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꽃과 함께] 양하 추석이 다가오면 으레 ‘양하가 열렸겠구나.’ 하면서도 쉽게 들춰보진 않는다. 당연히 수확시기도 놓치고 만다. 녀석이 줄기는 무성하여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6개월, 제대를 눈앞에 둔 막내가 추석 이튿날 휴가 나왔다. 녀석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답지 않게 양하를 좋아했다. 톡 쏘는 향이 좋다나 어쩐다나. 녀석을 위해 겉절이라도 해볼까, 양하 앞에 섰다. 잎을 젖혔
[고봉선의 꽃과 함께] 고구마꽃 행운은 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굴러오는가, 아침 운동 나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고구마 꽃을 만났다. 몇 년 만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두어 번 보고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설레던지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인가와 가까이 있어 텃밭처럼 이 작물 저 작물을 심어 놓
가까운 산에라도 오를까? 단지 휴대전화 하나만을 들고 집을 나섰다. 종종 지나치는 마을 안길, 어느 집 담벼락에 희끄무레하니 대롱대롱 매달린 그 무엇인가가 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먼지가 저렇게 앉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쓰레기도 아닌 것 같다. 무엇일까? 호기심을 잔뜩 안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마치도 자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까
“어머니! 나 고사리 오늘은 한 줌 꺾어 완.”/와당탕 소란을 떨며 안채의 문을 열었는데 조용하다. 아마도 노인당에 가셨나 보다./고사리 한 줌씩이나 꺾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나는 풀죽은 모습으로 문을 닫았다.//며칠 전 산에 갔다가 우연히 막 돋아나는 고사리를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꺾었다./딱 다섯 개였다./집에 와선 아무렇게나 마루에 픽
할 일은 많지만. 딱히 손에 잡히지 않고 어수선한 기분이 나를 휩싸고 도는 날이다. 정확히 12시 50분에 달랑 휴대전화 하나만을 들고 집을 나섰다.자주괴불주머니가 지천으로 깔렸고 참꽃마리, 쇠별꽃, 주름잎, 냉이꽃, 광대나물, 살갈퀴 등이 노랗게 핀 유채꽃에 뒤질쏘냐 아우성치고 있는 들녘이다. 가까이에 산이 있다는 건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냇가를 따라
고드름이란 낙숫물 따위가 밑으로 흐르다가 얼어붙어 공중에 길게 매달려 있는 얼음을 말한다. 중력의 영향을 받아 물이 흘러 떨어지는 가운데 주위의 온도가 약 0℃ 이하이면 물이 얼기 시작하는데, 흐르는 물의 운동 에너지(kinetic energy)에 의해 바로 얼지 못하고 흘러 떨어지면서 얼기 때문에 보통 기다랗고 뾰족한 원뿔형을 가진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독도. 면적은 0.186㎢이며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있다. 옛날부터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 부르게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19번에 걸쳐 제주도 한 바퀴 도보여행을 마치는 동안 그럴싸하게 맑은 하늘은 도통 보지 못했건만 역시 가을은 가을인 걸까? 비췻빛 하늘은 높고 높은 데다 따사로운 날씨다. 우리 귀일중학교 24회 동창들은 언제부터인가 매월 첫째 주 일요일이면 오름 등반에 나선다. 선두지휘를 맡은 영준이는 시행착오가 발생하지 않게끔 답사며 준비를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새라 아 끝없는 새하얀 사슬소리여 간밤엔 안치환의 '새'만 들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던 것 같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여행을 나서는 기분은 홀가분하다. 표선에 다다를 즘, 키가 큰 구실잣밤나무에 만발한 꽃이 암내를 풍
5월의 첫째 주인 휴일은 잔뜩 흐린 날씨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느 때와 똑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무수천에서 내리고 서귀포에서 넘어오는 버스에 곧장 몸을 실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남조로행 버스 시간은 20여 분이 남았다. 지금까지도 채 가시지 않은 감기 기운을 의식하며 생강차 한 잔을 자판기에서 뽑았다. 혼자 나서는 길이기에 늘 쓸쓸하면서도
