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무죄→유죄→무죄, 파기환송심 마저 무죄 판결

24년 전 제주시 관덕정 인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검사 출신 고(故) 이승용(당시 44세, 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의 억울함은 끝내 풀지 못할까. 증거로 활용하기 위해 20년 넘게 보존된 이승용 변호사 의복까지 훼손된 상태라 장기미제가 아닌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26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3형사부는 김모(57)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에 따른 후속 판결이다. 이에 검찰이 재항고하지 않으면 판결은 확정된다. 

이승용 변호사는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쯤 제주시 삼도2동에 세워진 자신의 쏘나타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흉부를 관통한 자창 등 날카로운 흉기에 수차례 찔린 이승용 변호사 피살 현장에는 다량의 혈흔이 확인됐다. 누군가의 공격을 받은 이승용 변호사는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차량에 올라 운전대를 잡은 뒤 사망했다. 

검사 출신으로 고향 제주로 돌아온 이승용 변호사가 피습, 사망했다는 소식은 당시 제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해 당시 서울지검과 부산지검 근무 경력이 있는 소위 ‘엘리트’ 이승용 변호사 살해를 계획·사주한 배후의 인물이 누구냐는 궁금증으로, 그 배후는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2020년 6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용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해 미제로 남은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을 다뤘다.

방송에 출연한 김씨가 당시 사건의 내용을 설명했고, 경찰은 ‘수사경찰조차 모르는 내용을 김씨가 알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재수사 방침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공소시효는 2014년 11월에 만료됐지만, 2015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됐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에 있는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조항이 신설됐다. 

김씨는 2014년 봄 해외로 떠났다. 검·경은 김씨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둬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주장한 반면, 김씨는 평생 동안 30차례 넘게 해외를 방문해 형사처분을 면할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기소 이후 사건을 심리한 1~3심 재판부 모두 공소시효를 다투지 않았다.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을 떠나 김씨가 이미 다른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떠난 점이 인정돼 김씨가 받는 모든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살아있다는 판단이다. 

각종 수사 방법을 동원한 경찰과 검찰은 ‘최소한 김씨는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현장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씨와 함께 조직폭력조직 유탁파에서 활동한 ‘갈매기’ 손모(2014년 사망)씨가 실행범이고, 김씨가 손씨와 함께 범행을 계획·주도했다는 주장이다. 

2021년 8월21일 경찰은 김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송치했고, 같은 해 9월14일 검찰은 김씨를 공동공모정범에 따른 ‘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을 협박한 혐의도 받은 김씨는 다툼없이 유죄 확정 판결로 1년6월간 교도소에서 징역 생활을 했다. 

2021년 3월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김씨는 ‘리플리증후군’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한 발언은 제3자에게 들은 얘기를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사 때부터 김씨는 진술을 번복하고 또 번복했다.

혐의 입증을 위해 검찰은 부검의와 당시 수사 경찰, 김씨 주변인, 방송 제작진, 혈흔 분석가 등 다양한 증인을 불렀다. 증인들은 김씨가 특수 제작한 흉기를 소지했다고 주장했다. 일반 흉기보다 뾰족하게 제작된 흉기는 이승용 변호사 사체에서 확인된 상처와 비슷했다. 

그럼에도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가장 잔혹한 범죄인 ‘살인’의 경우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만큼의 압도적인 증명이 이뤄져야 하지만,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그러자 검찰은 항소심에서 피살사건 당시 모습 그대로 보관된 이승용 변호사의 의복을 훼손하겠다며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전까지 시료를 채취해 DNA 등을 감정해왔지만, 의복을 잘게 쪼개는 등의 방법으로 훼손해 DNA를 감정해 과학·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훼손된 의복에서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만한 DNA 등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는 갈매기와 범행을 공모할 당시 적어도 피해자(이승용 변호사)가 사망할 수 있다는 미필적인 인식 속에 갈매기의 범행을 용인했다”며 원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선고 바로 다음날인 2022년 8월18일 김씨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에서 또 결과가 뒤집혔다. 올해 1월 대법원은 1심 재판부와 비슷한 취지로 판단, 사건을 파기해 환송했다.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에 따라 오늘(2023년 7월26일)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김씨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2년 넘게 재판이 이어졌지만,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범행 동기와 배후 등은 확인된 것이 하나도 없다.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따라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김씨는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이 된다. 

검찰이 재항고해도 새로운 증거 없이 결과가 또 다시 뒤바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가장 중요한 증거로 꼽히는 이승용 변호사의 의복을 훼손할 정도로 김씨에게 매달렸던 검·경으로서는 이번 판결로 허탈한 상황이다.

반대로 세월이 지나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다시 이뤄지더라도 이번보다 많은 증거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서, 이승용 변호사의 억울한 죽음은 ‘장기미제’가 아닌 ‘영구미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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