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계 최고 이슈로 떠오른 ‘제주해군기지 문제’
4년 전 ‘생명·평화’ 교회 가르침 위배 확인...단식도 불사

▲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주교 전국정의구현사제단이 7일부터 제주 강정마을을 위한 단식 기도에 돌입했다. <출처=강정마을 홈페이지> ⓒ제주의소리

“단식기도는 희생과 헌신을 통해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울 국회와 제주 강정마을에서 동시에 천주교 사제들의 ‘단식 기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이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올리고 있는 간절한 기도의 주제는 ‘구럼비바위 발파 금지’다.

7일 천주교 전국정의구현사제단(대표 전종훈 신부)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주 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닷새째인 현재 매일 30여명의 신부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천주교 제주교구 평화의섬 특별위원회도 이들의 뜻에 함께 하며 이틀 뒤인 9일 강정마을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단식 기도에 돌입했다. 제주 단식기도에는 고병수 신부, 김석주 신부, 한재호 신부 등 1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이 지키려는 ‘구럼비 바위’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지난 4년6개월 넘도록 진행해 온 싸움의 상징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내에 위치한 용암 덩어리 구럼비 바위에서는 2급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는 붉은발 말똥게가 발견돼 환경파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전국 사제들이 나서 강정마을을 위한 ‘단식 기도’를 올리게 된 배경적 이유는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주교가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편에 선 것은 제주 해군기지 사업 부지가 위미리에서 강정마을로 넘어온 2007년 6월 즈음이었다.

▲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9일부터 제주 해군기지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단식 기도에 들어갔다. <출처=강정마을 카페> ⓒ제주의소리

고병수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는 “당시 제주해군기지 결정 과정에서 절차적인 것들이 미비됐고, 해군기지의 성격도 우리나라의 해군이 아닌 미군의 해군기지로 전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이런 부분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연결되면서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고 신부는 또 “교회의 가르침은 ‘평화·생명’”라며 “교회의 평화 개념은 군비 감축에서 비롯되며, 세력 간 다툼이 아닌 대화와 협력에서 온다고 가르친다. 동북아에 긴장을 만드는 제주 해군기지는 교회의 평화 개념을 깨트린다”고 말했다.

이어서 “교회에서는 자연을 생명체이자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고 이를 파괴하는 것은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제주해군기지의 12만평에 걸친 생명 파괴 행위를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제주 강정마을 문제가 전국 이슈가 된 데 한 몫 한 것도 천주교였다.

전국 주교 모임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는 제주 강정마을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그 노력은 일부 주교들의 연대 표시로 이어졌고, 지난 5월에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한국 천주교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기에 이른다.

이는 지난 10월 11일 전국 15개 교구가 모두 참여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천주교 연대)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날 각 교구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500여명은 강정마을에 모여 출범총회를 갖고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 지난 8월 11일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에서 1000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제주의소리DB

천주교 연대 출범 이후 천주교계에서 처음으로 제주 강정마을 문제에 본격 행동을 보인 것이 이번 ‘단식기도’인 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단식기도에 들어가면서 “이명박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중국과 미국의 경제영토 확장 전쟁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라며 “제주를 평화의 이름으로 치유하기보다 제 나라 백성에게 숯불을 쏟아 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또 “제주는 세계의 자연유산으로서 보존돼야 하는 곳이고 평화를 구현하는 섬이어야 한다”며 “이것이 강정주민의 바람이고 제주도민의 염원이며, 한국 천주교 신자 모두의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천주교 제주교구 평화의섬 특별위원회도 단식기도에 들어가면서 “생명의 하느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신앙의 양심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면서 “일방통행 식으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중앙정부와 해군은 즉각적으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체는 또 “문화재 발굴을 무시한 부분공사 시행,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한 무분별한 공사 강행 등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면서 “무리한 공권력 집행으로 인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을 비롯한 구속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4일 국회 앞에서 열리는 ‘제주해군기지 백지화 기원 제2차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 때까지 단식기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달 5일에는 제3차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가 개최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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