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 (16)전통 발효식품 그대로, 물마루된장학교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꾼다-(16) 로컬푸드로 전통방식의 장을 빚는다, 물마루된장학교

 

▲ 제주물마루된장학교의 부정선(50) 대표. 농사는 절대 안 짓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제주에서 손꼽히는 여성영농인이 됐다. ⓒ제주의소리

농사일만큼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했다.

어머니가 힘겨워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밭농사. 시내 사는 친구들은 다 주말마다 놀러나가는데 주말에 밭에 나가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꼭 도시로 나가리라 맘을 먹었다.

그렇게 그녀는 사춘기 시절 마음먹은 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시내로 나간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소도시라도 그녀에게는 간절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평범한 도시 중산층의 삶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삶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온 지금 어쩐 일인지 농사만은 절대 안 짓겠다던 그녀가 유명한 여성영농인이 돼 있다. 농림부에서 신지식영농인으로 인정받고, 제주 농업인대상을 수상하고, 여성농업인상을 받은 그녀는 뛰어난 농업경영인으로 소개되며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다. 

부정선(50) 제주물마루 전통된장학교 대표는 1994년 고향 한림으로 돌아와 브로콜리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그러던 2003년 현재 된장학교의 모체가 되는 선돌물마루식품을 설립한다. 몇 번 고비를 겪고, 주경야독으로 내공을 키우더니 연매출 300만원이었던 작은 된장 생산업체가 유명세를 타며 1년에 매출 1억을 훌쩍 넘었다. 작은 지역 농촌에서 단기간에 이뤄낸 성과치고는 꽤 놀라운 것이다.

그리던 그녀는 2012년 또 ‘갑자기’ 사회적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익금의 배당과 개인사용이 더 어려워지는 이런 선택은 어쩌면 스스로 손해를 보려 마음 먹은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지금은 된장학교라는 이름에 맞게 사람들을 초청해 발효식품과 재래장의 소중함을 알리는 데 애쓰고 있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절대 농사를 안 짓겠다던 소녀가 국가에서 인정하는 여성농업인이 되기까지, 또 무난하게 풍족한 삶을 갈 수 있었음에도 갑자기 사회적기업을 택한 그녀의 삶은 누가 듣기에도 흥미로웠다. 삶의 순간순간을 자세하게 털어놓은 그녀의 목소리를 되도록 그대로 실었다.

“처음 어떻게 농사를 시작하게 됐냐구요?” 

 

▲ 물마루된장학교 야외발효장에 찾아온 겨울. 제대로 된 발효식품이 나오려면 1, 2년은 이렇게 자연방식으로 묵혀야 한다는 게 부 대표의 설명이다. ⓒ제주물마루된장학교

- 그럼 맨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부 대표님은 ‘1994년 귀농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원래 고향이 한림 대림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그 동안 잠시 떠나있던 건가요?

“원래 농촌 출신이긴 한데 제주농촌이 되게 힘들잖아요. 저희 부모님 삶도 그렇고. 농사 지어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 같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제 나름대로 삶을 펼쳐나가다가... 사람이 어떤 파도를 만날지 모르잖아요. 도시생활을 꿈꾸며 어렸을 때 농촌에는 가지 않겠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사업하는 신랑을 만나서 시내에서 사는데, 가다가 넘어졌죠. 사업이 잘 안됐어요. 주저 앉아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그 때 보이더라구요. 애들은 갓난 아기들이었고 마침 부모님과 시댁 부모님이 모두 농사짓고 계셨고...그렇게 농촌에 들어오게 됐어요. 사실 농사일을 하고 살지는 절대 않겠다 했는데, 애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그 상황을 넘어서야 하는데 앞이 까마득하고 막막할 때, ‘농촌에 가서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 그럼 무척 힘들고, 처음엔 괴롭기도 했겠네요

“그런데 이게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하는 일을 하니 하는 것마다 원하는 것보다 이상의 성과를 거뒀어요. 내가 농사의 재질이 있나 생각도 들고(웃음) 막상 해보니 농사짓는데 되게 좋더라구요. 계속 펴져 나간거죠. 하는 거 마다 다 잘 돼서 3년 만에 빚도 갚았고. 브로콜리 처음 나올 때 선택해서 하다보니 제 삶이 다져졌어요. 집안경제가 안정이 되더라구요”

-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된장’이 삶에 들어오게 된 거죠?

