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적절히 활용해야 진정한 문화유산”

제주의소리 독자와 함께하는 [독자의소리]입니다.

제주시 화북동에는 1914년에 고유한 제주 방식으로 지어진 기와집과 초가가 있습니다. 1978년 ‘김석윤 가옥’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민속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입니다. 

안거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 모커리(별채), 먼문간과 이문간(대문이 달린 채) 등으로 구성됐으며, 이 가운데 안거리와 이문간은 ‘와가’, 밖거리와 모커리는 ‘초가’입니다. 

그런데 이중 초가지붕이 ‘아스팔트 슁글(asphalt shingles)’로 돼 있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석유 찌꺼기를 원료로 사용한 지붕재로 덮인 집이 제주 민속문화유산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석윤 가옥’ 소유주인 김석윤 선생은 “아스팔트 슁글 지붕인 초가가 제주도의 민속문화유산이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초가의 경우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주시 화북동 김석윤 가옥 전경. 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기와집과198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지붕을 개량한 초가가 남아있는 곳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화북동 김석윤 가옥 전경. 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기와집과198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지붕을 개량한 초가가 남아있는 곳이다. ⓒ제주의소리

사연은 이렇습니다. 김 선생은 현재 화북동 김석윤 가옥에서 살지 않고 이도동으로 옮겨와 살고 있습니다. 현재 화북동 가옥에서 지내기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 선생은 기와집 대신 초가지붕을 수리해 활용하고자 했지만, 초가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에 수리가 어렵게 된 형편입니다. 집주인이지만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초가나 기와지붕을 슬레이트 또는 아스팔트 슁글 소재로 교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공이 간편하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죠.

그러나 그만큼 수명이 짧아 교체를 자주 해줘야 하고 강풍이나 곰팡이, 누수, 단열성 부족 등 단점도 뚜렷합니다. 김석윤 선생이 초가지붕을 수리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제주지역 건축문화 발전에 힘을 보태온 김 선생은 “미국에서 개발한 아스팔트 슁글을 가지고 초가지붕을 바꿨다. 그때 당시만 해도 기와집은 민속문화유산이었지만, 초가는 아니었다”며 “비가 새고 집이 썩어가니 고치려고 허가를 신청했는데 손을 못 대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선생은 제주도가 주장하는 2008년 ‘제주특별자치도 지정 문화재(지정·보호)구역’ 고시와 2015년 제주시가 작성한 ‘초가·와가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보고서’ 차이를 지적했습니다. 

현재 제주도가 초가의 민속문화유산 지정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2008년 고시입니다. ‘제주의 와가 김석윤 가옥’으로 와가와 초가를 포함한 273㎡를 지정구역으로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5년 제주시가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김석윤 와가의 특기사항으로 ‘안거리와 이문거리만이 지정문화재며, 밖거리와 모커리는 미지정 상태’라고 밝힙니다. 김 선생은 이를 들어 초가의 경우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없으며,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김 선생은 “아스팔트 슁글 집이 제주도의 민속문화유산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법적으로 문화유산으로 인정됐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라며 “문화유산이라 하더라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생겼는데 제주도 역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스팔트 슁글 지붕으로 개량된 초가. ⓒ제주의소리
아스팔트 슁글 지붕으로 개량된 초가. ⓒ제주의소리
사진=제주시 2015 초가·와가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보고서.
사진=제주시 2015 초가·와가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보고서.

관련해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아스팔트 슁글이라는 재료 자체만 보면 문화유산으로 보긴 어렵다”라면서도 “고시에 따라 법적으로 문화유산이라는 제주도와 소유주의 생각 차이에서 나오는 문제로 보인다”고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어 “문화유산 소유자의 입장도 존중할 필요는 있다. 더 나은 재료로 수리하겠다는 것을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않나”라며 “문화유산도 결국은 사용해야 한다. 요즘은 원형을 보존하자는 기존 주장과 달리 활용하자는 방향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유지 관리에 대한 정책이나 이런 게 좀 경직돼 있다. 지붕 재료를 바꾸고 원형을 바꾸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리해 소유주가 쓸 수 있게끔 하는 것도 대안이 되겠다”며 “너무 경직되면 이후 민속문화유산 신청도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문화유산 지정 당시인 1978년에는 와가만 지정됐었다. 하지만 이후 2008년에 토지 전체를 보호구역으로 두고 건물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며 “이력도 분명하고 주변 현황이나 가옥의 구조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지붕 재료만 두고 보면 가치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초가 내부 공간 구조의 가치가 크다. 김석윤 가옥의 초가는 육지의 문화를 적용한 독특한 형식”이라며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도 시도했고 본 예산도 투입하려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중단된 상태”라고 답변했습니다.

또 “최근 민속문화유산에 대해 겉모양만 잘 유지한다면 현대식으로 고칠 수 있게 허가하는 추세”라며 “이에 도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예산도 확보했지만 멈춰있다. 김석윤 선생과 여러 차례 만나 대화했지만, 진행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석윤 가옥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 중이다. 지금 상태로 가만히 둘 수는 없다는 건 의견이 일치한다”며 “계속해서 김석윤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사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면서도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제주시 2015 초가·와가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보고서.
사진=제주시 2015 초가·와가 종합정비 기본계획 수립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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