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의성 있는 살인”vs피고인 변호인 “검찰의 예단은 형사소송법 위반”

2년전 제주에서 발생한 음주 사망 교통사고에 대한 ‘고의성’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검찰은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사고를 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고, 변호인은 피고인이 고의성을 가졌다는 검찰의 예단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9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씨(33.인천)에 대한 두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증인 4명이 출석했으며, 검찰과 A씨 측은 고의성을 두고 서로 다퉜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1월10일 오전 1시20분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제주시 한림읍 귀덕초등학교 인근을 달리다 돌담과 경운기를 잇따라 들이받았다. 

당시 A씨는 연인 관계였던 B씨와 함께 제주에 여행 온 상태였으며, 소위 ‘오픈카’라고 불리는 고급 외제차를 몰았다. 

이 사고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로 보조석에 타고 있던 B씨는 차 밖으로 튕겨나가 중상을 입었고, 수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2020년 8월23일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12%였다. 

경찰은 B씨가 사망하기 전 단순교통사고로 보고 A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위험운전치상)’, ‘도로교통법(음주운전)’ 위반 혐의로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A씨가 고의적으로 사고를 냈다고 판단했고, 수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B씨가 사망하자 A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변호인 “검찰의 예단은 형사소송법 위반”...판사 “재판부는 예단하지 않아”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 A씨의 변호인은 검찰이 A씨가 고의성을 가졌다고 예단해 기소했다면서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변호인은 “A씨와 B씨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거의 매일 같이 만났다. 사고 당일에도 다정하게 같이 사진을 찍고 술을 마셨다. 만취한 상황에서 B씨는 A씨 만류에도 운전대를 잡았고, A씨는 B씨에게 여러 차례 사정해 본인이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숙소에 도착했지만, B씨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 결국 다시 A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다시 운전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 B씨가 사망에 이르렀다. A씨가 B씨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 변호인은 “검찰은 피고인(A씨)가 고의성을 가졌다고 예단해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변호인의 주장이 계속되자 장찬수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변호인의 주장을 토대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재판부의 몫이다. 재판부는 예단하지 않는다. 재판부를 믿으라”면서 말했다. 

▲초 단위의 당시 주행기록...데이터로 추측해야 하는 사람의 심리 

이날 재판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도로교통안전공단 등 사고 당시의 기록을 분석한 4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해당 차량의 주행기록은 0.5초 단위로 기록됐으며, A씨가 어느 정도 세기로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핸들을 어느 정도 틀었는지 등도 모두 기록됐다. 

사고 발생 5초전의 차량의 속도는 시속 86km였으며, 이후 114km까지 속도를 올렸다. 사고 순간의 속도는 시속 92km로 기록됐고, 2초 정도 지난 뒤 2차 충격이 이뤄졌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50km.

A씨 변호인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A씨가 사고 위험을 감지해 감속했고, 사고를 피하기 위해 급히 핸들을 틀었다고 주장했다. 

고의성을 가진 살인이 아니라 단순 교통사고라는 취지다. 

검찰은 데이터만으로 A씨가 사고를 피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핸들을 틀었는지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대부분의 증인 모두 데이터만 봤을 때 사고 직전의 제동이 이뤄진 것은 맞다고 말하면서도 고의성 여부 등 사람의 심리는 데이터로 추측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응' 대답 듣고 곧바로 가속” 검찰에 힘 실은 국과수

출석한 증인 4명 중 국과수 관계자는 A씨의 주행 기록을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사고 발생하기 전 A씨는 B씨에게 “안전벨트 안맸네?”라고 물었고, B씨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B씨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당시 차량에서는 계속 안전벨트 경고음이 울렸다. 

국과수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는 가로등이 있어 (도로 바깥쪽 돌담 등 상황이) 육안 식별 가능하다. 전혀 안 보이는 상황은 아니”라며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했을 때 피고인(A씨)은 ‘안전벨트 안맸네’라고 묻고 ‘응’이라는 대답을 들은 직후 가속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A씨의 변호인이 “사고 직전에 제동해 속도가 줄었고, 핸들도 틀었다”고 말하자 국과수 관계자는 “데이터상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더라도 제한속도 시속 50km를 넘은 상황이라서 큰 의미가 없다. 가속페달(액셀러레이터페달)을 상당히 많이 밟았다”고 답했다. 

변호인이 “검찰의 의뢰를 받은 증인은 ‘안전벨트 미착용을 인지하고, 무리하게 가속해 사고를 냈다’고 결론을 냈다. 그러면서 고의성 판단은 안했다”고 물었다.

이에 국과수 관계자는 “고의성은 사람의 심리라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판단은 재판부가 해야 한다”고 증언하면서 검찰 공소사실에 힘을 실었다. 

검찰과 A씨 측의 법정 공방이 계속되자 재판부는 오는 9월13일 재판을 속행키로 했다. 다음 재판에는 숨진 B씨의 유족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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