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입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사찰 주변이라 그런지 밤 거리엔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전날 내린 비로 불어난 하천은 밤새 계곡을 흔들어 깨웠다.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설렘은 적막을 깨는 물소리를 만나 크게 증폭되었다. 산사 주변의 잠못 이루는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알람 소리 때문인지, 새 지저귀는 소리 때문인지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었다. 다행히도 비구름이 가시고 화창하게 맑은 날이다. 전날 긴 여정을 감안하면 잠이 부족할 만도 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너무도 반가워 피로를 느낄 틈...
시인 최영미는 1992년에 에 '선운사'라는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선운사'의 1연에 해당하는데, 작품에서 시인은 꽃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차가운 겨울에 힘겹게 피워놓은 동백꽃을 생기가 오를만한 봄날에 느닷없이 떨쳐버리는 나무를 보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져버린 사랑처럼 쓸쓸하다.선운사 경내로 들어서면, 병품처럼 둘러 친 짙은 초록의 동백 숲이 대웅전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
버스가 고창읍에 도착한 이후 빗줄기는 다소 잦아들었다. 택시를 타고 선운사 입구까지 가는 도중에 바라본 논과 밭은 온통 붉은 색 황토로 덮였다. 택시 기사는 "서울에서 땅을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서 고창과 부안 일대 땅값이 들썩인다"고 했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전개될 서해안 개발에 대한 기대가 조용하던 시골을 흔들어 깨우는 모양이다.오후 늦게 선운사가 있는 아산면 삼인리에 도착했다. 일대는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민박, 펜션, 모텔, 관광식당 등이 즐비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식당들이 모두 장어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
모처럼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는데,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젖은 몸을 이끌고 광주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잠이 부족한데다, 옷이 온통 젖었으니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다.전북 고창까지 가는 길은 광주공항에 도착한 이후에도 한참 남았다. 아침밥을 거르고 왔으니 광주 양동시장에 들러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인데다, 거리에 비까지 내리니 장은 한산하였다. 어물전마다 한 결 같이 홍어들의 선홍빛 신선함을 과시하기에, 내가 호남 땅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남 보성에서 온 쪽파, ...
한국과 중국 사이에 진행되는 자유무역 협정이 타결을 앞두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의 최대 쟁점은 역시 한국 공산풍의 중국 진입 장벽의 수위와 중국 농산물의 한국시장 개방의 폭이다. 양국 협상단 사이에 세부적인 부분에 이견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과 발표 시기를 선택하는 문제만 남은 듯하다. 자유무역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중국 절강성을 방문했으니 중국의 농산물에 눈이 쏠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농산물 실상을 파악하려면 농장이나 도매시상 혹은 재래시장 등을 돌아보면 좋으련만, 단체 일정 때문에 경험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상해에 도착하면 가이드들이 빼놓지 않고 안내하는 곳이 상하이 관광 제1명소인 외탄(外灘)이다. 탄(灘)은 모래사장을 이르는 말인데, 황포강변에 서양 근대풍의 건축물이 모여 있어 독특한 정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해에서 맛볼 수 있는 근대 유럽풍의 정취란 사실 중국인들에게는 자존심에 남은 상처의 흔적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아편전쟁(1840-1842)에서 패한 중국은 서양의 압력에 굴복해서 상
가수 고운봉이 1940년대 초에 발표한 가요 중에 ‘황포강 뱃길’이란 노래가 있다. ‘물 위에 꽃잎 실은 황포강 뱃길, 쌍돛대 흔들흔들 휘파람 싣고’로 시작하는데, 황포강을 소재로 향락적인 낭만을 표현하는 노래다. 가수 고운봉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라는 첫 구절로 시작되는 ‘선창’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가수다.그런데 고운봉의 ‘황포강 뱃길’이 발표되기 이전에 상해를 소재로 한 노래...
필자는 서귀포시 야구연합회가 추진한 ‘사회인 야구단 국제교류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국 상해(上海)를 방문하였다. 마침 몇 해 전부터 상해와 인근 절강성(浙江省) 일대에 관심을 갖고 답사할 기회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개인적으로 뜻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4박5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름의 보람이 컸던 지라 그 감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야구를 목적으로 떠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