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4.3 무죄판결 받은 강상휴·이근숙 씨 아들 강철훈 씨 부모님 묘역서‘ 말 없는 눈물’
행방불명 희생되자 헛묘 조성...23일 부모님 묘 앞에 무죄판결문 올리고 명예 회복 소식 전해

강철훈씨가 부모님 묘에 직권재심, 특별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죄 판결문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철훈씨가 부모님 묘에 직권재심, 특별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죄 판결문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예회복이 다른 분들에 비해 빨리 이뤄졌습니다. 큰 빚을 졌습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일 오전 10시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애월읍 상귀리 한 감귤밭. 감귤나무에 가려진 깊숙한 곳에 산담이 둘러져 있고 그 가운데 세워진 비석이 보였다. 

1976년 세워진 이 비석은 70여년 전 4.3 광풍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고(故) 강상휴(1931년 12월19일생)·이근숙(1930년 7월18일생) 부부의 영혼이 깃든 헛묘다. 말 그대로 시신 없이 비석만이 주검을 대신하고 있는 헛묘다.  

아들 강철훈(62)씨는 최근 법원과 검찰의 4.3 직권재심으로 부모님의 명예가 회복된 판결문을 손에 꼭 쥐고 이날 아침 헛묘를 찾았다. [제주의소리]도 이날 강씨의 부모님 묘소 참배에 동행 취재했다.  

강씨는 이날 부모님 묘에 도착하자 감귤밭 한쪽에서 나무를 태워 그 숯을 모아 비석 앞에 정성스레 향을 사뤘다. 이어 강씨는 헛묘에 술잔과 함께 2개의 무죄 판결문도 올렸다.

판결문에는 강상휴와 이근숙은 ‘무죄’라는 내용이 또박또박 명시돼 있었다. 아버지 강상휴는 올해 특별재심으로, 어머니 이근숙은 올해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제주4.3 피해자들이다. 

강씨의 아버지 강상휴는 4.3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법령 제19호 위반, 내란방조 혐의, 왕래방해 혐의 등으로 일반 재판을 받아 1949년 11월3일 징역 단기 1년, 장기 2년형에 처해졌다. 

이후 경북 김천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된 강상휴는 2005년 3월17일 4.3특별법상 희생자로 결정됐다. 

강철훈씨가 제주4.3 광풍에 휩쓸려 행방불명된 부모님 헛묘의 비석 앞에 직권재심 무죄판결문을 올리고 절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철훈씨가 제주4.3 광풍에 휩쓸려 행방불명된 부모님 헛묘의 비석 앞에 직권재심 무죄판결문을 올리고 절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어머니 이근숙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된 4.3피해자다. 어머니 이근숙 역시 군사재판을 받아 전주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마포형무소로 옮긴 뒤 행방불명됐다. 

최근 직권재심 재판부는 강상휴와 이근숙 모두 4.3 당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 없고, 이들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조차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각각 18세, 19세의 나이로 4.3 광풍에 휩쓸린 강상휴와 이근숙은 애월읍 중산간 같은 마을에서 살던 이웃이었다. 1948년 10월쯤 토벌대가 평화롭던 마을을 찾아 불을 질렀다. 흩어진 주민들은 수년이 지나 다시 고향에 모여 지금의 마을을 다시 재건했다. 

4.3 광풍에 휩쓸린 강상휴의 어머니(강씨의 할머니)는 키우던 소와 말을 팔아 형무소에 돈을 넣었지만,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씨의 할머니는 20여년이 지나도 아들의 생사를 알길 없자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해 행방불명된 아들의 조카뻘인 강씨를 자신의 손자로 맞았다. 강철훈 씨가 강상휴의 양자가 된 사연이다. 

이어 행방불명된 강상휴와 같은 처지인 4.3피해자 이근숙과 혼인신고하고, 영혼 결혼식을 가졌다. 그렇게 강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상휴와 이근숙의 아들이 됐다. 

1976년 강씨의 할머니는 어린 시절 아들 강상휴와 동네 아이 이근숙이 뛰어놀던 애월읍 상귀리에 헛묘도 마련했다. 이날 강씨가 ‘무죄’ 판결문으로 명예 회복 소식을 알리면서 제를 올린 장소다. 

강철훈씨가 제를 올리면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아들 강철훈씨가 23일 부모님 헛묘에 제를 올리면서 최근 4.3직권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게된 과정에 대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씨가 혈연으로 맺어진 살붙이 아들이 아니라고 부모님에 대한 안쓰러움과 효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양자로 호적에 올라 부모 자식의 연을 맺게 되었어도 친혈육 못지않은 효심으로 부모님의 헛묘를 가꾸어 왔다. 

이날 강씨는 부모님 헛묘에 판결문을 올려놓고 준비해온 제물과 함께 제를 봉행하면서 그 동안 양자이면서도 폭도의 자식으로 살아야 했던 그 무거운 소회를 헛묘 앞에 털어놨다. 

“어린 시절 폭도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희생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에 따른 특별재심과 직권재심으로 강상휴와 이근숙의 명예가 회복됐다. 폭도의 자식이라는 모진 세월을 견딘 강씨의 명예도 회복된 셈이다. 

강상휴는 올해 6월21일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 심리로 진행된 특별재심 사건을 통해, 이근숙은 올해 3월29일 제주지법 형사4-2부 심리로 진행된 1차 직권재심 사건을 통해 각각 명예를 회복했다.  

재심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강상휴가 포함된 특별재심은 검찰의 ‘항고’ 논란이 일었던 특별재심이다. 

당시 검찰은 절차적 적정성 등을 이유로 내세워 항고했다. 광주고등법원은 올해 5월 검찰의 항고를 기각했고, 1심으로 돌아온 특별재심 사건에 대해 제주지법 형사 4-1부는 청구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효심 깊은 아들 강철훈 씨가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억울하게 옥살이한 응어리를 풀어내십시오.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딘가에 살아계시다면 마음 편히 지내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승을 하직해 멀리 떠나셨다면 구름과 바람을 따라 태어나고 뛰어놀았던 고향으로 돌아와 내내 영면하십시오” 

비록 시신없이 비석만 세워진 헛묘이나 그곳에 깃든 아버지 강상휴와 어머니 이근숙 부부의 평안해진 영혼이 말없는 초가을 바람을 타고 아들이 두손 모아 올린 술잔에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강철훈씨가 무죄 판결문과 함께 술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철훈씨가 무죄 판결문과 함께 술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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