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설 무렵 저 멀리서 바이러스 얘기가 들려올 때만 해도 나랑 상관없이 지나가는 남의 일이거니 했다. 그 후로 한 달 보름여가 지났다. 새 봄이 온 길가에 형형색색 예쁜 봄꽃들이 피어났지만 모두가 낯설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의 일, 우리 일이 되면서 익숙한 일상의 모습이 사라지고, 우려 걱정 불안 등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날마다 쏟아지는 소식들이 전하고 있다. 뉴스에서나 볼
지난 늦가을 어느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섰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 제주여고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한라산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길을 걸었다. 왼쪽으로는 제주해양경찰청 담벼락 아래로 노란 털머위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오른쪽으로는 듬직하게 구실잣밤나무가 서있는 길. 짧은 길이지만 너무 아름다워 특히 사랑하는 길이다. 그날도 대충 일할거리를 챙겨 가방에 쑤셔놓고 동네 커피숍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다가 길 한쪽에 털썩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뭐햄수가, 잣밤 주웜수가"(뭐 하십니까, 잣밤 주우십니까)"나, 그자 심심행 나완"(나는
저녁 뭐 먹고 싶어? 돼지고기 구워줄까? 싫어. 그럼 청국장 먹을래? 그것도 싫어. 그럼 뭘 먹겠다고? 매일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네. 미리 말을 해줘야 내가 준비를 하지.아, 몰라. 지금은 생각 안나. 근데 엄마 알라딘 주제곡 듣자. 아, 알아 알아. 내가 요즘 이 노래만 듣는 거. 안다고 . 영화도 세 번 본거. 근데 좋잖아. 노래 너무 좋잖아.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몰라. 그냥 들으면 편안해.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다니는 학교는 우리 집에서 걸어 다닐 만한 거리이지만 올해는
눈부신 가을 햇살이 도처에 널려있다. 씽씽 차들이 달리는 도로위에도, 작은 골목길 입구 낮은 돌담 아래에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오솔길에도 햇살은 있다. 공평과 공정에 대한 말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 똑같이 따뜻하게 똑같이 아름답게 세상을 비춰주는 가을 햇살.할 수만 있다면 잘 마른 햇볕을 모아 자루에 넣었다가 추운 겨울날에 한 줌씩 꺼내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지금 가을 길을 걷기로 한다. 걷다 보니 오만가지 생각들이 일어난다. 좋은 것을 아껴 모았다가 필요할 때 쓰는 것도 좋지만 때론 절정의 순간에 그냥 그 절정을 즐겨
그런 시절도 있었다. 내가 십대 이십대였던 시절. 지금으로부터 삼사십여 년 전이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쯤 되려나. 아무튼 그 시절 내가 버스를 타는 기준은 최소 용담로터리에서 중앙로터리 정도는 지나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용담로터리가 아니라 제주차부라 불렀던 정류장에서 중앙로까지는 금세 걸어갈 수 있는 거리. 그 거리 정도는 지나야 버스요금이 아깝지 않았다.요즘은 버스가 몸통에 크게 노선 번호를 새기고 다니지만 그때는 출발지와 종착지를 보고 버스를 탔다. 중앙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하귀 동쪽은 삼양 한라산
추석 명절을 앞두고 친구들과 나눈 대화.“우린 이번 추석에 가족여행 가기로 했어. 벌초할 때 조상님들에게 미리 절하면서 양해를 구했지. 사실 명절은 가족 화합을 위한 자리 아니. 그런데 옛날보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진 않잖아. 군대 간 큰 아들은 빠지고 육지서 학교 다니는 둘째와 제주에 있는 가족들이 서울서 만나 추석연휴 같이 보낼 계획이야.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 번 해보려해.”“난 남편과 의논해서 이번에는 꽃과 과일만으로 차례 상을 준비해볼까 고민 중. 명절 음식 열심히 준비해봐야 사람들이 많이 먹지도 않잖아. 그래
냉장고 안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넣다보니 칸칸이 그릇들로 가득 찬 모습이 부담스러워서다. 사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반찬 하나를 꺼내고 집어넣을 때마다 공간 확보를 위해 요리저리 그릇 옮기기가 번거로워서이다. 날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그릇 퍼즐 맞추기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정리에 앞서 굳게 결심했다. 이번에는 확실히 버릴 것은 버리자. 냉장실 안쪽 깊숙이 있던 두릅장아찌를 꺼냈다. 산에서 나는 온갖 먹을 것을 즐겨 캐던 선배가 어느 날 툭 던져두고 간 두릅. 비닐 한가득 채운 두릅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온
