서는 대표적으로 흰털괭이눈, 세복수초, 변산바람꽃 등이 있고 목본류에서는 제주백서향, 길마가지나무, 새덕이 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한라산의 식물 이야기 편에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이번 주에는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나리아재비과의 개구리발톱(Semiaquilegia adoxoides (DC.) Makino)을 소개해 드립니다.그런데 왜 이름이 ‘개구리발톱’이 되었을까요?개구리발톱이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식물의 서식지에 개
* 뜬 쇠 : 느린 소* 울 : 울타리소는 우직한 데다 굼뜨고 미련해 보이는 가축이다. 꾸물럭꾸물럭 어기적거린다. 저를 매어 놓은 외양간에 불이 났으면 모를까, 사람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답답할 정도로 시종 느리다. 회초리로 몇 번 때려도 그때뿐, 천하에 이런 느림보는 없다.하지만 소라고 다 느린 것도 아니다. 동작이 느린 놈이 대부분이지만 빠른 놈도 있다. 빠른 놈은 길을 가다 앞을 가로막는 담장을 펄쩍 뛰어넘기도 한다. 농촌에서 자라 이런 의외성을 눈으로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놀라운 일이
봄이 오시는구려봄의 길목, 짙은 미련으로 흔들리는 북풍한설에도 홍매화 가지 끝에 찾아온 봄은 언제나 그렇듯 살풀이춤을 추나니,부끄러운 새색시마냥붉은 저고리 소매에 스치는 바람소리마저 끝없어라홍매화 가지 끝, 미친 춤사위봄이 춤 추며 오시는구려 / 글=김봉현 기자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2일 토요일 밤 10시 10분하늘 전체가 회색빛이지만 온몸에 와 닿는 바람엔 봄의 기운이 들어 있다. 잠시 장수물에 들렀다. 죽은 알과 살아 있는 알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지난 1월 27일 이후 아직은 더 낳은 알이 없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13일 일요일 밤 10시 50분입춘을 넘겼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날이다. 포근함,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활짝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전혀 춥지 않다. 오히려 상쾌하다. 아마 봄기운이 들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는개 비가 내
* 촘솔 : 참살* 토락토락허곡 : 토실토실하고* 북솔 : 부풀어 오른 살* 물랑물랑헌다 : 물렁물렁한다사람마다 체형이 다르듯 체질 또한 천차만별이다. 몸을 어떻게 단련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체질을 잘 다진 사람은 근육이 쇳덩이처럼 단단한 데 비해, 그렇지 않고 타고난 대로 놓아둔 사람은 아무래도 근육이 약하다. 물론 상대적인 것이긴 하다.근육은 운동하면 할수록 발달하는 것이다. 보디빌더들은 놀랄 만큼 불룩거리는 근육을 가지고 있다. 보기만 해도 건강미가 넘친다. 각종 운동기구를 사용해 보통 사람에
역사의 산 증인으로 해병대에 복무 하셨던 이성지 어르신은 26살에 전역을 하시고 제주로 돌아왔다. 어르신이 해병대를 지원하시게 된 동기는 당시 처절했던 제주의 상황(제주 4.3) 때문이었다. 어르신은 이렇게 살다 죽으나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으나 어차피 죽는다면, 나라를 위해 용맹히 싸우다 죽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어르신에게 그 시절 그 시대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함, 슬픔은 오히려 고된 훈련을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르신은 훈련기간을 거치며 나를 있게 해 준 나라를 위한 애국심, 훗날 우리 자손들의 터전인 대한민
이 겨울 한 번쯤은 아름답고 따뜻한 내 고향 서귀포를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도 매일 지내다 보면 감흥이 덜해지는 법이고, 떠나봐야 정주하는 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새로워지는 법이다. 숨죽여 엎드려 있던 여행 본능도 긴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걸까. 이곳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그럴 즈음, 강원도의 한 공기업이 올레길 성공 사례에 대한 특강을 요청해 왔다. 평소 같으면 1박 2일 일정으로 충분히 끝낼 만한 일정이었다. 허나 여행이 고팠던 나는 특강과 여행을
곧고 반듯한 길과 구불구불한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고단함과 부족함 없이 살아온 인생과 구부러진 길에서 울퉁불퉁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 같을 수 없겠지요. 힘들더라도 희로애락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오늘처럼 왕벚꽃 숲 같은 눈꽃 핀 길도 만나겠지요. 겨울에서 봄으로 향하는 한라산 5.16도로, 어쩌자고 이리 아름다울까요. / 글=김봉현 기자
제주올레 3코스는 2008년 9월 27일 온평리 ‘동개맛, 터웃개’에서 9코스로 개장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올레 코스가 재조정되면서 3코스로 명명되었다. 그 후 2015년 5월 23일 3-B 코스가 개장되면서, 3-A 코스로 변경된 가장 ‘지럭시’가 진 올레이다. 구간은 온평리 ’동개맛‘에서 표선리 당케 백사장까지 20.9km, 53리이다.하지만 신풍포구 ‘머럭’에 있는 ‘거린’ Y형 올레에서 3-A·B 코스가 합류되기에 즐기면서 오름과 벌판 목장 그리고 해변을 차례로 순례할 수 있는 멋진 코스이다. 하여 삶이 무척 고단하실 때 순례