까먹는 것도 돈이 든다면 어지간히 낭비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타게 되는 버스 시간표는 늘 까먹는다. 정류장에 나가보니 동네 삼춘이 여덟 시 30분부터 기다렸는데 버스가 안 온다며 구시렁거렸다. 난 십여 분만 기다리면 되지만, 삼춘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며 지루했을 거로 생각하니 측은도 하였다. 잔뜩 흐린 날씨, 간이 의자에 발 올려놓고 운동화 끈을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오로지 바다가 전부인 양 살아가는 갯메꽃. 물 한 모금조차도 저장할 곳 없는 모래밭에서 어쩌다 바위틈이라도 만나면 다행인 듯 손을 뻗쳐 기어오른다. 해변을 거니는 이 발길에 밟혀도 아프다 한마디 못하고 성난 파도가 밀물에 실려와 광기를 부려도 외마디 비명 지를 줄도 모른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땡볕에서도 견뎌야 하는 삶은 고달프기도
한 달여 가까이 몸살기가 있더니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고 기침에다 가래, 눈물이 찔끔찔끔 정신이 없는 며칠이었다. 그래도 살려면 일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출근하여 일하는데 정신 팔리다 보면 시간은 흘렀다. 일요일에 집을 나서는 것도 업무가 되어버렸나 보다. 담벼락에 곱게 핀 금낭화에게 다녀오마 인사하고 집을 나선
4월의 첫 휴일, 식목일이자 한식이다. 황사의 영향일까, 하늘은 흐려 있어도 제트기 한 대 지나간 길이 선명하니 화창한 날씨다. 언젠가 나의 여행에 동참해주었던 친구가 같이 나서지 못한 친구들이 안 돼 보인다고 했듯이 이번 도보여행도 난 충분히 행복했다. 간밤에 충분히 충전시켜 둔 카메라를 점검할 겸 켜 보았다니 다시 스틱 에러가 발생했다. 이미 경험이 있
어느 날부터인가 앞마당 귀퉁이에 자리 잡더니 해마다 꽃을 피웠다. 그런 녀석을 나는 애지중지 키우는 데 반해 어머니께서는 뽑히지 않는 뿌리를 뜯어서라도 녀석을 처단하고자 애쓰셨다. 요즘은 그야말로 제비꽃의 계절이다.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됐는 보라제비꽃 외에도 여러 가지의 제비꽃들이 적잖다. 지난 토요일 남편과 산에 갔다가 만난 이는 잔털제비꽃이다. 잔털제비
시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만들어낸 그 이름 산자고(山慈姑) 산자고를 보러 가자고 타령한 지가 1년은 되잖았나 싶다. 산자고 있는 곳을 우연히 발견했단다. 토요일 오후, 그곳을 향하여 달렸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뒤졌지만 영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무덤에서 봤다는데 저기 보이는 무덤에 가 볼까?" 후다닥 도랑을 건
한 주는 모처럼 휴가 나왔던 녀석을 챙겨서 보내노라, 또 한 주는 조카 결혼식이 있어 도보여행을 나서지 못했다. 연속 2주를 거르고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일요일을 기다리는 어느 날, 전날 번개팅에서 과음을 했던 관계로 이튿날 퇴근시간이 되면서 몇몇이 해장을 위한 벼락치기 각재기국 번개팅이 이뤄진 자리다. 멜튀김과 돔베고기를 시켜놓고 다시 막걸리 한 사발 들
아홉 시 30분, 이웃마을에 사는 경훈이가 선옥이와 함께 데리러 왔다. 제주시 쪽에서 넘어온 일행들과 양잠단지 입구에서 합류하고 아줌마의 수다 못지않게 화창한 날씨 따라 달리는 길, 합류지점에 세워 둔 자동차 문을 잠그고 왔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영준이가 차를 세워보라고 했다. 7인승의 맨 뒷자리에 앉았던 그가 자동차 키를 나에게 건넨다. 무얼 하라는 거
도보여행 여덟 번째의 날, 강정천에서 천지연까지 다다르고선 나의 도보여행에 동행하여 준 중학교 동창 몇몇과 국밥을 먹으려고 매일 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주에 이미 들렀었지만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다시 만나리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파리라고는 하나 없이 나무에 가득한 봉오리가 팽팽하니 부풀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지난주와 달리 만개한
3월의 첫째 주 일요일, 화창한 날씨가 나를 앞장선다. 중문에서 강정으로 들어가려면 공휴가 적용되지 않는 시간표라 하더라도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데 5분도 채 안 되어 버스가 왔다. 마치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가용을 가진 것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마중나온 버스가 고마웠다. 월평의 마지막 버스정류소에서 내리고 강정마을 입구에 다다라 해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