두 달여 전부터 일을 마치면 별도봉과 사라봉을 걷고 있다. 별도봉을 내려와 사라봉을 오를 때면 양 옆으로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어둠이 내려온다.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는 그림자에 기척 없이 한 점 한 점 어둠이 입혀지면서 한낮의 땡볕을 견딘 바람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숨차고 땀으로 범벅된 몸이 한결 편안해지는 순간이다. 별도봉 오르막 계단을 잘 오르고 온 내게는 그 한줄기 바람이 선물이다.그날도 바람 선물을 만끽하며 사라봉을 오르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많이 어두워져서 주변 사위 분간이 어려웠지만 앳된 꼬마아이
부엌살림을 좀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스텐(Stainless) 프라이팬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가를. 옷 가방보다 주방 기기나 용품에 더 끌렸던 나는 이미 칠팔년 전에 스텐팬 하나를 사서 호기롭게 쓰기 시작했다. 시작만 했다. 설명서를 정독한 후 그대로 예열하고 해물파전을 시도했다. 기름이 작은 물방울이 되어 날아다닐 만큼 충분히 예열되었을 때 불을 줄여 반죽을 넣으면 맛있게 익는 소리가 부엌을 떠돌아다닌다는 내 생각이었고 실상은 달랐다. 팬 바닥에 악착같이 눌어붙은 재료들이 내게 ‘메롱, 나 떼어봐라’하고 있었다. 뒤집개로 가뿐하게
바람결에 낯익은 향기가 실려 왔다. 코끝에 와 닿는 강한 꽃향기. 꾸미지 않고 민낯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치자 꽃이다 (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니 백과사전에서 사실 확인 하지 마시길). 우당도서관에서 사라봉 산책로 입구까지 가는 길 왼쪽에 치자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지난 봄 부터 사라봉을 걷는 내가 몇 번이나 그 길을 지났지만 한 번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향기로 치자 꽃이 나를 불렀다. 나야 나, 나 보고 가야지.난 어릴 때부터 치자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짙푸른 녹색 잎 더미에 눈부신 하얀 꽃잎
몸도 가볍게, 마음도 가볍게, 그저 가볍게 걷고 싶었다. 걸으면서 요즘 내 삶을 감싸고 있는 많은 껍질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싶었다. 고교 동문회에서 주최하는 ‘한수풀 역사문화 걷는 길 걷기’를 신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걷고 또 걷고 싶은 마음에.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거라 큰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제주시에서 한림으로 가는 길은 모르는 길이 아닌데 낯설었다. 내가 운전하고 갈 때는 머릿속에 오만가지 잡념을 가득 채우고 앞만 보며 달리느라 이런 저런 풍경들이 그저 휙 휙 지나가기만 했었다. 그런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버
바농오름은 정직하게 이름 값 하는 오름이었다. 1코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경사 길은 호흡을 조절하며 올랐지만 수시로 멈춰서고 싶은, 계속 높이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중에 표지판을 보니 300여 미터 길이었다. 평지라면 한달음에 갈 길이었지만 수직으로 올라가니 만만치 않은 길이 되었다. 길이 그러하니 지난 토요일 학교 동문회 선후배와 어울려 모두 한 목소리로 “바농오름이 진짜 바늘 길이다”라며 오름을 올랐다.1코스의 끝은 전망대. 힘이 들어간 종아리를 두들기며 의자에 앉으니 그때서야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
당나라 시인 이태백의 ‘나는 듯 떨어져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과장법을 빌면 우리 집은 가히 동물의 왕국이다. 마당을 들어서면 철망 우리에서 진돗개 바우가 꼬리를 흔들고 집안에 들어가면 도도한 고양이 루치가 있다. 바우의 눈길이 닿는 건물 처마 밑에는 강남에서 온 제비식구들이 둥지를 틀었고 길고양이 서너 마리가 자주 우리 집을 방문한다. 거기에 날마다 아옹다옹 하는 사람들까지 가세하면 작은 동물의 왕국이 되겠다.개, 고양이, 사람들이야 매일 보지만 제비는 매년 봄이 되면 돌아오고 가을이 되면 떠난다.제비가 우리
