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던 시절의 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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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선의 꽃과 함께] 고구마꽃

  행운은 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굴러오는가, 아침 운동 나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고구마 꽃을 만났다. 몇 년 만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두어 번 보고는 다시 볼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찌나 설레던지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인가와 가까이 있어 텃밭처럼 이 작물 저 작물을 심어 놓은 곳이었다. 따라서 고구마도 고작 한 평이나 두 평 정도였다. 아마도 간식으로 먹고자 심어놓은 듯싶었다. 하지만 꽃은 꽤 많이 피었다. 봉오리도 제법 있었다. 보기 힘든 만큼 행운이 있다고 여기는 꽃이다.

▲ ⓒ고봉선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원산지는 남미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 북부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대륙 발견 당시에는 원주민들이 널리 재배하였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 에스파냐에 전해졌다. 그 뒤 필리핀, 중국에 전해지며 아시아 각국에 퍼졌는데, 우리나라에는 중국과 일본을 거쳐 ‘고귀마’란 이름과 함께 전해졌다.

 

▲ ⓒ고봉선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783년(영조 39년)이다. 이 무렵엔 노론의 횡포가 무척 심했는데,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도 이때 유래되었다. 당시 노론들의 집엔 밤이 되면 슬금슬금 뒷돈을 찔러주고 출세해 보려는 이들의 그림자가 그치지 않았다. 힘없는 소론이나 백성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소나무 껍질을 벗겨 삶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똥을 싸는 게 힘이 들어서 항문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다. 이렇듯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말이다.

  항문이 찢어진다는 것은 변비라는 것이다. 그 변비의 주범은 당시 가장 많이 활용하던 구황식물 소나무 속껍질이다. 봄이 되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산으로 가서 소나무 껍질을 벗기는 바람에 마을 가까운 야산은 거의 벌거숭이가 된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을 보면, 이때 노론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오를 즈음, 청진기를 나무 밑동에 대면 진짜로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때가 소나무 속껍질에는 어느 때보다  수분이 많아 부드러운데, 사람들은 주로 이때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었다. 그러면서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는데, 이는 나라에서도 막을 수 없었다.

  소나무 껍질을 먹을 때는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채소나 과일과 달리 소나무 껍질은, 물이 많을 때는 부드럽지만 수분이 줄어들면 딱딱하게 굳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나무껍질을 오래 끓여 죽으로 만들더라도 모두 소화할 수가 없다. 나머지는 변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장을 거치면서 수분을 빼앗긴 소나무 껍질은 굳어지며 변비가 되고, 항문이 찢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 ⓒ고봉선

  부정부패로 노론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지만, 청렴결백한 노론도 있었다. 청렴결백한 노론의 자손 조엄은 동래부사, 충청도 암행어사,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대사헌 등을 지낸 조선의 문신이다. 그는 민생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조선의 굶주린 백성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였다.

  조선이 흉년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영조 39년(1763년) 10월 초, 조엄은 조선통신사를 이끌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보았다. 조엄은 고구마가 조선의 굶주림을 구제할 작물임에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부산 영도를 통해 재배법과 함께 고구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대표적인 구황식물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고구마는 한자로 ‘감저(甘藷)’라고 불리며 당시 일본에서는 ‘효자마(孝子麻)’로 불렸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때 효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고구마의 어원 역시 효자마의 일본어 발음인 ‘고귀마’를 한자로 쓴 것에서 유래한다.

▲ ⓒ고봉선

  사실 고구마는 열대 아열대에서는 꽃이 잘 피는 식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산지가 남미인 까닭에 일조량이 많고 기온이 높기 때문이다. 고구마는 뿌리가 다 커야 꽃이 피는 식물로,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은 무조건 뿌리로 보내 저장한다. 그러다보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꽃이 필 수 있는 양분을 만들기 전에 가을이 오고 만다. 그래서 온대인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고봉선

   이처럼 어렵사리 피어나는 꽃이다 보니 행운을 가져다주는 꽃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미 수확을 앞둔 시기에 핀 고구마. 자식 뒷바라지 마치고 누리는 삶의 여유에서 피어난 꽃이라고나 할까. 어릴 적, 고구마를 재배하던 농가의 자식으로 일하던 때가 새삼 떠올랐다. 그때는 왜 그리도 밭에 가서 하는 일이 싫던지.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밭을 가는 쟁기 따라 고구마를 줍노라면 손엔 끈적거리는 고름이 흙과 함께 버무려져 새까맣게 되었다. 그뿐인가, 빼때기를 널어 말리다가 밤중에 소나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후다닥 뛰쳐나가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시절 살아가고자 바동대던 부모님의 몸짓이었다. 일하기 싫어 뭉그적댈 때마다 소리 지르시던 아버지도 가고 안 계신 지금, 그립다. 많이 죄송하다. 조금이라도 열심히 움직여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릴 걸…….

▲ ⓒ고봉선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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