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② 반환점 돈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모형’ 연구용역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6.2지방선거 공약에서 출발한 ‘자치권 부활’을 위한 연구용역(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도입모형 연구)이 반환점을 돌았다. 연구진은 20일 도의회에서 진행된 중간보고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 △읍면동 준자치제 △현행유지 등 5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행정체제 개편논의가 한창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소외받고 있다.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집중 진단한다.<편집자주>

<2> 6년 전 용역과 달라진 건? 검증 안된 방안 갖고 ‘재탕 삼탕’

◇ 사례1. (2005년)
▲광역단체-4개 행정시·군(제주, 서귀, 동제주, 서제주)-동 ▲광역단체-4개 행정시·군(선출직 없는 현행체제)-읍·면·동 ▲광역단체-2개 행정시(제주, 서귀포)-읍·면·동 ▲광역단체-읍·면·동(행정시·군 폐지) ▲광역단체와 행정시(읍·면·동 폐지)

◇ 사례2. (2010년 3월)
▲행정시 존치-읍·면·동 준자치단체 ▲행정시 폐지-읍·면·동 준자치단체 ▲읍·면·동 존치-행정시 준자치단체 ▲읍·면·동 폐지-행정시 준자치단체

◇ 사례3. (2011년 12월)
▲기초자치단체 부활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 ▲읍·면·동 준자치제 ▲현행유지(광역단체-2개 행정시-읍·면·동)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을 위해 실시된 대표적인 용역들의 결과물이다.

제주도에서 행정체제(구조) 개편 논의가 본격화 된 시점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제주도를 지방분권, 지방자치의 시범도시로 조성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하면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태동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듬해 제주도는 제주발전연구원에 의뢰해 ‘제주특별자치도 기본방향’을 설정하도록 했고, 여기에서 계층구조 개편 방향(2층체 보완유지 또는 단층제)이 제시된다.

이를 토대로 실시된 용역에서 제시된 행정구조(계층) 개편 모형이 바로 [사례1]이다.

제주도는 5개 대안 가운데 ‘광역단체-2개 행정시-읍면동’(혁신안), 종전 4개 시·군 체제 유지(점진안) 등 2가지 안을 놓고 2005년 7월27일 주민투표를 실시, 지금의 행정체제(혁신안)를 선택한 뒤 2006년 7월1일 특별자치도 시대를 열었다.

그렇지만 ‘어정쩡한’ 계층구조로 인한 행정의 비효율성이 여전하고, 과도한 권한이 도지사로 집중되면서 ‘제왕적 도지사’ 논란이 일면서 행정체제 개편 논의는 다시 고개를 들게 된다.

제주도의회가 이 논의를 주도했고, 행정계층구조를 새롭게 짜보자고 진행한 용역의 결과물이 [사례2]다.

특별자치도 1기 김태환 도정이 기초자치단체 폐지로 수립됐다면 특별자치도 2기 우근민 도정은 역으로 ‘자치권 부활’을 내세워 당선된다. 선거 과정에서는 ‘자치권 부활’ 공약이 완벽한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이냐를 놓고 쟁점이 됐고, 위헌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우 지사는 위헌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행정시장 직선제’로 공약을 가다듬었지만, ‘자치권 부활’ 방식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고, 그 연장선에서 진행된 용역의 결과물이 바로 [사례3]이다.

사례1~3을 보면, 7~8개의 모형을 갖고 조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밥에 그 나물’, ‘재탕 삼탕 용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연구진 구성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3개의 용역 모두 C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다.

문제는 이렇게 행정체제 개편을 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행정체제 개편 후 실시된 각종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광역단체장으로 권한이 집중되면서 말단 기관으로 행정이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시군 폐지로 인한 풀뿌리 민주주의 후퇴”, “행정시 공무원의 무력화” 등 부정적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저비용 고효율’을 기대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후퇴됐다는 지적이 많다. 공급자 역시 기구·정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행정개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자치권 부활’ 논의인 만큼 이번 행정체제 개편은 도지사 공약이행 등 특정 목적이 아니라, 제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틀을 짜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행정체제를 개편하려는 건 ‘제왕적 도정’ 체제 개선과 주민참여자치의 확대, 행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모형 도입’연구용역이 반환점을 돈 시점이지만 벌써부터 최적 대안은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가 되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전망이 나온다. 행정시 준자치단체는 우 지사의 ‘행정시장 직선제’ 공약이 용역을 통해 학술(?) 용어로 포장된 ‘구닥다리’ 모형일 뿐이다.

정책의 선택 문제를 용역이란 외부 순환도로를 거쳐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이와 관련, 김호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행정체제 개편과 같은 범도민적 선택의 기회가 자칫 지도자의 판단 오류나 관변 지식인들의 편들기 논리로 좌지우지 되어선 안된다”며 “용역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도정과, 이에 부화뇌동해 입맛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는 지식인들의 ‘짬짜미’ 행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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