친구들과 비자림을 걸어보기로 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의 첫째 주 토요일, 바람과 햇볕의 비율이 황금률이라 산책하기 딱 좋았다. 가벼운 옷차림에 즐거운 마음을 담아 산책로로 들어서는 순간 작은 문제가 생겼다. 도민 무료인데 우리는 아무도 신분증을 갖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완벽한 사투리 구사가 신분증보다 더 확실한 것 아니냐며 떼를 써볼까 하다가 그냥 입장료를 냈다. 나들이 할 때는 무조건 신분증을 챙기자는 소중한 교훈을 되새기며 비자림으로 들어섰다.삶에 도움이 되는 교훈까지 알뜰하게 챙긴 우리는 더욱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랑쉬 오름은 높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가파르게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오름 등반이 밥 먹고 차 마시는 일과 비슷한 사람에게는 쉬운 길이겠으나 간만에 작정하고 오르는 이들에게는 만만한지 않다. 휴일 오전 친구들과 다랑쉬 오름을 오른 내가 그랬다. 종아리야 조금 팍팍해졌지만 자연의 품안에 푹 안기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날이 좋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도 그 물결에 몸을 맡겨 이야기꽃을 피우며 올랐다. 옛날 옛날 나 기자할 때 이 동네 와난. 다랑쉬굴에서 4·3 유해가 발굴 됐댕 핸. 지금이야 누구나
일요일 늦은 오후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에 갔다. “참석률이 저조해 나 잘릴 것 같아”라고 입방정을 떨곤 했는데 모두 환대해주니 부끄럽고 고맙다. 이미 20여년 이상 만난 사이라 허물없이 온갖 이야기들이 오가다, 한 친구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생각해보난 작년이 직장 생활 30주년이라. 짧지는 않은 세월인데 그 동안 쉬지 않고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해봤지. 친정 식구나 가족 빼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딱 한 사람 떠올랐어. 동서. 달랑 며느리가 둘인데 제사 등 집안일을 해야 할 때 난 일허노랜 허멍 늦게
치과에 갔다. 한 달 사이에 입안이 엉망이라며 과로했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바로 나는 대답했다. 스트레스!!!올 겨울 유난히 일이 많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 혹은 핑계로 늘 하던 운동도 두어 달 쉬었다. 이때부터 몸과 마음이 각자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몸은 휴식과 적절한 움직임을 주장했다. 마음은 너무 그러고 싶지만 일단 눈앞의 일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좋던 오누이가 크게 다툰 것처럼 몸과 마음은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길만 갔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가던
반짝반짝 봄이 성큼 다가왔다. 다행이다. 겨울 가면 봄이 오고, 어제 지나 오늘이고, 오늘 지나 내일 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한가한 일요일 오후 집을 나와 자주 가는 찻집 이층 창가에 자리 잡았다. 주중에 바쁘게 일할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편안한 일상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간판이 가득한 높은 건물들, 건물 아래 점점이 박힌 오래된 나무들, 그 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이런 저런 사람들, 사람들 옆을 쌩쌩 지나가는 큰 차, 작은 차들. 그리고 그 풍경들을 무심히 쳐다보는 나의 눈에 순간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 한 줌.
[바람섬 숨, 쉼] 대를 이어 물려주기 어떤가요? 작은 손거울에 금이 갔다. 화장대가 따로 없어 나는 책상 한 쪽에 작은 정리함을 놓고 거기에 화장품을 놓는다. 이번에 금이 간 손거울은 벌써 10년 이상 화장 거울 역할을 잘 해왔는데 금이 가 참으로 난감했다. 유리 가게에 가서 고쳐 달라 했더니 새로 사는 것을 권했다. “그러게요. 그런데 이 손거울에는 저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그냥 오래 쓰고 싶어요.” 내 마음을 읽은 유리가게 사장님이 번거로운 작업을 기꺼이 해주셔서 그 손거울은 지금 나와 함께 있다. 어린 시절 책을 읽을 때...
[바람섬 숨, 쉼] 선물처럼 주어진 또 한 번의 새해 설날에 아빠의 애창곡은 나 등이었는데 한 잔 하시고 기분 좋을 때는 길게 늘여서 한 곡조 뽑으시곤 했다. “자아아알 이있거어라 나아아는 가안다. 이벼어얼의 마아알도 없이….” 가끔 노래방에 갔을 때 화면은 벌써 떠나가는 새벽열차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자신의 리듬에 맞춰 열창했다는 것이 엄마의 추억이다. 가끔 우리 아들은 요즘 즐겨 듣는 노래라며 나 등의 노래를 내게 들어보라 권해준다. 아들의 삶을 위로해주는 노래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