“2003년. 그 당시 ‘나는 아직 젊으니까 그냥 농사만 말고 다른 사회활동을 해보자’ 해서  농촌진흥청에서 하는 여성농업인 농촌 일감갖기 사업장을 하게 됐어요. 당시 농업기술센터에서 ‘1차 산업에만 끝나지 말고 좋은 재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공을 해봐라’ 기회를 준 거죠. 그 때 6명의 여성농업인들이 ‘오래갈 수 있는 게, 좀 지속가능한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된장이 딱 떠올랐어요. 그렇게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죠”

- 이전 일들처럼 잘 됐나요?

“1년만에 무참히 깨졌어요. 농업은 시장이 있어요 가락시장, 도소매 시장 유통경로가 다 있어서 재배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가공식품은 그게 아닌 거죠. 직접 소비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저희는 그냥 농산물처럼 만들어 놓으면 다 누가 사줄줄 알았어요.

그래서 1년차 회원들이 자기 삶도 빠듯한데 시간내는 것도 그렇고, 매출도 저조하니 1년 넘게 공백이 생겼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 사업장 살려봐야지’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해보니 자기만의 차별화된 제품이 아니고서는 보통의 시장을 넘어설 수 없는 거에요. 그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2005년부터는 교육을 받으러 다녔어요 가공, 유통, 마케팅에 대해서. 농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농업인이어서 소비자의 흐름에 대해서 더 몰랐던 거죠. 그렇게 교육을 받고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을에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브로콜리 갖고 해봐야겠다’ 해서 브로콜리 청국장 특허를 냈어요. 2007년이죠”

 

▲ 발효중인 된장을 살펴보고 있는 부 대표. 메주를 만들고 후숙을 하는 과정에서 동결건조된 브로콜리 분말이 들어가 오랜 시간을 거치면 그녀가 자랑하는 '브로콜리 된장'이 탄생한다. ⓒ제주의소리

- 매출이 많이 뛴 거네요?

“그렇죠. 처음 된장 만들었을 때는 1년에 300만원밖에 못 팔았어요. 그러다 아까 말한 것처럼 2005년이 되면서 맘 먹고 교육을 받으러 다니면서, 아 이거 소비자가 나를 알아야 겠다, 1kg에 2만원 받는 된장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야겠다, 내가 신뢰를 쌓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었죠.

2007년 농림부의 농업 경영 비즈니스 과정이라 과정 이후 1년에 한 번 씩 큰 교육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내가 선택해서 경비를 들이고 공부를 했죠. 또 밖에 전통된장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으면 학교 학부모 상대로 전통장 교육을 하기도 하면서.  의외로 소비자들은 된장은 알지 그 속에 들어있는 발효의 세계는 모르더라구요.

2010년에는 야간대학을 가볼까 해서 한라대에서 식품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전통된장의 가치를 알리는 강사활동을 하면서 유기농의 소중함을 설명했죠. 그리고 2011년 매출이 1억을 넘겼어요. 많이 급성장했죠”

- 그런데 그렇게 안정궤도에 올라서서 바로 2012년 2월, 예비사회적기업 신청을 하고 인증을 받았네요? 사회적기업은 이익금의 배당이나 재투자 등 매출에 대한 규정이 제한적이잖아요. 사회적가치를 위한 재투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기업주, 경영인으로서 혼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어딘가로 돌려줘야하는건데... 어떻게 사회적기업으로 전환을 택하게 된 거죠?

“제가 농촌에 ‘공동체’라는 걸 꿈꾸고 있었거든요. 직접적인 계기를 말하자면, 제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어느 날 병으로 쓰러진거에요. 상태가 안 좋아 서울 종합병원에 장기입원하게 됐죠. 그리고 얼마뒤 하체가 마비됐다는 얘기가 들려왔어요. 그 이후 그 애를 만났죠. 하반신을 쓸 수 가 없으면 통증이 없어야 되는데, 통증세포만 살아있어요.

그런데 걔 집에 가봤다니 휠체어로 요리조리 다니면서 잘 살고 있는거에요 씩씩하게. 걔가 꽃을 되게 좋아하는데 원예 쪽으로 활동하면서 장애인들 대상으로 교육도 다니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아 내가 갖고 있는 사업장이 넓은데 이 친구가 여기 오면 좋겠다’ 해서 이야기 하게 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는 한림에 공동체를 만들어봐야 겠다”

- 구체적으로 그 공동체라고 하면 어떤 의미인가요?

