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다수 여론'으로 포장한 '명분쌓기' 의도…조사기법 '타당성' 논란'해당 지역주민' 의견 철저히 무시…'교묘한 결정 방식' 반발 클 듯

 

▲ 10일 오후 간담회가 열리기 직전 도의원과 대치 중인 김태환 지사. 일부 도의원들은 "주민 입장을 외면한 일방적인 로드맵 발표는 결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 최대 현안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사실상 결정짓게 될 '여론조사' 방법에 대한 타당성 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지역주민 여론을 철저히 무시한 '교묘한 결정 방식' 때문이다.

김태환 도지사는 10일 '주민투표법'상 '주민투표'의 한계를 거론, "여론조사 방법의 타당성을 검토했다"며 "신뢰할만한 기관에 의뢰해 도민의 의견을 듣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수' 도민 여론조사를 전면에 앞세운 채 '소수' 지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이번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과연 합리적이고 최선의 방법이었는가'를 놓고 적지않은 의문이 일고 있다.

김 도정이 내건 '이상한' 여론조사 방식...과연 합리적이고 타당한가?

   
 
 

더욱이 해당지역과 직접 상관없는 도민 다수의 '힘의 논리'로 포장한 이번  조사 방식의 경우 자칫 제주특별자치도에 숱하게 전개될 수 있는 각종 사업 유치 방식에 있어서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 만큼 조사방식의 '타당성'과 '신뢰성' 그리고 '적합성'에 적잖은 문제점이 노출, 논란이 따를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10일 김태환 지사를 비롯 제주도정이 밝힌 해군기지 결정 방식은 일단 도 전체 1500명 정도의 유권자를 상대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와 동시에 해당 읍.면 지역 유권자의 5% 정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찬.반 여론조사를 병행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도단위 여론조사를 통해 해군기지를 제주에 유치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뒤 현재 후보지로 거론되는 3개 지역(위미1리, 위미2리, 화순리) 가운데 찬성 지지도가 많은 곳을 후보지로 결정하는 식의 2단계 방식을 거친다.

이러한 방식은 그러나 언뜻보면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한 모순점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점-1> 해당 후보지 '주민의사' 관계 없다?...일단 '도민 찬.반'으로만 유치여부 '확정'

해군기지 여론 조사는 일단 도민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군기지 유치 찬.반에 대해 의견을 묻는 방식이 선행된다.

이 경우 표본 추출은 인구비례로 할 때 유권자(대략 41만명)수의 0.36%에 해당하며, 3곳 후보지역 주민과 차등없이 도민 개개인 모두가 똑 같은 한표를 행사한다.

이처럼 김 지사가 발표한 여론조사 방식은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보편적인 여론조사 방식을 '입맛에 맞게' 도용한 것으로 일단 조사 기법상 기술적인 측면에선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역민의 입장과 첨예한 찬반 논리로 인해 해군기지의 특수성 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적합성'과 '타당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결국 해군기지에 대한 무게와 심각 정도가 다를 수 밖에 없는 해당 지역주민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된 채 전체 도민 의견만을 놓고 찬.반을 가리겠다는 것으로 이는 그간 '주민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도지사의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되자 여론조사 진행 방식을 놓고 현장을 지키던 취재기자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다양한 해석'을 쏟아놓으며 '옥신각신'하는 등 진위 파악에 상당한 혼란이 빚어졌다.

또 간담회 이전에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말한 도지사의 사전 발언에 대한 책임성과 신뢰성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김 지사는 결국 우여곡절 속에서도 당초 의도(?)대로 '일정만 뺀 해군기지 로드맵'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소기의 목적(?)을 거둔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도의원과의 간담회 과정에서 밝혔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로드맵'을 황급히 조기에 공개한 것에 대해서는 적잖은 외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 10일 도의회 군사특위 간담회에서 답변하는 김태환 도지사. 그 옆으로 이종만 해양수산 본부장과 유덕상 환경부지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제점 2> 후보지역 주민 찬.반 의견도 무관하다? ...3곳 중 무조건 찬성표 높은 쪽 '유치'

현재 거론되는 3곳(위미1, 2리, 화순리) 지역 주민들의 반대 여론과 관계없이 3곳 중 무조건 '찬성의견'이 많은 지역을 최종 선정하겠다는 것은 더욱 문제가 크다.

