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거짓말에 결과 공개까지 언론사에 떠넘기기...제주도 역할 완전실종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여론조사를 신문 3사(제민.제주.한라일보)에 위탁한 제주도가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제주 미래가 달린 중대 현안을 스스로 돌파하기 보다는 '중재자'의 위치에 서야할 언론사에 등을 떠미는가 하면, 제주도가 엄연히 여론조사를 발주한 주체인데도 결과 발표까지 언론사의 몫으로 돌리는 어처구니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제주도는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어서 도대체 이번 여론조사가 언론사 자체의 일상적인 여론조사인지, 제주도가 의뢰한 공공적인 여론조사인지 도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대다수 언론은 사실상 신문3사가 보도한 내용을 받아쓰게 함으로써 제주도의 역할은 완전히 실종될 판이다. 가관인 것은 신문3사의 보도 이후 제주도가 사후 브리핑에 나선다는 점이다.   더구나 '사후 보도'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 언론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까지 나와 나머지 언론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8월31일 시작한 여론조사가 지난 1일 마무리된 가운데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점은 제주도의 잇따른 거짓말이다. 

8월30일 제주도는 행정체제개편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공정성과 객관성, 신뢰성 확보 및 폭넓은 의견 수렴을 위해 신문 3사에 대행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박재철 특별자치행정국장과 위영석 정책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주제를 선정하고, 어떤 사항 조사할 것이냐 얘기했고, 3개 안(案) 다할 것이냐, 1개안만 할 것이냐, 우리 입장은 행개위(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행정시장 직선제)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구체적인 설문안을 3개사와 공동으로 협의해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또 위 정책조정관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보도는 3사만 하느냐"는 질문에 "조사만 위탁한 것이고, 조사 결과에 대한 자료는 보고를 받아서 보도자료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약속했다.

행정제체 개편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신문 3사에 위탁한 것 자체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제주도의 브리핑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신문 3사는 3일 '제주지역 언론 3사 행정체제개편 여론조사 실시 관련 보도자료'를 내고 5일자 조간신문을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다고 밝혔다.

신문 3사는 여론조사 결과물은 방송사와 인터넷매체에도 제공하지만, 신문 3사가 합의한 '엠바고'(보도시점 제한)를 반드시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엠바고는 방송사의 경우 5일 아침 뉴스타임의 지역방송시간에, 인터넷매체는 5일 오전 8시부터 제주언론 3사의 조사 자료임을 밝히면서 보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신문 3사는 특히 여론조사 보도와 관련한 엠바고를 지키지 않을 경우 모든 책임을 위반 언론사에 묻기로 했다고 엄중 경고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신문 3사에 행정체제 개편 여론조사를 위탁했다고 브리핑할 당시 엠바고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또한 제주도는 여론조사 결과는 보고를 받은 다음 보도자료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신문3사의 설명대로라면 이 역시 거짓말이 된 셈이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도청을 출입하는 중앙기자단과 나머지 지역 언론들은 제주도에 강력히 항의했다.

이들 기자는 "제주도가 비용 수천만원을 대고 위탁한 여론조사 결과인데, 왜 신문 3사가 그대로 발표하느냐"며 "엠바고 얘기도 브리핑 당시 없었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집을 짓기 위해 돈을 댄 집주인 몰래 건설회사가 준공식을 하는 것과 같다"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첫단추부터 잘못 꿴 행정체제개편 여론조사가 마지막까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제주도에 언론사가 3사만 있느냐. 행정체제 개편 여론조사가 도민 전체를 상대로 한 것인데,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위영석 정책조정관은 "여론조사 대행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신문 3사가 엠바고를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한 뒤 "여론조사를 대행해 주는데 그 정도 편의는 제공해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보도자료는 언제 배포하느냐는 질문에 위 조정관은 "신문이 나온 5일 보도자료를 약속대로 배부하겠다"고 말했다. 신문3사의 보도가 나온 후 브리핑을 하겠다는 뜻이다.

한 기자는 "지방지에서 이미 결과가 나왔는데 5일 보도자료를 배부하겠다는 것은 그냥 신문 보고 쓰라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도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행정체제 개편이 도의회와 여야 정당, 시민사회의 반발로 사면초가에 놓인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마저 제주도가 자충수를 두면서 비난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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