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① 반환점 돈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모형’ 연구용역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6.2지방선거 공약에서 출발한 ‘자치권 부활’을 위한 연구용역(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도입모형 연구)이 반환점을 돌았다. 연구진은 20일 도의회에서 진행된 중간보고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 △읍면동 준자치제 △현행유지 등 5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정작 주민들은 소외받고 있다.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집중 진단한다.<편집자주>

<1> 자치 시·군 폐지→‘기형적’ 특별자치도 조각한 장본인들이 대안을 찾는다?

20일 윤곽을 드러낸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 개편 모형’은 크게 다섯 갈래다.

△기초자치단체 부활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 △읍면동 준자치제 △현행유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단층자치단체’(도와 시·군의 수직적 통합)의 설치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본전제가 훼손된다고 밝혀, 최적 대안으로 채택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역시 기초자치단체 부활과 같다는 점에서 최적 대안 후보에 오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행 유지 역시 ‘자치권 부활’이라는 연구목적에서 봤을 때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행정시 또는 읍면동 준자치제가 최적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을 주민들이 선출하되 의회를 두지 않고 읍면동을 존치하는 ‘행정시 준 자치단체’는 우 지사가 6.2선거를 치르고 난 뒤 위헌가능성까지 감안해 최종적으로 가다듬은 공약이다.

사실상 연구용역이 우 지사의 공약인 ‘행정시장 직선제’를 향해 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책임자인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5가지 대안 중에서 기초단체 부활은 현행법상으로 어려운 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일부 안은 중앙정치권을 설득하고 논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연구진 스스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한 ‘자치단체 부활’을 잠재적 대안군(群)에 포함시킴으로서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발주처의 입맛에 맞는 연구결과가 제출될 것이란 우려를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연구용역진의 신뢰성을 문제 삼는 이들도 많다.

이번 용역은 지난 2005년 기초자치단체를 없애 현행 행정체제로 개편을 주도한 최영출 충북대 교수가 책임을 맡았다. 이 밖에도 하혜수 경북대 교수, 홍준현 중앙대 교수, 하정봉 순천대 교수가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양덕순 제주대 교수가 유일하게 연구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전국 단위의 행정체제 개편을 주도하고 있다. 타 지역의 행정체제 개편의 경우는 행정계층 조정보다는 통폐합에 방점을 찍고 추진되면서 해당지역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자치권 부활’ 공약의 배경이 됐던 현재의 행정체제 모형을 제시한 장본인들이 또 다시 새로운 대안(모델)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20일 진행된 용역 중간보고에서 강경식 의원(이도2동 갑, 통합진보당)은 “교수님들께 건방진 소리 하나 하겠다”면서 “학자들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확대시킬 것인지에 대해 연구해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국론 분란만 일으키고 있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연구진에 참여한 교수들이 내놓은 연구결과물들을 보면 마치 제주특별자치도를 자신들의 연구를 위한 실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들게 한다.

연구책임자인 최영출 교수의 경우 지난해 제주도의회가 발주한 ‘제주특별자치도 발전방안 연구’ 용역을 맡았었다. 당시에도 4개의 대안을 제시했다. 지금 용역에서 제시된 행정시-읍면동 준자치제 방식을 더 세분화 했을 뿐 분석 내용은 거의 판박이다.

그 중에서도 최 교수는 듣도 보도 못한 ‘행정시 존치, 읍면동 준자치단체’를 최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준자치단체는 법인격이 없이 단체장만 주민 손으로 뽑는 방식이다.

최 교수가 제시한 대안은 곧바로 논란을 가열시켰다.

보고를 받은 도의원들은 “행정시를 그대로 존치할 경우 행정의 비효율성을 해소할 수 없고, 읍면동의 준자치단체 전환은 어정쩡한 주민참여와 자치공간의 확대로 행정비용만 증대시킬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도 권한이 미약한 행정시가 주민들이 선출한 읍면동 대표를 효과적으로 감독하고 통제하기 어려워 실현 가능성이 없는 ‘페이퍼’ 대안이라는 가혹한 비판도 쏟아졌다.

지난 2005년 현재의 행정체제 개편을 주도한 양덕순 제주대 교수(행정학과) 역시 ‘갈지(之) 자’ 행보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양 교수도 최 교수와 같은 연구용역에 참여해서는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도민들은 기존의 기초자치단체인 시·군을 폐지하고, 이를 행정기관화한 것에 대해 성급했다는 생각을 보였다”며 새로운 모델 발굴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의는 “어떤 형태가 됐든 자치권을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인지 양 교수는 당시 “우선적으로는 4개의 자치 시·군을 2개의 기초자치단체로 행정구역을 통합하면서 운영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 교수는 학자로서 잘못된 판단·연구결과물에 대한 자기반성은 건너뛴 채 다시 이번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모형’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 4개의 자치 시군이 됐든 2개의 자치 시가 됐든 기초단체 부활도 대안 중 하나로 제시되기는 했지만, 연구진들조차 “특별자치도의 기본 전제가 훼손될 가능성 있다”며 사실상, 최적 대안에서는 제외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강경식 의원은 “이번 행정체제개편모형 도입 연구용역은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며 연구진의 구성과 인식 자체를 문제 삼은 뒤 “문제 인식에서부터 도민들과 괴리가 커, 엉뚱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호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도 “시·군 자치단체 존폐와 같이 범도민적 선택의 기회가 자칫 지도자의 판단 오류나 관변 지식인들의 편들기 논리로 좌지우지 된다면 주민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은 물론 제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계했다.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모형’ 연구용역비는 8650만원이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