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색채'…폴 자쿨레 판화展국립제주박물관 특별전시실 7월 30일까지

   
 
 
눈이 부실 지경이다.

과연 판화인지, 섬세한 특유 화법의 수채화인지 도무지 헷갈릴 정도다. 60~70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선명하고 화려하다.

국립제주박물관(관장 구일회)이 올해 두 번째 특별 전시로 열고 있는『아시아의 색채: 폴 자쿨레 판화』전(6.13~7.30. 48일간).

▲ 아버지 폴과 양녀 나성순씨. 어느 덧 자라 60대가 됐다.ⓒ 서귀포 신문

만능과 같은 컴퓨터라는 도구로 현란한 애니메이션을 쏟아내고 형형색색의 복제판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폴 자쿨레의 목판화전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걸작이 주는 의미외에도 작품 하나에 쏟는 정성과 정교함으로 판화의 지평을 다시 열어 놓은 그의 작업의 단면을 다시 볼 수 없는 좋은 기회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화가 폴 자쿨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양녀, 재일교포 나성순 (이나가키 데레즈)씨 가족의 판화 162점 기증을 기념하는 전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두번째다.

폴 자쿨레는 프랑스인이지만 삶의 대부분을 한국, 일본, 중국, 미크로네시아 등지에서 보내면서 아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형형색색의 다색 판화로 담아냈다.

특히 국립제주박물관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미크로네시아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전시되었던 국립중앙박물관과는 달리 섬이라는 제주도의 특색을 감안해 한국과 미크로네시아 사람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만을 선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폴 자쿨레 연보>

△1896년=파리 출생
△1899년=아버지가 동경외국어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으로 감
△1920년=재일 프랑스대사관 근무
△1921년=아버지 사망
△1928년=어머니가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 나카무라 히로시
          (中村拓)씨와 재혼하여 서울 거주 
△1929년=1930년, 1932년, 1934년, 1938년 서울 방문
△1931년=일본에서 나영환(전남 영암 출신)을 조수로 맞음
△1936년=서울 미쓰코시백화점(현재 신세계백화점)에서 ‘폴 자쿨레 판화전’ 개최
△1951년=나영환의 딸 나성순(이나가키 데레즈)을 양녀로 맞음
△1954~55년=세계일주를 하면서 전시회 개최
△1960년=당뇨병으로 일본 가루이자와(輕井澤)에서 사망

따라서 전시는 크게 한국과 미크로네시아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다수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

폴 자쿨레의 작품은 여러 가지 색깔로 찍어낸 다색 목판화이다.

다색 목판화는 먼저 스케치를 통해 색을 정하는 작업, 수채화로 그려 색채를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 뒤 사용되어질 색깔의 숫자만큼 목판을 준비하고 겹쳐 찍기를 반복해서 완성되기 때문에 고도의 정교함과 세심함이 요구된다.

따라서 폴 자쿨레는 조각과 찍기에 관한 한 최고의 장인들과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완성시켰다.

종이 한 장도, 안료 하나도 최고를 지향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60~70년 전의 작품이라는 세월의 벽을 무색하게 만든다. 

▲ 보물. 1940.한국.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가 조바위를 쓰고 포대기를 두른 것으로 보아 날씨가 추운 계절인 것을 알 수 있다. 아기는 젖을 달라는 듯 어머니의 저고리 속으로 손을 넣고 있다. 폴 자쿨레는 한국 사람들이 자식을 ‘보물단지’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는지 작품의 제목을 ‘보물’이라 붙였다.
폴 자쿨레 작품의 주 소재는 사람. 그는 주로 클로즈업된 인물 초상을 선호했으며 얼굴과 손의 묘사를 통해 모델이 된 사람의 감정을 표현했다.

폴 자쿨레가 주요 작품을 발표했던 1930-50년대는 한국과 미크로네시아에 있어서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과 지배로 얼룩진 암울하고 슬픈 시기였다.

그러나 폴 자쿨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비극적인 시대로 인해 야기된 우울한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일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 울고 웃는 밝고 따뜻한 사람들로 표현되어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남겨진 한국에 대한 서양인들의 기록과 그림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가까운 우리네 옛 모습을 이방인의 눈을 통해 다른 관점에서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시선이라는 것은 때때로 이국적인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나 관심 수준에서 그치는 것일 수도 있다.

▲ 폴 자쿨렛 작품집(값 3만원). 제주에선 50권 한정판매한다.

그러나 폴 자쿨레는 삶의 대부분을 아시아에서 보냈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리엔탈리즘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서양인이면서도 동양인 못지 않은 섬세함, 그리고 무한한 애정, 그리고 꼼꼼하게 담아내려 노력했던 '삶의 애환'과 '사람 사는 사회'에 대한 문화의 일면이 녹아 있다.

수 차례의 반복적인 수작업이 뒤따르는 인고의 작업과정에서 과연 그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려주려 했을까? 

국립제주박물관은 "이번 전시는 프랑가 작가 폴 자쿨레의 작품을 통해 다색 판화의 아름다움과 예술성 뿐만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따뜻한 인간애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많은 이들이 동양적 색채의 신비감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제주박물관이 공동으로 펴낸 폴 자쿨레의 작품집(값 3만원)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 판화 및 미술 애호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50권 한정 판매. 문의=(064)720-810.

   
 
 
   
 
 
   
 
 
   
 
 
   
 
 
   
 
 
   
 
 
   
 
 
   
 
 
   
 
 
   
 
 
   
 
 
   
 
 
   
 
 

▲ 돌복을 입은 아이. 1934

▲ 사이판의 소녀와 하이비스커스 꽃. 1934. 사이판
▲ 게이샤기요카. 1935. 일본.
▲ 꼭두각시. 1935.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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