“농업 경영 비즈니스 과정이라고 해서 2007년 제 자비를 들여서 진흥청가서 교육을 받았어요. 그 때 나의 비전을 한 번 세우게 됐죠. 나의 비전을 고민하게 됐고, 어떤 거 했을 때 좋을까 잘 살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했는데. ‘공동체’라는 단어가 딱 떠올랐어요. 당시에는 지금 당장은 아니고 성공한 다음에, 품이 넓어졌을 때 힘이 든 사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겠다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2011년 그 친구를 만나면서 ‘아 내가 성공한 다음에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어서 현실화시키기로 했어요.

제가 농업인이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 저에게 농촌이 힘든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부모님이 힘든 모습 밖에 못 보여줘서. 요즘 농촌이 여러 가지 사정이 희망을 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 애들이 자랄 때 같이 뿌리를 내려야겠다 이런거죠”

“한식의 세계화? 우리 아이들 입맛부터 신경써야”

 

▲ 제주물마루된장은 발효식품의 소중함을 알리러 밖으로 강연활동을 나가는 동시에, 가족이나 어린이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재래식 된장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제주물마루된장

- 전통방식으로 만든 친환경 된장이 인정을 널리 받고 있더라구요. 특히 브로콜리 된장은 원래 브로콜리에 항암성분이 많은데다 된장까지 만나면 요산 수치를 낮춰서 통풍환자에겐 특효라는 보도도 나왔고. 상 받은 것만 추려봐도 여기서 만드는 된장이랑 간장이 전통식품 품질인증 받은 걸로 시작해서 농림기술개발 표창, 여성농업인상, 여성농업인 대상. 또 로하스 대회에서 된장이 우수상을 받고...

“2009년도에 제주형 발효식품 클러스트에서 제주된장을 만들어 보자 해서 여러 가지 된장 생산업체들이 참여했는데... 성분검사 결과가 저희 된장이 좋게 나왔어요. 그 결과가 나오니 ‘내가 잘 하고 있네’ 자신감이 들었죠. 그래서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어보자라는 마음이 더 커졌구요

사실 여기에 몸이 많이 아프신 분이 많이 와요. 좋은 메주로, 정말 친환경으로 안 만들면 이 분께 독이 될 수 있잖아요”

- 1, 2년이나 숙성을 시킨다고 들었어요. 근데 이게 보통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된장이랑 차이가 많이 나나요?
 
“사람들은 마트에서 파는 된장, 고추장도 지명이 있으면 이게 재래식 된장인줄 알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그 지역에서 공장을 지어서 브랜드만 딴 거에요. 자연발효가 아니라 거기는 멸균을 시켜요, 좋은 균도 없고 나쁜 균도 없어요. 발효된장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만드는 모든 것들은 들어가는 첨가물이 없잖아요. 야외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미생물도 많이 있어요. 여기에는 좋은 균 뿐 아니라 중성 균도 많이 있어요. 우리 몸에는 좋은 균 내지 중성 균도 많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랬을 때 면역체가 튼튼해지고.

여기에서도 이런 걸 풀어내기 위해서는 얼마 나 혼자 가면 키워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적기업도 지역 커뮤니티로 해서 하나로 가자 마음이 든 거죠”

- 이 곳이 말 그대로 ‘된장학교’니까 농민들, 단체들, 학생들 초대해서 강의도 자주한다면서요?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마을 할머니들이 처음엔 여기 된장을 잘 이해를 못하는데, 사람들이 kg당 2만원이라는 걸 알아도 계속 오는 걸 보니 ‘비싸도 필요한거구나’ 알게 되시더라구요. 할머니에게 전통된장을 담으라는 게 혼자 드시는 것은 물론 이쁘고 사랑스런 손자손녀들에게 소중한 것을 주라는 거에요. 그렇게 다른 세대도 이 전통의 맛, 건강한 맛에 대해 조금 알아가기 시작하고. 우리 세대는 발효식품 소중한 거 알잖아요.

사실 우리 1순위가 일반 소비자 판매가 아니라 학교 급식이에요. 우리는 전통된장을 먹으며 자랐지만 요즘 애들은 그러지 않아요. 그 맛과 멀어지죠. 이렇게 해서 어른이 되잖아요? ‘좋은 걸 알지만 내 입맛과 너무 달라져서’ 멀어지게 되죠. 한식을 세계화 한다? 왜 세계화부터 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장 지금 우리 애들도 그걸 모르는데.

그리고 콩 농사가 제주에서 잘 되잖아요, 지역 음식을 먹으면 애들은 건강도 챙기고, 전통도 지킬 수 있고, 마을 농민들도 좋고(웃음)”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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