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간 어둠 속 갇힌 후에야 빛 본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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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안의 클래식 산책]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Pyotr ll'yich Tchaikovsky (1840~1893)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

1878년에 작곡된 차이코프스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는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최고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제자이자 아홉 살이 어린 안토니나 밀류코바(Antonina Ivanovna Milyukova)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석 달 만에 파경을 맞았고, 비참한 결혼생활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갔던 스위스의 제네바 호수 근교의 클라렌스 리조트에서 작곡하였다. 차이콥스키는 거기에서 그의 제자이자 바이올린 연주가인 요지프 코테크(Yosif Kotek)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인 랄로의「스페인 교향곡」을 함께 연주했고, 그 후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이 협주곡을 작곡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올린 연주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곡의 바이올린 독주 부분 작곡은 요지프 코테크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곡은 매우 빨리 작곡이 이루어져, 비록 2악장은 나중에 다시 쓰여졌지만, 거의 한 달 안에 곡이 완성되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거장이었던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인 레오폴드 오어(Leopold Auer)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그에게 작품에 대한 자문 및 초연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기교적으로 보아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초연이 거부되었다.

실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3년 동안이나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모스크바 출신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교수였던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에 관심을 보이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여 1881년 12월 4일, 빈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빈 필하모니와 협연함으로써 초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현대 음악비평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당시 빈 음악계를 주름잡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차이코프스키의「바이올린 협주곡」은 악취를 풍기는 음악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가치를 굳게 믿고 있던 브로드스키는 연주 여행 때마다 이곡을 연주하여 청중들의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그 후 아우어 교수도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여 직접 연주함으로써 점차 유명해 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원래 헌정할 예정이던 레오폴드 아우어 대신, 초연과 이 곡에 알리는데 공로가 많은 브로드스키에게 헌정됐다.

이 작품의 특색은 바이올린 독주의 눈부신 근대적 연주기교를 충분히 발휘하였고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풍부하고 색체적인 면을 볼 수 있으며, 러시아 민요의 정서와 그가 지닌 독특하고 애수에 젖은 아름다운 선율 등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독창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차이콥스키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만 작곡했지만, 세 개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도 작곡했다. 그 중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유명하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이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llegro moderato)
제 2악장  칸초네타 -안단테 (Canzonetta -Andante)
제 3악장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Allegro vivacissimo)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denza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 2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서 연주하게 되는 반면,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된다. 전개부에서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이 펼쳐지고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질주하는 선율은 가히 폭발적이다. 카덴차(Cadenza,독주자가 반주 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 연주 부분)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독주 사이의 대비감이 잘 표현 되어있다.


Janine Jansen perform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악장. movement part 1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악장. movement part 2

 

♣ 음악 에피소드
차이코프스키의 두 여인

 1876년 말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폰 메크(Nadezhda Filaretovna von Meck, 1831~1894) 부인과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차이코프스키에게 경제적 원조를 했고, 1877년 차이코프스키는 그 보답으로 교향곡 제4번을 부인에게 헌정했습니다. 이 곡은 그 전에 발표한 3개의 교향곡을 훨씬 능가하는 역작이었으며, 교향곡 작곡가로서 차이코프스키의 역량을 보여준 것입니다.

 같은 해, 차이코프스키에게 그의 생애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역설적으로 그것은 결혼 때문이었습니다.

상대는 밀류코바 (Miliukova, Antonina Ivanovna Tchaikovskaya, 1849~1917)라는 28세 나이의 제자였습니다. 2주간의 신혼여행 중에 그는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9월 어느 날 밤 모스크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꾀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해 9월 말 차이코프스키는 상크페테르부르크로 도망쳤고 결혼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 후 요양을 겸해 스위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했습니다. 1878년 귀국한 차이코프스키는 다시 창작의욕을 회복하고는 폰 메크 부인의 원조로 생활비가 해결되자 음악교수직도 그만두고 작곡에만 전념했습니다.

▲ 성악가 이승안. ⓒ제주의소리
 1881년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별세했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하여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을 기념하는「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란 제목의 피아노 삼중주를 작곡했습니다. <출처:CEO를위한클래식작곡가에피소드,이재규엮음,예솔>

<성악가 Bass-Bariton 이승안 씨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와 Italia Parma Orfeo Academy, France 'Ecole Normal' de Musique de Paris를 졸업했으며 France Nice National Conservatoire를 수료했다. 현재 제주교대와 숭실대, 백석 콘서바토리에 출강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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