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02) 근로복지공단의 태아 산재 첫 인정에 부쳐 

/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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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는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질병을 얻거나 다치는 경우, 그리고 사망하는 경우에 산재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을 통해서 치료비 등을 보상받는 제도다. 그런데 만약에 임신한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아픈 아이를 낳게 되었다면, 자녀의 질병을 산업 재해로 인정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올해에 들어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태아산재를 인정했다. 

제주의료원에서 시작된 태아산재 인정투쟁 

태아산재 제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10년 전 제주의료원으로부터 시작된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에서 일했던 간호사 12명이 임신을 했는데 그 중 5명이 유산을 하고, 태어난 아기 7명 중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선천성 심장질환을 출산할 일반적인 확률의 15배에 해당되는 수치였다. 이상함을 느낀 당사자와 노동조합에서는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업무에 대하여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하여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업무상 유해인자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간호사의 노동 환경이 임신초기 태아의 건강에 손상을 끼치는 요인이었음이 밝혀졌다. 간호인력 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 등의 노동 환경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에서 신규 약품이 도입되었는데 유해 약품의 사용량이 늘어났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중증 질환자에게 간호사가 막자에 약을 빻아서 복용하도록 도왔는데 그 과정에서 임신한 간호사들이 그대로 생식독성 약품에 노출되었다. 

건강손상 자녀를 산재보상으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 

업무와 연관되어 발생한 건강 손상이지만 그 주체가 자녀라는 이유로 10년간의 법적 공방이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2020년 대법원에서는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며, 산재보험 제정의 취지상 건강손상자녀도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22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개정을 통해 “(산업재해가 인정된 건강손상자녀는) 이 법을 적용할 때 해당 업무상 재해의 사유가 발생한 당시 임신한 근로자가 속한 사업의 근로자로 본다.” 라는 특례조항이 신설되었다. 

산재보험은 국가가 관리하고 사업주들이 산재보험을 가입함으로써 운영되고 있는 사회보험이다. 건강손상 자녀를 산재보험으로 인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업무상 이유로 인하여 건강손상 자녀를 출산하게 되는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사업장 단위에서 시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태아산재 제도의 경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지만, 그간 부모의 업무상 유해 요인에 기인하여 자녀에게 건강상의 손상을 끼친 사례는 상당히 많이 축적이 되어있다. 태아산재를 제도화 하고 인정하는 과정에는 산업 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예방한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각 사업장에서 업무 중 유해화학물질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 활동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 현재 제도 내에서 유해 화학물질로 인정하는 폭이 상당히 제한적인데 이 부분도 확대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 태아산재 첫 인정

제주의료원의 사례는 대법원을 통해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지만 근로복지공단 차원에서는 올해 1월에 들어서야 첫 사례가 나왔다. 임신 기간 중 병원 신장투석실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화학 약품을 직접 혼합해서 투석액을 만드는 방식으로 일하다가 자녀가 뇌병변 장애 등의 진단을 받은 경우였다. 아이의 뇌가 형성되는 임신 초기에 화학 약품 취급 업무가 많았던 점이 과학적으로 상당히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태아산재제도의 도입 후 2년만의 첫 사례다. 

두 번째로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사례가 인정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월 22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일했던 노동자들이 출산한 자녀에 대한 건강손상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20여년 전의 사례가 소급적용된 것은 태아산재법을 만들면서 법률의 제정과 법 시행일 사이에 산재보험을 신청한 경우에는 소급적용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그간 끊임없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상 위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내며 축적해온 시민사회단체와 유족 및 당사자들의 노력의 결과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된 것이 당사자와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통해 수년에 걸쳐서 확인된 바 있다. 반도체 업종 여성노동자들에 유산이 많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자녀에 대한 선천성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산업재해에 있어서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2010년 제주의료원 간호사와 노동조합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역학조사를 추진하고 법적 투쟁을 10년간 이어간 것은 원인을 밝힘과 동시에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한 것 이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었던 당사자들이 있었기에 태아산재 제도가 시행되어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올해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이다.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지난 10년간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있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생명 안전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걸음에 함께 응원하고 연대하자.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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