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재일 방적 여공’

억척스러움의 대명사 '제주 여성'이 다양한 모습으로 조명되고 있다. 제주지역 여성들의 문화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연구 서적 '제주여성사II: 일제강점기'를 통해서다. 제주발전연구원(원장 양영오)은 이 책에서 일제강점기 제주지역 여성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다. 23명의 전문 필자가 총 26개 주제로 글을 담았다. 이 중 몇 가지를 정리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일제강점기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많은 제주여성들은 가혹한 노동 환경을 견뎌야했다.

후지나가 다케시 오사카산업대학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제주여성II’에 발표한 글 ‘재일 방적 여공의 노동과 생활-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에서 제주출신 여성의 일제강점기 일본 현지 노동 실태를 추적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여성의 직업은 방적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경제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호황을 이루면서 일본인만으로는 인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1923년 제주~오사카를 오가는 정기 운항선 ‘기미가요마루’의 출항은 일본 내 제주출신 여공의 숫자가 급증하는 이유가 됐다.

1934년 7월 기준 일본에 있던 전체 제주인 수 4만9088명 중 여자는 2만264명이다. 제주출신 여성의 직업은 방적공이 5천375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전체 방적공 중 제주출신 여성의 비율도 26.0%인 2만69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공장들은 일 처리가 야무진 제주여성을 환영했다. 1920년대 오사카 언론은 “제주출신 방적공이 많고,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제주도 사람만은 대단히 환영을 받고 있고 제주도 사람한테만 특별히 도항을 중지하지 않도록 했다”는 보도(1928·오사카)도 나왔다.

▲ 1934년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오가는 '기미가요마루'에서 내리는 사람들. <출처=수기하라 토오루(杉原 達) 교수의 저서 '越境する民'(新幹社)>ⓒ제주의소리DB

일본에서 방적으로 취업한 제주 여성의 다수는 10대 초반이었다. 12살, 14살의 앳된 여성들은 가난을 벗고자 돈을 벌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1928년 일본 오사카의 한 언론은 각각 13살과 14살에 일본 직물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박 모 씨 사촌 자매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이들은 월급에서 밥값을 제외한 20엔 중 3엔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고향 제주에 송금한다고 밝혔다. 다케시 교수는 “10대 소녀들의 노동이 제주의 귀중한 현금 수입원이었다”고 덧붙였다.

어린 소녀들은 2교대 12시간 노동을 견뎌야 했다. 오전 6시, 오후 6시가 교대시간이었고 휴식은 점심과 야식 때 단 30분뿐이었다.

돌봐줄 이 없는 여공들은 현장 감독들의 잦은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이들은 빈대가 들끓는 이불을 덮고 자야하는 공동기숙사에서 지냈다. 비위생적인 환경 탓에 이질 등 전염병이 자주 돌았다.

제주여성은 일본 공장장들이 선호하는 일꾼이었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도 서슴지 않았다.

1932년 오사카의 한 연사공장에서 동료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여공 36명이 연사기계 54대의 실을 끊고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은 안평화 등 제주출신 활동가들이 다수 주도했다.

다케시 교수는 “제주출신 여성들의 피눈물이 배인 노동은 오사카, 그리고 일본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저변의 한 축을 담당했다”며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녀들의 다부진 활동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이미리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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