2020년 8월에 시작한 “마을 책방을 찾아書”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뒤돌아보니 아득하다. 연재 마지막은 이밤수지와 맨드라미최로 불리는 이의선⸱최영재 씨 부부의 책방 “밤수지맨드라미”에 다녀왔다. 어쩌면 가장 먼 곳, 그러나 한번 다녀오고 나면 가장 가까운 곳처럼 여겨지는 밤수지맨드라미는 우도에 있는 책방이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하귀일초에 다니는 충영, 서윤 남매와 함께했다.밤수지맨드라미란 제주 바닷속에 사는 멸종위기의 분홍색 산호를 말한다. 부부는 우리 삶에서 멀어져만 가는 책의 모습과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2월 05일 토요일 밤 11시 30분옆새우와 어머니의 사삼준수와 함께 장수물로 갔다. 물이 줄어든 것 외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그 많던 연가시도 어디로 갔는지, 장수발자국엔 옆새우만 부메랑이 날 듯 슝 슝 움직이고 있다. 새우라고 하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난 딱새우나 새우젓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웃집 이춘아 삼춘을 찾아갔다. 미루다가 듣지 못한 어머니의 4⸱3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같이 총을 맞았다는 것까지뿐, 워낙 말이 없으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퇴역 경주마들퇴역 경주마 승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4살 되던 해인 2004년에 서울경마공원에 입사했다. 10살까지 외국 경주를 포함하여 총 51회 경주에 출전하여 19회 우승을 하고 2년 연속 경마 팬이 뽑은 최고의 말에 선정이 되었다. 국내 최정상급 명마로 칭송받으며 그랑프리 대회 대상 수상 등 벌어들인 상금이 1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평균 4살에 퇴역하는 한국의 경주마와 다르게 승리는 10살에 퇴역했다. 그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승리는 퇴역 후 경기도 소재 허름한 승마장에서 햇빛 하나 들어오지
* 자릿도새기 : 새끼돼지* 두싀 불차 : 두세 번째(次)* 윤진다 : 굵다. 튼튼하다, 옹골차다옛 선인들은 사시사철 밭 갈아 씨 뿌려 김매고 거둬들였을 뿐 아니라, 소나 말, 돼지와 가금류인 닭을 기르며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밭농사만 아니라 가축을 기르는 데도 온 정성을 다 쏟았다. 지금처럼 돈만 가지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어서 직접 생산해 살림을 꾸리다 남은 것을 시장에 대가 팔아 살아갈 밑천을 장만했던 것이다. 여인들은 날씨를 보아가며 웬만하면 바다로 나가 물질해 해산물을 캐고 따다가 가계에 충당했음은 말할 것이 없다.밭 갈고
국어사전에서 ‘비쭉’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얼굴이나 물건의 형태가 길고 세게 내민 모양’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이번 주에는 붉은 겨울눈을 비쭉 내민다고 하는 비쭈기나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나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해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수종입니다. 지난 1월, 제주의 중산간에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사진으로 담은 비쭈기나무의 열매 모습입니다.비쭈기나무의 수피는 짙은 적갈색을 띠고 있는데 수피에는 작은 피목이 발달해 있습니다. 2월 초 서귀포의 오름을 산행하다가 만난 비쭈기나무는 이름처럼 붉은 새순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아직 시린 바람 사이로, 아직 잔설(殘雪)이 남은 땅 위로, 손톱만 한 매화들 서로의 뺨을 부비고 있습니다. 두 송이, 세 송이, 열 송이, 스무 송이…. 수런수런하지만, 새색시처럼 단정합니다. 바람 따라 흰 소매 흔들고 새하얀 이 드러낸 단아한 미소로 새봄을 맞습니다. 문득 내다 본 봄 뜰에 매화가 서럽도록 곱습니다. / 글=김봉현 기자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밤 10시 30분운동 삼아 아들과 함께 장수물로 갔다. 어젯밤과 달리 장수발자국 안에는 도롱뇽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는다. 냇가로 내려갔다. 낮에 보았던 첫 산란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도롱뇽이 몰려 있다. 이들은 한창 산란 중이다. 관찰일기 쓴 날 :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연가시이 조그만 우물 안에 참으로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들은 도롱뇽이 알을 낳고 부화하면 그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장수발자국 안에 있는 연가시는 도대체 어떤 녀석일까?사전을 찾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