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부러진화살...부러진 언론

언론은 역사의 초고라고 한다. 언론이 고려ㆍ조선시대 실록편찬의 토대가 된 사초(史草)처럼 후대에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초는 실록ㆍ일기 등 역사 편찬의 첫 번째 자료로서 사관이 매일 기록한 원고다. 사관은 시정의 득실과 관원의 잘잘못, 사회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역사적 사실들을 보고 듣는 대로 직필(直筆)하여 비밀리에 갖고 있다가 실록을 편찬할 때 춘추관에 제출했다. 왕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기록 중인 사초와 실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사관들은 안심하고 직필할 수 있었다.

우리 언론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 볼 때, 과연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의 논법인 춘추필법의 기준에 제대로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사료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관의 정신으로 기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역사가들이 언론 보도만 갖고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는 이유다. 언론의 기록만으로는 <열반경>에 나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역사 해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곡과 날조의 기록으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거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극단적 애국주의나 매카시즘에 경도되어 은폐ㆍ누락ㆍ선택 보도를 일삼기도 한다. 뉴스원의 정보조작, 정치 경제 권력의 압력, 언론사주의 간섭 등에 의해서 거짓 과잉보도나 나팔수 노릇을 할 수도 있다. 대중영합적인 선정주의도 과장 보도를 낳는 원인이 된다. 언론이 진실과 정론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호전적 선동과 악의적 거짓보도로 촉발된 역사적 사건은 미국이 스페인과 치른 1898년의 미국ㆍ스페인 전쟁이다. 당시 스페인의 잔혹한 지배를 받던 쿠바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잦았고 스페인은 군대를 동원해 이들을 강압적으로 진압했다. 쿠바에 눈독을 들인 미국은 자국민 보호 명목으로 전함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하였다. 1898년 2월 15일에 그 원인이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배가 침몰한다. 미국의 언론인 허스트를 비롯한 호전론자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스페인군이 메인호를 외부에서 폭발시켰다고 선전하면서 전쟁을 부추겼다. 터무니없는 소문의 확산, 증오심 자극 등으로 국민들을 분격시켰다. 당시 전쟁을 주저했던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결국 전쟁을 선포하고 말았다. 결국 수천 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 17일자 기사 <김정남 “천안함, 북의 필요로 이뤄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고미요지(五味洋治) 도쿄신문 편집위원이 김정남과 주고받아온 이메일 내용을 월간조선이 요약해 본지에 전달한 기사를 전재한 것이며 고미요지 위원이 이메일을 바탕으로 펴낸 책에는 천안함 관련 부분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라고 1월 20일자에 정정 보도하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우리 언론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서 수 많은 오보를 거듭 양산해왔다. 외신을 오역하고, 이념에 따른 정파적 선택보도나 내용을 날조하기도 하였다. 사실을 파헤쳐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일탈하여 언론의 신뢰도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영화 <도가니>에 이어 최근 <부러진 화살>이 뜨고 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해야 할 기성 언론이 묵살하거나 회피하였기 때문에 소설과 르포가 출간되고 영화가 만들어 지고 나서야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와 MBC와 YTN 해직기자들이 만든 인터넷 뉴스 <뉴스타파>,  MBC 파업 기자들의 가 대중의 선풍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CNK 주가조작에 대한 외교부의 개입과 제주 7대 자연경관 선정 관련 전화투표비 268억원에 대해서도 문제가 터진 뒤에야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주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뉴스다운 뉴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제주의소리
많은 사람들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주인공이 “기자들을 너무 믿지마”라고 한말에 공명하고 있다. 대중은 진실과 정의에 입각한 성역없는 정보를 갈망하고 있다. 걸핏하면 종북좌파 빨갱이, 수구꼴통, 포퓰리즘 같은 극단적인 용어로 덧칠하는 행태는 이제 시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언론이 추적하지 못한다면 언론은 역사의 기록이기를 포기한거나 마찬가지다. 언론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리플리 증후군’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 권영후 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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