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철의 제주해안 따라가기(14)] 수원·한수해안

‘우지연대’는 일주도로를 따라 귀덕2리 교회를 지나서 일주도로에서 잘 보이는 조금 높은 구릉지에 위치해 있다. 이 연대는 동쪽으로는 귀덕초등학교 내의 ‘귀덕연대’와 서쪽으로는 한수리 ‘죽도연대’와 교신했던 연대다.  ‘귀덕연대’는 연대를 세웠던 자리만 남아 있고, ‘죽도연대’는 포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취를 감추어 어디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양 옆에 있던 연대들이 자취를 감추어 외롭게 보인다. ‘우지연대’는 비교적 잘 보전되고 있는 연대다. 일주도로 변에 있어서 접근하기도 쉬우나, 입구에 연대를 알리는 표지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주도로에서 연대까지에 이르는 50m정도의 진입로가 풀로 우거져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 우지연대의 모습, 높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기 쉬우나, 입구를 찾기 힘들어 접근하기 어렵다.ⓒ홍영철

‘우지연대’를 지나면 귀덕2리와 수원리의 경계지점에 이른다. 해안쪽에서는 수원리의 ‘용운동포구’를 시작으로 수원리가 이어진다. ‘용운동포구’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에 ‘오상이원’과 ‘진원’이라고 불리는 원담이 나란히 있다. 원담은 조간대에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담에 막혀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 고기를 잡는 어로시설이다.

‘오상이원’과 ‘진원’은 해안도로에서 100m정도 바다로 들어간 조간대 중층에 있다. 이 두 원담은 나란히 있으면서 모양이 다른 곳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육지쪽으로는 급경사이고, 바다쪽으로는 완경사이다. 원담의 단면이 직삼각형이다. 이렇게 원담을 쌓은 이유는 밀물때 고기가 쉽게 들어오고, 썰물때 고기가 쉽게 나가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원담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쌓는 수고는 많아진다.

‘오상이원’은 이름에 얽힌 유래가 있다. 수원리에 살았던 ‘오상이’라는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자, 보름과 그믐에 삭망제를 올렸는데, 집에 마땅한 제물이 없어서, 원담을 혼자 쌓아서 이 곳에서 잡은 해산물로 제물을 대신했다고 한다. 원담을 쌓은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오상이원’이라 한다.  제주의 제사상에는 육지지역에서는 올리지 않는 제물을 올린다. 대부분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그 것이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땅에서 제주사람들은 바다에 의지하여 살았다. ‘오상이’의 제사상은 비록 격식은 없지만, 그의 부모들은 자식의 정성에 감격하지 않았을까?

이웃한 ‘진원’은 ‘길다’의 제주방언인 ‘질다’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진원’의 길이는 약 100m정도로 일반적인 원담보다는 상당히 긴 편이다. 원담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제주의 해안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어로시설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시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바다 해중림이 사라지고, 조간대도 매립되면서 조간대에서 원담을 이용한 어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썰물시에는 원담이 조간대 생물들이 서식처가 되어, 원담에서 바릇잡이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오상이원’과 ‘진원’은 일부 허물어지기도 했지만, 뚜렷하게 원형이 남아 있어서 보존가치가 높다.

