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③ 반환점 돈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모형’ 연구용역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6.2지방선거 공약에서 출발한 ‘자치권 부활’을 위한 연구용역(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도입모형 연구)이 반환점을 돌았다. 연구진은 20일 도의회에서 진행된 중간보고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행정시 준자치단체(시장선출/의회 없음/읍면동 존치) △읍면동 준자치제 △현행유지 등 5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행정체제 개편논의가 시작됐지만 정작 주민들은 소외받고 있다.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 집중 진단한다.<편집자주>

<3> 무엇을, 누구를 위한 행정체제 개편인가? 궤도수정 ‘시급’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반환점을 돌고 있지만, 도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매우 낮다.

연구용역을 맡은 한국행정학회는 지난 20일 제주도의회 중간보고를 통해 5가지 대안을 내놓았고, 제주도는 오는 28일 도민보고회를 거쳐 내년 1월 2~3개 대안으로 압축한 뒤 6월쯤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행정체제 개편이 로드맵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수요자인 주민들의 참여공간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연구진이 대안을 만들면, 행정개편추진위원회가 1~2개로 추린 뒤 주민투표를 통해 선택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정작 정책결정의 주체인 도정은 일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당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변명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행정체제 개편은 도지사 공약이행 등 특정 목적이 아니라 제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틀을 짜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명분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릴 경우 문제가 발생하고, 재개편 요구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경험했다.

◇ 논의의 전제 조건 =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5가지 대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시행된 현 행정체제의 논의·결정과정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시 행정체제 개편은 국제자유도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특별자치도 행정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주민자치를 확대시키기 위한 양대 축으로 진행됐다. 물론 기초의회가 각종 비리와 부조리 등으로 시민사회로부터 사망선고를 받는 등 기초의회 무용론도 작용했다.

그래서 당시 5개 대안 가운데 ‘광역단체-2개 행정시-읍면동’(혁신안), 종전 4개 시·군 체제 유지(점진안) 등 2가지 안을 놓고 2005년 7월27일 주민투표를 실시, 지금의 행정체제(혁신안)를 선택해 특별자치도 시대를 열게 된다.

그렇다면 5년이 지난 지금 왜 행정체제를 다시 개편하려 하는가.

논란을 최소화하며 도민역량을 엉뚱한 곳에 소진하지 않으려면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지난 2005년 당시 행정체제 개편 슬로건이 맞거나 지켜지고 있는지부터 철저하게 분석하는 선행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행정체제 개편 후 실시된 각종 도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행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했지만,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광역단체장으로 권한이 집중되면서 말단 기관으로 행정이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시군 폐지로 인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후퇴했다”, “행정시 공무원이 너무 무기력하다” 등 부정적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공급자는 ‘저비용 고효율’을 기대했지만 정작 수요자들에게 돌아온 건 예전만 못한 행정서비스다. 공급자 역시 기구·정원 구조조정을 이뤄내지 못해 행정개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행정체제 개편의 목적은 행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과 함께 ‘제왕적 도정’ 체제의 개선, 주민참여자치 확대 및 주민복리 증진이라는 본질을 놓쳐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일 한국행정학회가 내놓은 5가지 대안은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용역진은 5가지 대안 중에서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단층자치단체’(도와 시·군의 수직적 통합)의 설치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본전제가 훼손된다고 밝혀, 최적 대안으로 채택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기초의회를 둔 시장 임명제 역시 기초자치단체 부활과 같다고 분석, 최적 대안 후보에 오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행 유지안 역시 ‘자치권 부활’이라는 연구목적에서 봤을 때 대안이 될 수 없다. 읍·면·동 준자치제는 세간에 나도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수준으로, 제주사회를 또 다시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최적 대안은 시장을 주민들이 선출하되 의회를 두지 않고 읍면동을 존치하는 ‘행정시 준 자치단체’가 될 공산이 크다. 우 지사의 공약인 ‘행정시장 직선제’를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 효율성보다는 주민이 중심 =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중심은 시민권력의 시대에 부합하는 주민참여자치 확대를 위해 어떤 대안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맞춰져야 한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은 단체장을 주민들이 직접 뽑고 ‘제왕적’ 도지사를 견제할 수 있지만, 과거 회귀라는 차원에서 중앙정부를 설득할 명분이 약하다.

기초의회 없이 시장을 직선하는 방안은 주민들이 선출한 단체장을 둔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장점을 찾아볼 수 없다. 법인격이 없음으로 인해 무늬만 자치권 부활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직선시장에 대한 견제장치 부재, 행정계층의 비효율성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제주도의회 강경식 의원(통합진보당)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용역을 보면, 행정의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만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외국의 경우는 자치계층이 2단계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미국이 일부 주에서는 자치계층을 2단계서 3단계로 늘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과업 목적부터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위성에 매몰돼 행정체제 개편을 서둘 경우 본질을 망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박원철 의원(민주당)은 “지역에 가보면 옛 시·군 체제 때보다 불편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무엇보다 읍·면지역의 상실감이 대단히 크다”면서 “2014년 지방선거 때 적용이라는 일정에 맞춰 역순으로 사업을 배치할 게 아니라, 시간에 구애 없이 과정 자체가 ‘주민참여’, ‘참여자치’의 학습장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공약’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매몰돼 본질을 망치게 않도록 제주도정과 연구진을 향해 경계의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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