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故 이 변호사 피살’ 피고인 김모씨 살인혐의 무죄...객관·과학적 증거 부족

1999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당시 제주지역 한 일간지 보도 내용.

22년간 장기미제사건이었던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결국 법정에서도 가려내지 못했다. 다른 장기미제 사건처럼 구체적 혐의를 입증할만한 객관·과학적 증거가 부족했던 것이 걸림돌이 됐다.  

17일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재판장 장찬수)는 김모(56)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방송 제작진을 협박한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법적 쟁점은 공소시효와 김씨가 실제 살인 범죄를 저질렀는지 등 2가지다. 

공소시효는 완성이 아니라 폐지로 판단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014년 11월5일 0시를 기해 완성됐다. 

다만, 2015년 7월 형소법 개정으로 살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고, 제253조 3항이 신설돼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해외에 갈 경우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관련 사건뿐만 아니라 피의자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피고인 김씨는 공소시효 완성 이전인 2014년 3월 출국해 장기간 해외에 체류한 바 있다. 경찰과 검찰은 김씨가 해외로 출국한 사이 공소시효가 정지됐고, 와중에 형소법이 개정되면서 김씨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씨는 형사처벌을 피하려고 출국한 적이 없기에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의 진술과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했을 때 김씨가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언제 완성되는지 인지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또 재판부는 관련 판례에 따라 해외에 출국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등이 없어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피하려 해외에 출국한 것으로 봤다.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피고인 김모씨(가운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윗선 사주 받은 김씨가 갈매기에 범행 지시...신빙성 가장 높아

수사 과정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김씨는 계속 진술의 번복하는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

김씨의 진술은 크게 4가지 유형이다. 

▲A = 자신(김씨)이 윗선의 사주를 받았고, 범행은 갈매기가 했다. 
▲B = 윗선의 사주를 받은 갈매기가 범행했고, 당시 자신은 갈매기를 말렸다. 
▲C = ‘리플리증후군(Ripley Syndrome)’을 앓고 있어 범행에 연루됐다는 자신의 진술은 모두 거짓말이다. 
▲D = 윗선의 사주를 받은 갈매기가 범행했고, 자신은 10여년이 지난 2011년 8월 갈매기에게 당시 내용을 들었을 뿐이다. 

A~C 유형은 김씨가 검·경 수사 과정에서 해왔던 진술이며, D 유형은 법정에 이르러 김씨가 새롭게 꺼낸 주장이다.

김씨와 함께 범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갈매기는 2014년 공소시효 완성을 앞둬 생사를 달리했으며, 김씨는 갈매기와 ‘친구’ 사이였다고 밝혀 왔다.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수사를 받기 전 육지부에 거주하던 김씨는 갈매기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주변인들에게 ‘친구가 살인 범죄 공소시효를 앞둬 죽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또 김씨는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이 몰랐던 내용조차 알고 있었다.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이 발생하자 도민 사회에서는 범행 동기에 대해 제주도지사 선거와 관련된 양심선언에 따른 정치권 개입설과, 그가 법정관리인이었던 모 호텔 지분 다툼설 등 다양한 소문이 나돌았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는 사건 배후와 동기 등에 대해서 함구해 왔다. 법정에 이르러 친구 갈매기에 들은 얘기라고 전제한 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조폭 선배 고모씨가 배후라고 언급했지만, 검찰과 경찰 모두 거짓말로 보고 있다. 고씨는 고인이며,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당시 적극적으로 조폭 생활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진술과 증언을 토대로 검찰은 김씨의 발언 중 A유형의 진술의 신빙성이 가장 높으며, B~D 유형의 진술은 김씨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A유형 진술에 신빙성이 가장 높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살인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 직후 취재진 앞에 선 당시 이승용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고경송씨가 검찰의 항소를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재판부도 의심의 눈초리..."압도적 증명 필요해"

검찰은 성명불상자로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손 봐줘라’는 지시를 받은 김씨가 갈매기와 처음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최소한 이승용 변호사가 습격으로 숨질 수 있다고 인지한 김씨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라도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숨진 이승용 변호사의 상처와 당시 혈흔 등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승용 변호사가 괴한에게 격렬히 저항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김씨와 갈매기가 애초부터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할 의도를 가졌다면 뒤에서 몰래 접근해 공격하는 방법 등을 우선했어야 한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다. 

단순히 위협하는 과정에서 이승용 변호사가 거세게 저항하면서 살인까지 이르게 됐다면 김씨가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할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날 선고 공판에서 장찬수 부장판사는 “살인 범죄에 대한 고의와 공동정범은 엄격하게 증명돼야 한다. 증거 등을 봐도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 피고인이 처음부터 살해를 계획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의심은 있지만, 살인 범행의 고의를 인정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아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 범죄 의심이 있는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보다 억울한 형사처벌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우선된다는 취지였다. 

다만, 장 부장판사는 피고인을 향해 “법률적인 판단에 따른 무죄일 뿐이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을 강한 의심에도 증명할 증거가 없어 법률적으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결국 40대 변호사가 이른 새벽 제주시 원도심 어두운 골목길에서 처참하게 피살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법정에서도 가려내지 못했다.  

이날 방청석에 앉아있던 사건 당시 이승용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고경송(57)씨는 무죄 판결에 충격을 받아 눈물을 훔치며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고씨는 이승용 변호사 관련 재판 일정에 모두 참석해 왔다. 

취재진 앞에 선 고씨는 “피고인은 악을 저질렀고, 그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함에도 법률적인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통한스러운 일이다”라며 “검찰이 항소해 (김씨의)유죄를 입증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20여년전 제주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엘리트 검사 출신의 변호사 피살사건에 대해 수사한 검·경은 물론 재판부도 김씨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장기미제 사건처럼 부족한 객관·과학적 증거가 사건의 배후 등 실체 증명에 발목을 잡았다. 

검찰은 즉각 항소를 예고했다. 

무죄 선고 직후 검찰은 “피고인(김씨)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등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항소심에서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겠다.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 항소를 예고했다. 

1심 재판부가 김씨에 대한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검사 출신의 40대 젊은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배경으로 회자돼 온 제주도지사 부정선거 양심선언 관련설과 모 호텔 지분 다툼설 등 범행 동기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묻힐 위기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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