김 지사는 실제 "남원읍(위미1, 2리)과 안덕면(화순리) 지역 전체 유권자의 5%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여론조사 결과 가장 높은 '찬성' 지지율을 보인 곳을 해군기지 건설지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이를 위해 "3곳 후보지 외에 염두해 두는 곳은 없다"고 사전에 못을 박았다.

따라서 만약 도민 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높으면 자연스럽게 해군기지는 물건너가지만, 단 0.1%라도 찬성입장이 많이 나오면 지역주민 여론과 관계없이 '무조건 유치'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거론되는 해당지역 모두 저마다 '반대' 여론이 우세해도 상관이 없다. 그 중 찬성표만 서로 비교해서 가장 많은 곳에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내 도민이 선택할테니, 해당주민은 장소만 골라라?"...사실상 일방 통보식

좀 더 비약한다면 A와 B지역의 반대 여론이 99%(A 지역)와 98%(B 지역)가 나오더라도 이 중 2%의 찬성 여론을 보인 B 지역이 A지역 보다 단 1%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유치지역'으로 선정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한마디로 '도민 여론조사로 유치를 먼저 결정할테니, 해당 주민은 장소만 선택하라'는 꼴이다.

이는 후보지 외 다른 지역주민(도민)들이 '찬성'만 하면 해당 지역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해군기지'를 유치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유치를 위한 포석'이자 '명분 쌓기'용 이라는 냉담한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겉으로는 '도민 여론조사'와 '주민 당사자 의사결정'으로 균형을 감안한 듯이 포장했지만 정작 이래저래 절박할 수 밖에 없는 해당지역 주민들의 입장은 전혀 반영될 틈이 없는 셈.

결국 해군기지 유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교묘한 결정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 3> 해괴한 조사법...과연 어디서 나왔나....정부와 '보조' 맞췄다?

이 같은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의회 주변에선 "실제 그런 조사방법이 있긴 있는거냐"며 적잖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아가 일부 도의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착안한 신종 기법인가"라며 갖가지 억측과 함께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대해 김 지사는 "경주 방사능폐기장 문제도 읍면단위로 여론조사를 했다. 여론수렴 계획과 일정, 방식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복안을 갖고 있다'며 "학계와 관련 전문가, 리서치조사 기관 등의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다. 단지 '선행 모델'을 참고했음을 넌지시 시사 했을 뿐이다.

이에대해 이종만 해양수산본부장도 "주변에서 각계의 자문을 구했다"고만 밝힐 뿐 '누가 조언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은 피했다.

이와관련 김 지사가 "정부측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볼 때 '사실상 정부측과 교감을 나누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지사는 "정부 관계자가 내려오면 이에 대해 분명한 답변이 있을 것"이라며 "보상 등 인센티브 분제는 정부당국에서 내려왔을 때 자연스럽게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정부와 긴밀한 협의가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비쳤다.

지역 실정 및 입장 완전히 배제한 '나쁜 선례'
'조사 방법 타당성' 논란 ...차후 후유증 클 듯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차후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란과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도의회 일각에선 "후보지 주민들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도민전체로 진행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주민 입장은 전혀 배제된 채 도민 전체의견이 우선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냐"며 "사실상 의견수렴 절차가 꺼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내 여론조사 전문가 A씨는 "해군기지 문제를 접하는 해당지역과 일반 도민의 입장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며 "조사 기법상 해군기지가 들어왔을 경우의 해당 지역주민에 대한 가중치가 전혀 없다는 점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지역에 대한 가중치에서도 '읍면단위' 가중치와 직접 이해 당사자인 '마을(주민)'의 가중치도 서로 달라야 한다"며 "여론조사가 보다 설득력이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중치'를 최대한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여론조사 관계자 B씨는 "다른 지역의 선례를 얼마나 감안했는지는 모르지만 비록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지역실정을 고려할 때 얼마나 타당한가를 따져야 한다"며 "그대로 타지역의 사례와 기법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이어 "해당 지역주민의 입장이 배제된 조사방식은 합리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차후 타당성에도 적잖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아무리 여론조사라지만 도민 다수를 내세워 마치 ' 힘의 논리'만을  앞세운 채 진행하는 일방적인 조사 방식은 자칫 잇따를 수 있는 각종 사업 유치 결정 방식에 있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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