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상귀리 황다리궤당은 당의 중심에 여신이 좌정하고(왼쪽), 남신은 담장 밖으로 쫓겨나 좌정해 있다(오른쪽). ⓒ제주의소리
해녀, 농부, 어머니였던 제주 여인들(제주시 50년사 - 70년대의 정경). ⓒ제주의소리
톳채취 수눌음을 하는 해녀들. 이들에게는 굳이 소라와 전복이 아니어도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은 영등할망이 가져다 준 은혜다. ⓒ제주의소리
당본향당 입구 표석. 제주신당의 원조라고 적혀있듯이 마을 주민들의 당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송당본향당은 제주신화에서 일만팔천 신들의 뿌리가 되는 곳으로 표현되는 당이다. 여신 백주또가 좌정한다. 본성과 습속이 달라 남편과 ‘땅가르고 물갈라 이혼하고 남편 소로소천국은 알송당으로 가서(아래 사진) 좌정한다. ⓒ제주의소리
2009년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신당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소로소천국신당. 알손당의 본향당이었으나, 현재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주의소리
「초록주멩기」라는 책을 낸 <제주그림책 연구회>의 그림. 제주의 많은 여신들이 가진 지혜와 용기, 제주의 삶인 통시와 올레, 제주여성들의 조냥과 나눔 등이 ‘초록주멩기' 안에 담겨져서,   현실의 어머니와 그림책을 그리는 어린 나에게까지 빙글빙글 이어달리기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바람직한지 그러지 않은 지는 차치하고 제주는 여성들의 의한, 여성의 섬인 것 같다.  ⓒ제주의소리

<김정숙의 제주신화> ⑥ 위 아래 차별 없는 제주신화

유독 여성신들의 출생담이 많다는 것도 제주신화의 한 특징이다. 초공, 이공, 세경, 칠성 본풀이는 부유한 집안의 부부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근심하다가 기자치성을 드리고 자식을 얻는 것으로 시작된다. 늦도록 아이를 못 낳아도 쫓겨나지 않으며, 태어난 아이가 딸아이라 하더라도 섭섭하다기보다는 예쁜 아이로 소중하게 묘사된다.
 
<초공본풀이>에서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려온 임정국 대감 부부는 태어난 딸이‘앞이마는 해님이요 뒤통수는 달님이요, 두 어깨에는 샛별이 오송송 박혀진 예쁜 아이’라고 좋아한다. 때는 구시월이라 산줄기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아이 이름을 ‘저 산 줄이 뻗고 이 산 줄이 뻗어 왕대월석금하늘 노가단풍 자지맹왕 아기씨’라고, 예쁜 것을 다 엮느라, 길게 이름을 짓는다. 다른 지역의 신화라면 어미가 쫓겨나가거나, 아이가 버려졌을 텐데 말이다.
 
또한 당신화를 보면 ‘아들 간데 18, 딸 간데 28, 손자 간데 378’이라 하여 마을의 설촌과 분리 및 확산이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아들과 딸, 심지어는 손자까지도 제주도 각 마을의 모든 사상을 관장하는 당신(당의 주인인 신)이 된다는 것이다. 아들과 딸은 차별되지 않으며 손자 손녀라 하여 차별받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손자들은 수평적-평등 이동을 한다. 여기에 남성지배, 장자상속, 장유유서의 질서는 없다.

▲ 애월 상귀리 황다리궤당은 당의 중심에 여신이 좌정하고(왼쪽), 남신은 담장 밖으로 쫓겨나 좌정해 있다(오른쪽). ⓒ제주의소리

흔히 제주도는 ‘여다(女多)의 섬’으로 불린다. 이는 실제 여성의 수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제주가 주었던 이미지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척박한 뜬 땅의 제주는, 밭농사의 생산형태를 가지게 했다. 밭농사의 주요 노동은 김매기다. 그건 잡초를 없애고 땅을 부드럽게 골라주는 일이다.

