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여순순례를 떠났다. 첫 방문지는 벙커였다. 일제가 만든 벙커다. 벙커는 국군 14연대가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펄럭이고 있다. 하이얀 만장이 한 줄기스산한 구름 가득한 하늘을 휘져으며 울리고 있다.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이 땅은 불이 뿜어낸 생명의 땅이다. 허나 불이 뿜어낸 땅은 척박한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홍초(칸나)꽃이 피어 있다. 두껍게 겹쳐진 구름이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타고 흘러간다.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가 지났고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생경한 만남이었다. 제주도 북서쪽 해안에는 오래된 선인장 군락이 있다. 천년초(자단선선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 의도는 없다. 애써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다. 목적, 취지 같은 것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노인의 방 한쪽에 꽃무늬 천으로 만든 오래된 옷장이 있다. 그리고 옷장을 장식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대만의 조그마한 섬 ‘진먼(金門島, 금문도)’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우리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멈춰 선 시간이다. 찬바람이 불던 겨울은 한참 전에 지나갔다. 햇살은 뜨겁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여름 태풍이 토해 놓은 파도다. 밀려오는 파도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흩날리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몇 해 전 가 닿았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검은 돌이 숨었다. 숨은 돌은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 있다. 숨은 돌은 부드러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한라산 자락 오름에 봉화를 올리고 뜨거운 함성을 외쳤다.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부재의 존재“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뜻밖의 자리에서 마주할 때엔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게 연결되지 않은 장소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공간, 어쩌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 그런데 그게 그것들이 원하는 장소이거나 위치는 아니었을 거란 거지. 그래도 어찌 되었든 존재해왔던 것이고 존재하고 있고 존재해가는 것이어서 의미는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그런데 가끔은 그곳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은 존재도 있거든. 그곳에 있지만 전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는 거지.”얼마 전에 끝난 화제
보는 나무, 기억을 담은 산 아니시나베 세계관에서는 나무를 사람으로 친다. 나무는 ‘서 있는 사람들’이다.(「향모를 땋으며」 로빈 윌 키머러) 우리에게 오래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신목이었다. 나무는 서 있는 사람들이고, 서있는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무를 신목이라 불렀을 것이다.오랜 세월을 버티며 서 있었던 나무는 흘러간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나무가 보았던 모든 것들은 기억이 뉴런들과 시냅스들에 인코딩되어 저장되는 것처럼 숲속 깊은 곳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뿌리
동시대 스냅 예정된 시간에 맞춰 활주로로 향하던 비행기는 이륙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멈춰서 있었다. 특별한 안내방송도 없었다. 옆으로 다른 비행기 한 대가 더 들어왔다. 시선을 하늘로 옮기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난비하고 있는 전투기 대여섯 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태평양 상공 또는 그 어딘가에 긴급을 요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난비하던 전투기는 한 대씩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 왜 전투기가 이곳에? 비상상황인가?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내가 앉
오월단상#1. 도로는 무등산 숲길을 돌아 금남로로 이어진다. 봄의 정점으로 접어든 오월의 무등산 숲길에는 한량없는 햇볕이 드리워져있다. 갓 피어난 생명이 빚어낸 오월의 숲은 아름답다. 금남로의 끝 또는 시작 지점에 위치한 분수광장은 어수선하게 분주하다. 내일은 5월 18일이다.#2. 5년 전, 망월동5.18묘역을 찾았다. 5.18 기념식이 끝난 후였다. 햇살은 찬란했다. 기념식은 숙소에서 방송으로 봤다. 국가행사를 방송으로 보면서 눈물을 흘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전날의 숙취가 남아있었다. 느리게 흐르는 구름처럼 묘역을 둘러보았다. 누
태 ᄉᆞᆫ 땅으로 가는 포털곶자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사리다. 이른 아침 작정하고 나선 산책길에서 만났다.이 시기의 아침은 부드럽다. 막 떠오른 해가 뿌려낸 빛은 옅은 안개 사이로 은은하게 떨어진다. 이 시기는 새로 돋아나 펼쳐진 연둣빛 순이 점점 짙어지는 시점이다. 검은 돌과 검은 흙 위에 펼쳐져 있어 그런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연둣빛 고사리였다.카메라에 담아온 고사리를 사진 편집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찬찬히 들여다보며 현상을 진행한다. 이른 아침의 빛이어서 그런지 차분하다. 노출을 좀 더 줄여 배경을 어둡게 만들었다. 밝은
바다안개올해 처음 보는 바다안개다. 한낮 태양의 열기는 벌써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뜨겁더니 겨우내 차갑게 내려앉았던 바다를 덥히고 있었던 모양이다. 4월의 늦은 오후, 바닷바람을 타고 올라온 안개는 차갑다. 차가운 안개는 모든 사물을 흐릿하게 가려버린다. 흐릿한 안개 덕분에 맨눈으로는 바라보기 힘든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됐다. 뜨거웠던 한낮의 햇빛이 안개에 가려질 즘 바다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주변의 소음도 줄어든다. 점점점. 파랑의 흔적만이 귓가에 고요히 와닿을 즘 어디에선가 깊은숨을 내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