▲ 왼쪽이 오상이원이고 오른쪽이 진원이다. 나란히 있으며, 단면이 직삼각형 모양으로 독특하다.ⓒ홍영철
수원리에는 3개의 포구가 있다. 동쪽으로부터 ‘용운동포구’와 ‘조(아래아)물개’, 그리고 ‘수원큰물개’다.  ‘오상이원’과 ‘진원’이 있는 ‘용운동포구’에서부터 ‘조(아래아)물개’ 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족히 30분은 서쪽으로 걸어야 ‘조(아래아)물개’에 이른다. ‘조(아래아)물개’는 해안절벽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포구의 옛모습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다. 아스팔트 위에 핀 꽃처럼 아름답다. 제주의 대부분의 포구들이 콘크리트로 덮여 가는 지금, ‘조(아래아)물개’ 포구는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아래아)물개’ 포구는 큰 배들이 이용하지 않는 듯, 작은 무동력선들이 한가롭게 바닥에 앉아 쉬고 있다. ‘조(아래아)물개’라는 이름은 이 포구 안에 돌담으로 둘러친 용천수가 둘 있는데, 밀물때에는 물에 잠겨서 ‘잠기다’라는 뜻의 ‘조(아래아)물다’에서 이름이 유래된 ‘조(아래아)물’이 있다. 그래서 ‘조(아래아)물개’로 이름이 지어졌다. 이 곳에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마을 분들로부터 들었다. 제주의 포구에는 대부분 용천수가 가까이 있는데, 용천수가 있으면 배의 밑바닥을 갉아 먹는 ‘소’라는 것이 서식하기 어려워서 배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주의 포구에는 거의 용천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 수원리 조물개의 모습과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조물. 조물개는 조물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홍영철
‘조(아래아)물개’를 지나 ‘수원큰물개’로 향한다.  ‘수원큰물개’에도 ‘큰물’이라는 용천수가 있다. 이 포구는 과거의 포구에 방파제를 연장하여, 제법 큰 포구가 되었다. 배들은 새로 만들어진 방파제에 정박해 있는데, 과거의 포구는 썰물일 때는 바닥을 드러내어 수시로 드나들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포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임시로 정박했다가 밀물 때 포구안으로 들어 왔다. 밀물때에도 바닥에 암초들이 많아서 뱃길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안쪽으로 들어오기가 힘들었다. 이 것이 한편으로는 큰 불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적들이 뱃길을 모르는 포구에 배를 댈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을을 지켜주는 역할도 했다.  ‘수원큰물개’라는 이름을 만든 ‘큰물’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물이 나오는 지점은 우물처럼 정사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져 있고, 다시 바깥쪽으로 둥근 돌담을 쌓았다. 물이 나오는 곳을 보니, 물이 거의 나오지 않고, 안은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용하지 않으면 쓸모 없다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져 있다. 우리는 아직 ‘물을 흘려 보낸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인간이 쓰지 않는 물은 곱게 흘려 보내져야 바다를 적시고, 산천을 적시고, 수 많은 생명들을 적신다. 결코 흘려 버려서는 안 되는 물이다.  

▲ 수원리 큰물개의 모습과 큰물개 안쪽의 큰물, 큰물은 용출량이 적고, 용도가 사라짐에 따라 쓰레기가 쌓여있다.ⓒ홍영철
‘수원큰물개’를 뒤로 하고 서쪽으로 향하면 해안도로가 조간대를 가르면서 이어진다. 조간대 옆으로 해안도로가 낸 상처들이 눈에 띤다. 한수리 포구 옆 ‘하물’에 있는 ‘하물원’이 해안도로로 잘리고, 잘라진 안쪽은 물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파래가 밀식함으로써 물이 썩어가고 있다. 해안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처럼 조간대를 가로 질러서 해안도로가 아닌 해상도로를 만든 곳들이 많다. 해안도로 막힌 안쪽은 해조류가 썩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쓰레기 처리장의 역할로 전락하다가, 마침내는 매립이라는 극약처방이 내려진다. 해안도로는 개발의 완성이 아니라, 개발의 전초전이다.

▲ 한수리 하물이라는 용천수 옆으로 자리잡은 하물원, 해안도로가 하물원의 일부를 자르고 지난다. 잘려진 조간대는 매립되기 일수다.ⓒ홍영철
한수리에 이르면 거대한 ‘한림항’이 보인다. 이미 작은 포구인 ‘한수개’ 한림항의 방파제 안에 갇혀버린 형국이다. 한수개 옆으로 멀리 흘러나간 용암류로 형성된 ‘대섬코지’는 예전 ‘한수개’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으나, 이제는 한림항의 방파제가 되어 버렸다. ‘대섬코지’위를 누빈 시멘트 길을 따라 들어가면 ‘대섬밧당’이 있다.  한 평정도의 공간이 네모꼴로 담이 둘러져 있고, 그 안에 순비기 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라고는 하지만, 해안을 기면서 뻗어 나가는 덩굴성의 나무다. 이 순비기 나무 위에 지전과 물색이 올려져 있다. 순비기 나무는 바다를 지키는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이 조그만 곳에 갇혀 있지만, 예전에는 제주의 모든 해안을 덮고 있었을 나무다. 그 만큼 우리 바다도 줄었고, 신도 이 조그마한 곳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 한수리 대섬밧당의 모습-순비기 나무를 신목으로 삼았다. 한림항 방파제에 둘러싸인 한수개의 모습, 아래는 한림항의 모습과 한림항으로 잘려나간 조간대.ⓒ홍영철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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