고온다우한 날씨로 쉼 없이 자라나는 잡초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한순간의 방심도, 게으름도 금물이었다. 게다가 김매기는 구부리고 앉아서 하는 손노동이고, 큰 힘을 들여 물꼬싸움을 벌여야 하는 논농사에 비해 여성에게 좀 더 알맞은 노동이다. 해산물 채취를 위한 수중잠수도, 추위에도, 물속에서도 오래 버티는 여성들이 도맡아 했다.

▲ 해녀, 농부, 어머니였던 제주 여인들(제주시 50년사 - 70년대의 정경). ⓒ제주의소리

그러다보니 제주여성들은 갈중이에 머릿수건을 두르고 밭으로, 집으로, 물때에 맞춰 바다로, 쉼 없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논으로 나가 일하는 여성도 없고 해녀 역시도 거의 볼 수 없는 한반도부의 방문자들에게, 길가에서 부딪히는 제주여성들의 이런 생생한 이미지는 퍽이나 낯설고 인상 깊었을 것이다. 여신중심적인 제주신앙은 이렇게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생산에 직접 참여해 얻어진 경제력과 함께 상대적으로 높았던 여성의 지위가 신앙에 투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제주의 신화에는 많은 여신들이 중요한 직능을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총맹부인은 남편신과 함께 천지를 창조한 여신이다. 자청비는 농경생활을 시작하게 한 농경신이다. 가믄장아기는 가난한데다 여자라는 약자의 운명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행운과 부를 일군다. 벽랑국 세 처자는 오곡과 가축을 가지고 와 탐라국을 개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들고 육지까지 다리를 놓으려 한 창조적인 여신이었다. 영등할망은 한 해의 바다살림을 풍요롭게 해주는 바다의 신이었다.

▲ 톳채취 수눌음을 하는 해녀들. 이들에게는 굳이 소라와 전복이 아니어도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은 영등할망이 가져다 준 은혜다. ⓒ제주의소리

당본풀이의 백주또 여신은 일만팔천 제주신화의 뿌리가 되는 송당본향당의 당신이다. 그 외에도 일뤠또, 요드레또, 서물한집, 객세전부인, 송씨아미, 토산한집 등 많은 여신들이 등장한다.

 

송당본향당 입구 표석. 제주신당의 원조라고 적혀있듯이 마을 주민들의 당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송당본향당은 제주신화에서 일만팔천 신들의 뿌리가 되는 곳으로 표현되는 당이다. 여신 백주또가 좌정한다. 본성과 습속이 달라 남편과 ‘땅가르고 물갈라 이혼하고 남편 소로소천국은 알송당으로 가서(아래 사진) 좌정한다. ⓒ제주의소리

 

▲ 2009년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신당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소로소천국신당. 알손당의 본향당이었으나, 현재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주의소리

많은 여신들은 타 지역의 여신들이 보여주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이며 소극적인 여신들의 모습과는 달리 천지창조에의 참여부터 마을의 형성, 기능분화에 따르는 마을의 분리 및 확산, 산육(産育), 농경, 치병, 수복, 자손과 집안의 보호, 마을과 바다의 수호, 원혼에 대한 치원 등 모든 삶의 부문에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존재였으며, 오히려 더욱 중요한 존재로 표상된다.

▲ 「초록주멩기」라는 책을 낸 <제주그림책 연구회>의 그림. 제주의 많은 여신들이 가진 지혜와 용기, 제주의 삶인 통시와 올레, 제주여성들의 조냥과 나눔 등이 ‘초록주멩기' 안에 담겨져서,   현실의 어머니와 그림책을 그리는 어린 나에게까지 빙글빙글 이어달리기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바람직한지 그러지 않은 지는 차치하고 제주는 여성들의 의한, 여성의 섬인 것 같다.  ⓒ제주의소리

제주신화에서 이들 여신들이 보여주는 창조성과 평등주의, 미지에 대한 모험심, 좌절을 극복하는 도전과 용기는 제주사람들, 제주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편, 의지, 지혜, 가치이자 철학으로서 제주의 원형이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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